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김창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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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천로역정으로 번역이 된 존 버니언의 이 역작은 성경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읽혀진 책이다. 그 명성답게 이 책은 현재는 성경보다 더 안 읽히는 책이 된 것 같다. 어린시절 잠깐 이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불혹의 나이에 드디어 읽게 되었다.

 


존 버니언의 원래 직업은 땜장이였고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과정만을 마쳤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과 예수에 대한 믿음은 그로 하여금 예상치 못한 인생역정을 가게 한다. 올리버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기간 동안 의회군으로 참전하고 설교의 자유을 위해 투옥도 마다하지 않는다. 천로역정의 1부에 해당하는 크리스천의 이야기는 감옥에서 씌어졌다. 석방이 된 이후 설교가로 활동하던 그는 오랜 기간 후에 크리스천의 아내 크리스티나의 장성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집필한다.








변변한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책이 귀하던 시절에 존 바니언이 장편의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 능력이겠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그가 출석하던 베드포드 셔주  엘스토우 교회의 목사의 도움이 컸다.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와하던 그는 어느날 길거리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어떤 여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엘스토우 교회를 알게된다. 그녀들이 인생을 즐겁게 사는 원인 중에 그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와 그를 통해 자신들안에 임한 성령의 도움심이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 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을 천성으로 향하는 순례길로 인도하고 크리스천이 지치고 쓰러질 때 나타나 그의 영성에 힘을 주는 전도자라 불리는 캐릭터는 이 목사라고 알려져 있다.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붉은 팻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교리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필자는 논할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지만 이 문구는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그들의 외침은 마치 예수만 믿으면 천국가는 것처럼 들리곤 하는데 정말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가는가? 그들을 이단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기독교인도 그들의 자극적인 선전문구처럼 예수 믿고 천국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이 두 부류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들에게는 '예수 안믿는 니들은 지옥간다.' 로 들릴 뿐이다.


다시 원래 길로 돌아가자.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선동구호의 자극성 때문에 간과되곤 하는 것중에 하나가 신앙은 길고긴 여행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성경과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이라면 인간이 철저히 죄덩어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기에 예수의 십자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천국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옮은 명제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행위를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행위로 치환하거나 예수를 믿은 이후 신앙을 가진이가 어떤 삶의 여정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무시할 가능성에 주의를 해야 한다. 


예수를 믿음으로서 변하지 않은 구원을 얻는다는 이론(?) 이미 중세초기에 논란의 되었었다. 소위 펠라기우스 파라고 불리는 신학자들과 그 주장을 따르는 종교지도자 그리고 신자들이 존재했다. 이 주장은 당시에 주류들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었지만 지금도 이런 주장은 유효해서 지난 역사를 통해 종종 표면에 등장했다. 최근에 구원파도 이런 신학적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대의 주장을 하는 소위 '알메니언 주의'는 이단시 되고 있지는 않지만 종종 극단으로 치달으면 본질을 벗어날 공산이 큰 주장이다.







천로역정은 신자가 예수를 믿은 후 하늘나라로 불리울 때까지의 인생 여정에서 어떤 일을 겪게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나님의 천성으로 가는 크리스천과 그의 가족 그리고 믿음의 동료들과의 여정을 통해 설명을 하는 책이다. 

예수를 알게되면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고 긍정적으로 말하지만 실상 이 여정을 시작하면 번뇌가 찾아온다. 성경을 제대로 읽고 나면 언젠가 결국에는 죄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다. 아직 믿음이 약한 초신자들에게 이것은 굉장히 두려운 것이다. 책을 읽고 자신이 사는 죄악의 도시가 곧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을 안 크리스천의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움이 떨었던 것처럼 말이다. 전도자가 그에게 알려준 방법은 좁은 문을 통과해서 하나님의 천성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심판을 면하고 생을 구하는 길은 그것뿐이다.


좁은문, 즉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인정하고 따르는 일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인정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말하고 먹고 마시던 세상의 즐거움들이 갑자기 역겹고 두렵고 무서운 죄의 조성물이요 죄의 결과로 보인다. 그런 것들이 함께 하는 지인들 심지어 가족들까지 나를 배척하고 미워하게 된다.


