모빌리스타 테슬라 Mobilistar Tesla
모빌리스타 편집부 엮음 / 모빌리티솔루션즈코리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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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에 소개했던 모빌리스타 단행본이 또 하나 출간되었다. 이번 특별판의 표지는 붉은색 테슬라 S 모델의 전면과 후면 몸체 일부를 확대한 사진으로 둘러서 책 전체가 붉은색이다. 이 정도로 소개를 하면 이번 모빌리스타 특별판의 주제가 무엇인지 눈치를 챈 센스쟁이들도 있을 것 같은데... 맞다. 이번의 주제는 테슬라이다.


필자의 블로그를 고정적으로 방문하는 분들 중에 50%는 직간접으로 자동차와 관련이 있는 분들이라 테슬라 하면 전기차를 생산하는 미국의 브랜드이고 이 회사는 엘런 머스크와 관계가 깊다는 것까지 알겠지만 자동차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분들이 반이라 테슬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테슬라모터스의 로고


캘리포니아 플레몽의 테슬라 조립공장


테슬라모터스는 2003년 미국에서 설립된 전기차 전문사로 ‘테슬라’라는 사명에서 이미 자신들이 만드는 차를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물리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인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이고 1888년에 그가 만들어낸  ‘AC 인덕션 모터’는 현대 전기 구동 장치들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모터의 효시라고 할 수 있고 이런 점에서 테슬라가 전기 차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전기차를 생산하는 자동차 브랜드는 많고 전기차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큰 규모의 브랜들도 이미 여럿이다. 그러나 테슬라가 유명한 이유는 테슬라 이전의 전기차는 기술적, 경제적 이유로 소형차에 머물러 왔는데 테슬라는 그들의 첫 양산차로 포르쉐 경기 차와의 드래그 레이스에서 이길 정도의 고성능 차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어서 현재까지 최고의 전기차로 꼽히는 S 모델을 생산하는데 이차는 중형차 크기에 0-100Km/H에 이르는 제로백이 3.2초 정도로 슈퍼카 와 동일한 가속 능력을 갖추고도 한번 충전으로 최대 500Km 이상을 주행하는 말도 안 되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테슬라는 기존 자동차 브랜드와 다른 방식으로 고성능, 대형 전기차부터 만들고 단계적으로 대중화를 시도하면서 동시에 태양광 충전시스템도 함께 공급하면서 자사의 차량을 무료로 충전하도록 하는 특별한 서비스를 구현했다. 테슬라는 자체의 인터넷망을 통해 자사 차량이 늘 네트워크상에 위치하게 해서 차량을 상태를 확인하고 새로운 업데이트를 제공하며 테슬라 사용자는 이 통신망을 통해 각종 데이터를 차 안에서 사용할 수 있다. 테슬라가 이런 환경에 적합하게 개발한 차량 용 OS는10인치가 넘는 대형 태블릿PC를 통해서 제어가 되는데 테슬라의 이런 선택은 기존 자동차들의 정보창 인터페이스를 바꾸는 유행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요즘 자동차 정보창이 세로 형태를 취하는 것은 스마트폰 환경의 영향이기는 하지만 각 브랜드의 경영자들이 파격적인 UI를 승인한 이유는 테슬라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테슬라 한국 진출, 현대, 기아 위주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필자가 최근 모임이나 토론(대부분 온라인)에서 자주 말하는 문장이 있는데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와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한국 내수시장의 크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40년 가까이 오로지 수출에 국가의 온 에너지를 쏟아붓고 수출주도산업에서 엘리트 기업을 지정하고 그 기업을 통해 수출액 달성에 매진을 했다. 1960~80년대 집안에 장남 하나 잘되면 집안이 일어난다는 패러다임은 가난한 집안 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입신양명한 큰 아들이 부잣집 처자와 결혼하더니 자기들끼리 잘난척하며 사느라 본가를 돌보기는커녕 창피해하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 이것이 바로 한국적 경제 생태계의 모습니다.





