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짐 - 내 삶이 행복해지는 항복훈련
더글러스 웹스터 지음, 배응준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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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에 좀 무겁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라서 내 고민이 도움이 되지 않지만 책임자라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아내가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주었는데... 나는 같이 온 낮추이라는 책을 열심히 읽고있다. 낮추는 것과 내려 놓은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이지는 않지만 내가 낮추임을 먼저 잡은데에 의미를 두고 싶어진다.
 

 

이 책은 기독교, 특히 개신교 신자들을 위한 책이고 이야기의 소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을 가지고도 인간을 어찌 대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위에서 굴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어서  봉사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성이고 완전하며 죄없는  완벽한 존재(그러면서도 또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이기에 현대의 우리의 이성적인 사고로는 괘변 같은)이면서 먼저 자신을 낮춤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실천했던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보면서 기독교 신자들이 어찌 살아야 하는 가를 일깨운다.
 

필자는 개신교에 입교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 60,70년대 어린시절 많은 아이들이 동네 교회를 한 두 번은 들락 거렸다.
부활절과 성탄절에 주는 선물과 과자들... 여름성경학교에서의 놀이등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 교회는 우리들에게는 낮선 곳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고등교육을 받고 자신의 생각이 생성되고 나면 많은 비 기독교인들이 개신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같은 기독교인데도 천주교와 개신교를 보는 시선은 또 다르다.
천주교는 오랜 동안의 기간 동안 현지에 맞는 방식으로 변했고 보편적인 인간 사회의 잣대를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고 개신교는 그에 비해 매무 보수적인 교리를 적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매우 강한 유교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전반의 보편적인 정서라는 것이 중요하고 그 중에 도덕률이 가장 기본이 되는 인간의 도리인데 개신교의 생각에서는 도덕 률에 앞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여호와를 믿는 것이기 떄문이다. 비 기독교인이 보기에는 예수만 믿으면 도덕적이지 않아도 천국 간다는 논리는 비약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은 각종 미디어등에서 개그 소재나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드는데 자주 이용이 된다. 예를 들면 투캅스에서  안성기는 형사이지만 온갖 자잔한 비리의 온상이다. 그런데 안성기는 주일에 교회에 가서 울면서  그 주에 행한 악행을 씻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주를 준비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 것은 비 기독교인들이 바로 보는 시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나 종교적인 체험에서 개신교도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매우 열정적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 오해를 하기도 한다.
순간 느껴지는 종교적인 체험과 그 표출 모습은 매우 사적인 부분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은 불편하기 그지 없고 심하게는 '광신도' 라는  단어까지도 등장시킬 만하다. 보편적이지 않은 모습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라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과잉행동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개신교에 대한 비 기독교 신자들의 오해가 심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 한 듯이 자신의 의지를 떠난 어떤 체험이 아닌 의도적인 행동이 종교적인 체험의 순간에 일어난 다거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 보다 예배 드리는 행위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신자가 있다면 이것은 어찌 보아야 할까? 교회 밖에서 어찌 보던 이런 신자가 실제로 있다면 이 것은 중요한 문제라고 보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소위 통성기도라고 하는 기도의 내용을 입밖으로 크게 외치는 기도의 형태나 방언이라고 해서 일반인들이 알아드리기 힘든 외침으로 기도를 하는 것은 개신교의 예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통성기도는 자주 보는 정도가 아니라 장로교파 중 일부 엄숙한 분위기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개신교에서 하는 기도 형태이다. 그런데 필자가 지적했듯이 이렇게 들어내는 행동이 혹시라도 남에 보이기 위해 과장되거나 의도된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을 들어내기 위하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이런 행동은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지체와 교제하며 건강한 생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화려한 예배, 멋지고 큰 교회당, 은혜롭게 보이는 기도 모임, 설교가 멋진 목사에 집중하는 오류 범하는 것도 연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쉽게 말하면  내가 교회에 오는 행위, 능력있는 목사님의 멋진 설교, 유명한 교회의 교인, 교회에서 맏은 직분에 집중하여 정작 주님의 말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여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동떨어진 상황에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그것은 마치 환타지 같은 이야기로 들릴 것이고 그 것을 습관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 예로 희생양 제사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희생양 제물은 그냥 글 자체로 받아들이기 떄문에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 희생재물이 된 것으로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만일 현대인들이 희생재물이 어떤 의미인지 잘알고 있다면 예수의 희생제사를 생각하면 끔찍하다거나 서러움이 복바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 대목을 그냥 지식과 습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진정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면 예수의 생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이 당연 할지도 모른다.
내 동생이 내 형이 33살의 젋은 나이에 진리를 전하려 다니다가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반나절을 고통속에 말라 죽었다고 생가하면 당연히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치밀 것이다. 