이것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지만 좁은문으로 들어가고 나면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나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마음과 머리로 완전히 이해되고 공감되고 그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 되어야 책을 읽고 난 후에 등뒤에 붙은 무거운 짐을 벗게된다. 교회에서 쓰는 말로는 바울이 이야기한 성화의 과정중에 하나이다. 세상을 살면서 짓게되는 죄 세상과 가족과의 관계로 인해 지워진 무거운 짐이 더 이상 무겁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기 전에 지은 모든 (원죄를 포함하여)와 그로인한 무거운 짐은 벗었지만 성도는 천성으로 가는 긴 여정중에 사악한 세력의 유혹과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성경에서는 게으름을 죄와 동일시 한다. 이 부분은 필자의 다른 글에 설명이 있다.)으로 인해 천성으로 가는 하나의 좁은 길을 벗어나 넓은 샛길로 빠진다. 그 길은 악한 세력의 소굴이거나 심지어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성경을 수십번 읽었다고 해도 일십조를 열심히 낸다고 해도 세상에 봉사를 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내 돈과 시간을 쏟는다고 해도 인간은 시시때때로 크던 작던 사잇길로 빠져서 죄를 범하고 그 때문에 후회하고 번민하기를 반복한다. 특히나 믿는 이들은 자신이 습관처럼 짓는 죄로 인해 벗었던 짐을 다시 지고 나락으로 빠지기도 한다. 세상 사람이 나쁜 행위로 죄를 짓는다면 믿는 이들은 죄를 짓는 행위에 그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는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더니 이건 안 믿었을 때 보나 더욱 지옥이다. 맞다. 성령이 내안에 들어와 강력한 양심으로 작동을 하면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진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어떤 일까지 했는지, 왜 그러시는지를 마음과 머리로 정확히 알지 못하면 가슴을 찌르는 죄책감 때문에 예수를 믿고도 '불신지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래도 '예수천국'을 글자 그대로 이해할 것인가? 글자 그대로 이야기 하자면 '예수고난' 인것이다. 

 

믿는 이들의 인생은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서 탄탄대로 세상 천국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준비된 천국에 들어갈 만큼 비워질 때까지 탈탈 털어내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었다고 모두 고난을 받거나 가난하거나 소외되어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방법과 능력이 주어졌다. 부자로 살았다고 지옥으로 가거나 가난하게 살았다고 천국을 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삶을 세상의 기준으로 재어보고 그것이 축복을 가늠하는 기준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크리스천의 아내 크리스티나와 아들들 그리고 믿음의 동료들의 순례길을 다룬 2편에서는 용감무쌍이라는 전사가 그들을 호위하고 거기에 천성 가까이에서는 강한믿음이라는 강인한 노인까지 동행을 한다. 1편에서 크리스천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 지나간 길을 너무나 가볍게 지나는 듯 해서 마치 하나님이 누구는 도와주고 누구는 도와주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데 1편을 자세히 읽어보면 크리스천에게는 보다 강도 높은 믿음이 필요했고 크리스티나에게는 강한 신뢰가 필요했다.


필자는 2편의 후반부에 용감무쌍이 강한믿음에게 들려주는 전전긍긍의 이야기를 하고 천로역정에 대한 글을 끝내려고 한다. 생각의 꼬리를 물기 시작하니 한도 끝도 없이 이어져서 여기서 잘라야겠다.


전전긍긍은 크리스천이 살았던 멸망의 도시 인근에서 살았는데 자신이 구원 받지 못할 존재가 아닐까 너무나 두려워서 좁은 문 앞에서 몇일을 앉아서 안에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몇 일을 먹지도 못하고 비와 추워 그리고 밤마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야생동물의 울음 소리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두려워 하면서도 문을 못 두드렸다. 겨우 주먹을 문에 대고 두드렸을 때 안에서 문을 열어주어 좁은 문으로 들어왔다. 그의 이런 상황은 여정 중에도 전혀 개선이 보이지 않아. 밤의 계곡을 통과하는데 다른 순례자 보다 몇 배나 더 오래 걸리고 중간 중간 휴식처에서도 자신이 구원 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문을 두드리지 못해서 오랜 동안 문앞에서 서있었다. 도저히 여정을 못 마칠 듯 해보였지만 그는 천성을 향해 내딘 걸음을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순례자가 넘어지고 고꾸라져서 너무나 힘들어하는 적지 않은 순례자가 오르지 못해 포기하는 가파른 언덕과 비탈을 너무나 쉽게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만나게 되는 천성문 앞을 흐르는 깊은 죽음의 강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크리스천 같은이 순례 여정 중에 엄청나게 강해진 이들도 두려움에 머뭇거리고 허우적 거리던 죽음을 강 앞에서 울며 자기가 구원 받지 못할 것이라 하던 그가 강물에 발을 담그자 강이 순식간에 말라 발목 높이로 줄어들었고 전전긍긍은 죽음의 강을 걸어서 건너 천성문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왜 이 못난 순례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질문을 하며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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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 2015-04-07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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