자동차 업계를 살펴보면 사실상의 독점 구조이다 보니 한국의 자동차 기술력, 세일즈 기술, 마케팅 기조,그리고 소비자까지를 포함한 자동차 문화가 딱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다.  이 꼭지에서 글쓴이는 혁신적인 테슬라의 차와 시스템이 한국에 진출하면 큰 자극제가 될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다. 확신보다는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라 본다. 얼마 전까지 테슬라 S를 타던 대기업의 고위 임원이 주위 시선 때문에 더 이상 테슬라를 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어이없는 한국의 자동차 문화 수준을 정확히 보이 주는 에피소드이다. 집에 버젓이 좋아하는 차를 두고도 조직에서 나의 위치와 주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경차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웃기는 상황은 한국에는 아주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이다.

필자도 테슬라의 진출이 마치 아이폰의 국내 도입 이후 우리가 겪었던 충격과 공포의 자동차 버전이기를 바란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아니 그렇게 하기 싫다면 외부의 압력을 받아서라도 변해야 할 판국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갤럭시 노트7 위기 테슬라 인수로 돌파!?!?!?!?!?!?!?!?!?!?

삼성전자가 사실상 고급 오디오 시장의 반을 점유하는 하만을 인수했다는 소식도 이후 전개될 큰 변화를 생각하게 하는데 삼성은 이미 몇 개의 유럽 소재 전장장비 생산 기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구글, 애플이 이미 자율주행차 개발을 비롯한 몇 가지 행보로 이미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마당에 삼성이 테슬라를 인수하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삼성그룹이 10년 전에 삼성자동차를 매각한 사실에 주목을 해야 한다. 비록 닛산의 구형 모델을 인수해서 제작했지만 완성차 기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인프라를 소유한 것이었는데 경솔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현재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삼성자동차 지분을 르노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반대 의견들이 그룹 내에서 제대로 논의 되지도 않았다고 하는 후일담은 기업 인수와 매각이 오너 혼자의 관심법에 좌지우지 되는 세습 기업의 모습 그대로이다. 결국 10여년이 지난 후 삼성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완성차 기업을 막대한 돈을 들여서 인수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테슬라'라면 더욱 더 많은 출혈이 필요할 것이다. 이 인수 경쟁에는 애플이 버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엘런 머스크는 분명히 테슬라를 잘 운영할 기업에 매각을 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사기일까, 선두의 자신감일까,테슬라는 모델 3을 왜 일찍 발표했을까?


테슬라는 S 모델 이후 테슬라 X라는 크로스오버 모델을 발표한다. 그러나 일부의 예상처럼 이 차량의 제조는 기술적인 문제에 봉착을 한다. 곧바로 테슬라의 주가는 떨어졌다. 그런데 테슬라는 이 위기를 엉뚱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개발 단계이던 모델 3 출시 예정 1년 반 전에 사전구매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굉장히 무모하고 일반적인 소비자 입장에서 사기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전술은 신기하게 소비자들에게는 통해서 사전예약 증거금만으로도 테슬라의 단기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고 1년 반 후에 출시될 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충성도 아니 거의 광적인 반응은 테슬라X의 문제 상황을 역전시켰다. 

그러나 모델 3 이후 테슬라가 가진 카드는 아직 없다. 게다가 테슬라의 성공의 핵심인 파격적 제품개발과 과감한 투자의 원동력이 엘런 머스크라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테슬라가 대중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엘런 머스크는 테슬라에 머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조원 낭비 NASA를 버려라, 화성 식민지를 향한 머스크의 도박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엘런 머스크는 그동안 읽었던 SF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같은 책들을 읽고 자랐는데 나는 왜 많이 다른 걸까? ^.^) 그가 가진 궁극의 목적은 지구 상의 인간을 구하는 것이고 구체적인 목표로 그가 제시한 것은 사람들이 화성에 이주해서 독립적으로 운영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우선 화성으로 물자와 사람을 태워 나를 우주선이 필요했는데 발사체는 애초에 앨런 머스크의 계획에 없던 부분이다. 그러나 러시아 발사체는 가격이 비쌌고 매번 발사 가격은 높아졌다. 심지어 발사 성공에 대한 책임소재도 불분명했다. 이것은 한국도 겪었던 부조리였다. 그래서 발사체를 직접 만들고 무인위성을  지구궤도에 진입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사기업이 우주산업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오랜 기간과 많은 실패 후에 스페이스 X는 NASA로부터 화물 운송을 의뢰받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물건 배달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사에서 직접 배달하는 비용에 20~30% 수준에서 서비스가 가능했기 때문이고 마침 미국정부는 나사의 고비용 문제를 사기업을 통해 해결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엘런 머스크는 스페이스 X를 시작하면서 테슬라에서 발생한 이익을 재투자할 계획이 이었지만 테슬라는 순익분기점을 넘지 못 했다. 따라서 NASA의 의뢰가 없었다면 스페이스 X는 이미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여기서 다시 테슬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서 엘런 머스크는 스페이스 X 사업을 위해 추가적인 자금이 더 필요하고 테슬라보다는 스페이스 X에 관심이 더 많다. 게다가 최근에 스페이스 루프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테슬라의 매각이 유력시되는 것이다. 테슬라는 어떤 기업에 인수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애플 인수 시나리오가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애플의 기업 문화가 테슬라의 현재 시스템에 가장 가깝고 이미 두 기업 사이에 양사의 인력들의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 신화의 비밀... 워커 홀릭, 엄청난 독서량, 페이팔 네트워크


엘런 머스크는 책을 많이 읽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고 한다. 방대한 량의 독서량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지만 엘런 머스크가 사업가로서 성공한 직접적인 요인은 과하게 일하는 태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그가 이혼을 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우리가 그것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개인마다 삶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가는 개인의 문제이다. 엘런 머스크가 일중독이라면 아마도 그가 이루고자 했던 꿈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열망이 크고 그에 따르는 노력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공상에 가깝다. 스페이스 X가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었다고 해서 당장에 목표인 화성에 주거지를 건설하고 사람이 영구 거주하는 것은 아직은 멀고 먼 이야기이다. 그러나 엘런 머스크는 스페이스 X를 통해 국제우주정거장으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사업을 수행하면서 의지만 확고하다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엘런 머스트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페이팔 마피아'라고 불리는 엄청난 인맥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세대의 벤처, 스타트업 성공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의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네트워크이다. 유대인 청년들을 키우고 그들의 아이디어가 사업이 되고 서비스를 시작하게 도와주고 서비스가 시작되면 엄청난 부를 가질 수 있도록 서비스를 사준다. 그렇게 인수, 매각, 합병을 통해 유대인 사업가는 막대한 자본을 거머쥐게 되고 그것은 다시 다른 사업으로 이어진다. 또 그렇게 형성된 부는 다시 다른 유대인 사업가와 유대인 청년에게 재투자된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서울대, 카이스트, 삼성SDS, 소프트뱅크라는 유대감을 통해 성장했다. 최근 5년간 급성장한 스타트업 과반수가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성장했다. 이것은 벤처 형태로 출발했던 네이버, 다음의 창립자들의 프로필과도 묘하게 일치하는데 한국 사회의 학연 선호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적 고착화를 무시하고 무조건 창업하라고 정부가 나서 청년들을 내몰다니...

이상으로 모빌리스타 테슬라 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글쓴이의 주관적인 평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번 호 후반에 첨부된 컬럼 한 가지를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SUV 인가. CUV 인가? 티볼리, QM3, 니로의 정체를 밝혀라!

필자가 차를 분류하면서 늘 이상하게 생각하는 지금의 SUV 정의에 대해 명쾌하게 재정의하고 순전히 세일즈 목적으로 SUV라는 탈을 씌우는 작태에 대해 비판을 하는 글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아는 동생이 쓴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빌리스타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반드시 와인과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들을 서비스하는 괜찮은 식당을 소개한다. 모빌리스타의 특별한 몇 가지 중 구성상 가장 튀는 내용들이다.



본문의 내용 중에는 모빌리스타의 편집의도, 각 필자의 의도와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소니 A550으로 촬영되었음. 
ⓒ 2015. KANG DONGHOON/강동훈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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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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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기억하는가? 세월호 참사로 전국민이 경악과 분노에 차있던 시절에 마침 출간되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는 분노에 찬 사회가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불편한 시선을 담고있다. 이 책은 사실 사건, 사고와 직접적으로 나타난 현상들 보다 이것을 두고 양분되어 서로를 할퀴었던 두 집단과 집단내의 반목을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재난과 사고로 끌어들여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이 책은 에세이였기 때문에 담고 있는 내용의 분량이나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

 

 

 

http://fass777.blog.me/14021188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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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필자는 라디오를 통해 진보적 저널리스트인 레베카 솔닛의 책 하나를 알게된다. '이 페허를 응시하라' 이다. 당시에는 이 책이 아직 번역이 안된 것으로 소개를 했는데 최근에 이웃블로거인 그녀생각님과 엘리트 패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생각님이 이 책이 이미 번역되어 있음을 알려주셔서 바로 구매를 했다. 고맙게도 리뷰를 남길 때마다 포인트를 쌓아주시는 반디앤루니스님 덕분에 포인트로 구매를 했다.




 

필자가 이책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사실 엘리트 패닉 때문이었다. 이 개념을 좀 더 깊게 이해하려면  나오미 클레인의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도 살펴봐야 할 것 같지만 일단 가격부터 부담스러워서 참고 있다. 솔닛의 이책에서도 재난, 재해, 사고시 보여주는 엘리트들의 무능을 넘는 광기를 엘리트 패닉의 한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의 주제는 엘리트들의 부정적인 반응보다는 현장에서 보여지는 재난을 넘어서는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모습들이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헬리팩스 폭발사고, 멕시코시티 대지진, 911, 뉴올리언스 대홍수 총 5개의 재해와 사고에 대한 소개로 나누어졌지만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은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의 이웃 즉 생존자들이 보여주는 강한 삶의 의지와 이웃에 대한 배려이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던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타인들의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 그리고 그들을 돕기는 커녕 적대시하는 엘리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떤 곳이던 사고가 발생한 후 짧은 기간동안 상호부조와 이타적인 유토피아가 건설되지만 조직이 개입하면 그 유토피아는 깨지는데 어떤 곳에서는 깨진 유토피아로 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역사에서 조차 지워져 버린다.

 

 

 

 

스치듯 지나가는 이런 유토피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는 원인에 대해 저자는 당장에 눈앞에 닥친 생존 문제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가족, 동료, 이웃을 보면서 슬프면서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만족하게 되며 가벼운 상처만 입은 자신은 중상을 입은 이웃이나 약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는데 이런 변화자체가 고무적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현대인들은 일상의 반복적인 삶에서 파편화되어 삶의 의미를 잊기 마련이고 그것은 늘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재난의 순간 그는 현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고 그일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도 꽤 고무적인 일이다. 

 

가장 불행한 상황앞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 이것이 재난과 사건의 현장에서 잠시의 유토피아가 나타는 이유이다.

 

 

 

 

 

 

현대인들이 가진 가장 무서운 병리학적 문제는 돈에 대한 너무나 강한 집착이다. 생존에 대한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함 때문에 만들어낸 각종 문명의 이기들, 그것은 반드시 돈이라는 등가물을 요구한다. 그 돈, 그 이기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존에 대한 불안은 끊임없이 내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달리라고 지시한다. 마치 앞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고 달려가는 여행쥐 무리같이 말이다. 재해는 이런 행진의 허리를 잘라버린다. 재산이나 권력보다 당장에 삶과 죽음이 중요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그렇게 소중했던 돈보다 시간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답은 의미있는 일들을 하며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한걸음 물러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거나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관여한다. 현장의 사람들이 죽음의 기로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반면 이들은 오히려 지금 가진 돈과 지금가진 물질적 풍요에 여유를 뺴앗길까봐 전전긍긍한다. 직접 가서본 현장이 아닌 언론에서 편집하고 의미를 부여해 보여주는 소식들은 이런 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이런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조직과 군대이다.

 

저자가 예를 들었던 5개의 사건들 뿐 아니라 필자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건, 사고, 재해에서 정부, 언론들이 보여준 대처는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게되는 조직의 문제도 같은 패턴을 가진다. 큰 조직은 어떤 문제에 집중할 자원은 많지만 수시로 변하는 현장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너무 둔하고 경직되어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피해 당사자들, 작은 규모의 비정부기구 그리고 비전문적인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들, 잦은 상황변화에도 효율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나 군대 등의 대규모 조직은 큰 규모의 질서유지와 보급문제 이외에는 비정부기구나 현장의 공동체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자원보급만 잘해주면 현장에서 알아서 잘 해결해 나가기 때문인데 문제는 정부는 그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통제권을 벗어난 다른 조직의 활동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것이 강한 힘을 가진 또다른 조직으로 발전하기를 원치 않는다. 정부를 비롯한 각종 조직과 지역 경제를 기반으로 한 기업들에게 그들의 통제를 벗어난 지역 공동체는 그들이 추구하는 이익 활동에 반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미 2세기도 지난 제국주의 시대의 이론들 예를 들면 '르봉'의 망령들은 엘리트들에게 피해자들이 순식간에 폭도로 변한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군대와 경찰이라는 무력수단이 있기 때문에 손쉽게 현장에 무력수단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무력수단이야 말로 통제가 쉽지 않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늘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지진, 무기 수송선의 폭발, 비행기와 마천루의 충돌, 허리케인과 홍수은 분명한 재난이었고 많은 인명과 재산을 빼앗아갔다. 그런데 이 고난들은 그냥 고난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들과 피해지역에 무엇인가 희망의 씨앗을 남기도 지나갔다. 다만 어떤 곳에서는 잠시 피었다가 짓밟혔고 어떤 곳에서는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저자는 진짜 재해는 엘리트들의 두려움에서 기인했다고 까지만 말했지만 필자는 사실 인간이 지구에서 살면서 만들어내는 많은 것들이 재난 상황에 준한다고 말하고 싶다. 뉴올리언즈에 일어난 재해는 사실 제방이 무너지면서 생긴 홍수로 인한 것이었기 떄문에 자연재해라기 보다는 인재에 가까웠고 해당 지역을 페쇄하고 재난민을 방치하고 지역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방치한 것은 재해/재난이 아닌 범죄였다.  더 나아가 원래부터 단층지대라고 알려진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에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주기적인 지진에 노출이 된 것이다. 지진이 나면 냉각기가 고장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사용하던 방식으로 운전하고 지진이 나고 해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면서 원자로 가동을 멈추지 않았기에 일본 동부지역이 피폭되는 희대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다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도 똑같이 그런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고 그런 재난, 재해, 사고의 피해자이면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피해 현장에서 더 다친 이웃을 돕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안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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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
헤르만 헤세 지음, 구기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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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 때의 추천 도서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미 어린시절부터 소위 말하는 평균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것인지 대부분의 추천도서를 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읽을 생각도 안했다. 그떄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권장도서를 읽는 것보다는 그림, 당시 어른들의 용어로는 낙서를 하며 공상을 하면서 지난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불리는 명작들은 30대에 읽었고 일부는 40살이 넘어서 읽고있다. 늦은(?)나이에 읽은 이들 권장도서는 왜 권장도서인지 이해가 안간다. 청소년 시절에 읽어서는 이해가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너무 길고 등장인물의 수도 많아서 따로 메모를 하면서 읽지 않으면 이야기 전개를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에코의 작품들은 등장하는 명사들을 따로 찾아보지 않으면 장면을 그려내기 어렵다. 그런 예들은 좀 더 많은데 열거해봐야 소용없는 짓이고 오늘 소개할 데미안의 이야기를 하자면 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젋은 세대가 했던 고민들과 소위 말하는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의 끝을 그리고 있다. 표면적으로 성장기적(Enneagram) 소설로 주인공이 자주적인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 내부에는 꽤 복잡한 사상이 심어진 작품이다. 단순히 성장기적 소설로 간주하고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강요하기 전에 싱클레어가 말하는 내용들을 살펴봐야 한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아프락사스."

 

 

 

 

신은 바로 나이다. 라고 싱겁게 내린 결론은 필자를 불쾌하게 한다. 

 

아프락사스라 명명한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신이 결국 나였다라고 하는 명제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불러낸 것도 아프락사스라는 신, 자신이 날아갈 결국에 대해 고민했던 과정 역시도 그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왜 애써 아름다운 시절의 종말의 시점에서 굳이 '자신인 신'을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소위 지성의 시대요 후기 산업혁명 시기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는 세계대전 이전 세대의 문제인 지나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에 대해서 애써 무시하면서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시대의 가치로 다시 자기의 이성에 기대는 것일까? 

 

 

 

 

헤세같은 지성이 인간이 가진 한계을 이해 못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자신의 그의 성장과정에서 싱클레어 같은 과정들을 겪었을 것이다. 사실 싱클레어가 카톨릭의 전통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간다는 전개과정이 헤세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헤세는 가족의 전통에 의하면 아버지를 따라 개신교 목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환경에 반발하여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청년 시절에 인도를 다녀온 후 가치관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아프락사스라는 자기 자신'이 인도의 신관과 닮아 있다는 주장도 있다. 헤세가 불교도 였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지는 것이고 데미안에 불교적 세계관이 녹아들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렇게 본다면 싱클레어의 주변을 맴돌기도 하고 때로는 대리인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 이상한 존재, 데미안은 누구인가? 결국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바로 자신임을 암시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완성된 모습인 데미안을 미완성의 싱클레어가 쫒아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교도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원한 해탈의 존재 즉 성불의 모습이 데미안인것이다. 필자는 데미안을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는 없다. 기독교도로써 해석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는 두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필자의 주장의 요점은 데미안을 단순히 애니어그램으로 보기에는 헤세의 사상 세계가 보다 고차원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데미안을 출판 당시의 사람들의 인지 상황이나 수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읽히기 전에 부모세대가 좀더 넓은 시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는 책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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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와 수수께끼 - 실리콘밸리 기업가의 성공하는 삶을 위한 아주 특별한 가르침
랜디 코미사 지음, 신철호 옮김 / 럭스미디어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창업을 하려는가? 

 

필자 역시 한 명의 파트너와 함께 창업을 생각하며 서비스를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책은 같이 창업을 준비중인 파트너가 권해준 책이라 추천 이유가 지금도 궁금하다. 




랜디 코미사는 그 옛날 필자를 비롯한 많은 젋은 남성들이 열광했던  TIE  Fighter, Rebel Assault 같은 루카스 아트(Lucas Arts)의 베스트셀러 비디오 게임를 주도했던 인물중에 하나이다. 이 책이 발간된지 조금 시간이 지난 상황이라 그의 근황에 대해 따로 찾아보지 않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 어딘가에서 개와 산책을 하거나 묻지마 식으로 무작정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단골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만나 그가 들려주는 사업계획을 비판적으로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나라는 창조경제니 창직이니 해서 창업을 권장하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나라에서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데 그 진위나 장단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한번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써볼까는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실리콘 밸리에서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예비 창업자들이 물려들고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실리콘 밸리는 2000년 초의 닷컴버블(.com Bubble)이 붕괴된다고 세상이 떠들어 될 때도 여전히 건실한 기업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그 후 몇 차례의 붐(Boom) 같은 밀물과 썰물에도 여전히 새로운 기업이 태어나고 죽었다.  세상의 상황이 달라져도 이 곳은 창업과 발전 그리고 실패가 계속 진행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너무나 작게 시작하여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된 사례는 많다. 
그 대표적인 기업중에는 HP가 있고 지금도 실리콘밸리의 중심인 팔로알토(Palo Alto)에 본사를 두고 있다.  캘리아포니아에는 50년도 안되는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기술 기반의 회사들이 즐비하다. 

이렇게 10년도 안되는 기간에 시가총액이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포진한 실리콘 밸리는 부가 집약되고 그것이 폭발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린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성공적인 창업과 성장을 이룬 기업들의 그늘에는 몇 십배 아니 몇 백배의 실패한 벤처 기업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지 몇%의 가능성에 인생과 돈을 투자한다. 성공 확률이 단 1%라고 해도 그 1%가 구글같은 기업을 성장하는 선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번 이 희망에 중독되면 빠져나가기 어렵다. 마치 매주 로또를 사고 TV앞에 앉아있는 습관이 든 사람들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창업이라는 과정은 굉장히 어려운 선택들의 연속이고 투자가 이루어지고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도 이런 선택은 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랜디 코미사는 레니라고 하는 열정적인 예비 창업가를 소개한다. 열정적인것은 물론이고 매우 사업수완이 좋은 듯 보이는 이 청년을 코미사는 근심스럽게 바라본다. 잘 준비된 사업계획서, 현란한 화술 그럴듯 해보이는 장표들... 그러나 코미사는 그에서 그가 원하는 예비 창업자의 준비물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미 그의 친구이자 유명한 투자자(VC)인 프랭크가 투자를 고려 중이라고 해서 만나보았지만 이미 그는 프랭크의 투자가 그룹이 레니에게 투자를 안할 것으로 직감했다.





코미사는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창업의 이유에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꼭 이걸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실함 말고 이것을 안하면 죽을 때 후회할 그런 절실함 말이다. 그것이 없으면 배고픔과 시련 그리고 자존심 상할 일들 앞에서 이 일을 포기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함께 하는 창업멤버들이 누구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사업 아이템 즉 수익 모델은 아무리 좋아도 실제 시장에 내놓기 전에는 성공여부는 그저 종이나 그들의 머리 속에 희망사항일 뿐이다. 따라서 한 기업이 일정 궤도로 진입하기 이전에 몇 차례의 실패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팀이 견제할 수만 있다면 다음 또는 그 다음에는 의미있는 진보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의 횟수나 재기하는 기간이 짧으려면 같은 업종이나 서비스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이나 비슷한 서비스로 이미 실패를 경험한 이가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코미사는 조언자의 역활로 종종 신생 기업에 직원으로 참여하는데 이 때의 조건 중에 하나가 동종에서 실패 경쟁이 있는 이가 함께하느냐 여부라고 한다.

그것이 준비된 이후에 자신들의 사업이 어떤 것인가를 정리하고 문서화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예비 창업자들이 이 부분에 집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실제 자기돈을 투자하는 엔젤(Angel)이 아닌 남의 돈을 대신 투자하는 VC들의 경우에는 이 부분을 많이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벤처기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실상 그 말하는 내용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자는 코미사 같은 이가 단순히 이 책을 예비 창업자만을 위해서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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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기독교 (보급판 문고본) C. S. 루이스 보급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외 옮김 / 홍성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C.S.루이스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 쪽에서는 꽤 비중 있는 인물이다. 그는 많은 변증서를 저술 함으로서 사도 바울과도 비교가 될 정도이다. 또 이 책 ‘순전한 기독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고전으로 칭해진다. 많은 변증서 중에서도 ‘순전한 기독교’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 책이 평신도들의 일상에 맞는 시각으로 기독교인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게 되는 문제와 시점으로 해설이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독교와 교회 그리고 기독교인에 대해 안내서로 읽어도 될 정도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아는 교회와 성도가 당연히 행하게 되는 것들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자칫 그리스도인의 자기 개발서/행동 안내서 정도로 이해 될 수 있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밖으로 행하는 행동의 근간인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셨길래 그리스도인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는가? 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랬던 것은 그의 시각이 매우 넓어서 믿지 않는 이들도 거부감이 없을 만하다는데 있다. 그렇다고 핵심을 아무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 중심은 아무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언저리의 표피적인 것이라도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C.S.루이스는 아일랜드 교회 집안에서 자랐고 젊은 시절에는 무 신앙자로 살다가 30살이 넘어서 다시 신앙을 받아드려 성공회에 입교한 인물이다.  보통의 철이 들어 개심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는 배우고 상고하는 과정을 통해 믿음을 받게 되었다. 학자인 그가 신앙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지식의 풍부함이 넘쳐서 자만을 하곤 하는데 그것으로 신앙이 스며들 틈이 없지만 C.S.루이스는 오히려 넘치는 지식으로 지혜에 이르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특정한 교파에 속해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초교회파적인 입장으로 보였다. 그가 상고하고 고민한 과정들은 그의 이 후 저술을 통해 믿음의 후진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고 있다. 

 

 

이 책은 라디오를 프로그램에서 그가 설명했던 기독교 교리들을 모아둔 책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설명은 더욱 현실에 가깝고 쉬워야 했다. 이러다 보니 이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기독교의 교리를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이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책이 된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이것은 당연히 저자가 스스로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정의를 굳건히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 안에 믿음이 굳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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