 

바로 앞에서 필자는  개신교의 통성기도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을 전했다.
현명한 독자라면 이것은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눈물로 기도를 한다. 그러니 그 진정성이 없다는 점을 굳이 이야기 하자면 일부에 국한 될 것이다. 하지만 진정성이라 부분이 누군에 대한 것인가를 이야기라면 과연... 예수의 희생양 되심을 생각하면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내 자신도 내 고통을 이야기 할 때는 눈물을 아니어도 진정성을 가지고 기도를 한다.

앞서 이야기 했 듯이  근대 지성의 시대 이후 인류는 모든 것으로 정반합으로 논리를 맞추어서 판단하는 습관이 들었다. 소위 합리주의니 이성주의니 하는 사상들에 의하면 내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논의 대상이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이 말은 참 멋진 말이지만 내 존재 조차도  검증이 필요한 시기에 사는 인간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느껴진다.

 

나는 존재한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증거를 찾아 증명해야 내가 존재한다면  존재 자체가 불행할 수 있다. 
내 존재 사실도 부정으로 부터 애써 증명하게 된다면 내가 다른 타인의 존재의 어찌 증명할 것인가? 생각하니까 존재하는 인간이라면 내가 남의 생각을 대신 하지 못한다면 남의 존재는 어찌 증명할 것인가? 이 질문 자체가 모순이다. 현대의 인간들은 합리라는 제약안에서 사고 하게 됨으로 써 스스로 또 하나의 고통에 갖힌 것이라 볼 수 있다.

 

증명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데 인간이 가진 증명의 방법이 완전하다고 보장 할 수 없다면 인간이 믿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발생한다.
이런 모습들이 현대인들 사이 만연되어 있다.
저자는 신학교에서 겪어던 고통스런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신을 가르치던 신학교수들이 예술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확시이 없었던 것 같은데... 목회자들을 가르치는 신학자들이 믿음이 아닌 학문으로써... 일로써 신학을 가르치는 상황에서 필자는 절망 스러웠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원죄는 선악과 따먹음으로 써 시작하고 중동과 서아시아의 설화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고통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이 두가지 이야기는 공통으로 인간의 호기심이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즉 지나친 호기심으로 금지된 열매를 먹어서 자신이 알몸임을 알고 어둠으로 피하고 열어보지 말라고 한 상자를 열어 온갖 고통을 인간세상에 풀어버린 것이다.여기서 지나친 호기심이 일어난 이유를 찾다보면 자만심과 연관된 것을 알 수 있다. 무언가를 자세히 살펴보고 먹어보고 열어보면 자신이 자신의 배경인 세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이 호기심을 부추긴 것이라는 비약(?) 이 가능하다.

 

성경에 보며 야휘가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 괴롭히고 살려내고 괴롭히고 살려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 받을 때와 구원 받을 때의 상황은 단 하나 그들이 야휘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가장 큰 죄는 바알로 대표되는 이방신과 우상숭배이다. 그들이 야휘에게 순종할 때는 고통을 내리지 않았고 고통중에라도 건져내었다. 

이런 일련의 반복된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신에 의지하지 않고 자만하고 방종하여 스스로의 신을 만들어 낸일 때문이다. 즉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의 신에게 순종하여 그 안에 머물고 의지하지 않음을 경고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현대인들은 보통의 경우라면 자신에게 닥힌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또 공동의 문제나 타인의 문제도 처리하려고 하고 처리하기도 한다. 특히나 물질 세계의 일들에 대해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문제 해결이 되는 것 처럼 보인다. 또 해결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비물질계를 함께 가지고 있다. 즉 마음의 문제도 물질계에서 처럼 인간의 의지로 조절이 가능할까?
일면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오랜시간 우리의 삶을 잘 생각해 보면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가는 것은 필자의 잘못된 생각일까?
인간의 지성이 관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요? 물질계에서는 그 유효성의 기한 표기가 아직 안보일 수도 있다.(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차치하고라고 비물질계에서는?

  

예수는 길지 않은 공생활 중에 늘 한 부류를 공격했다. 늘 낮은 자세로 행동하여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세리, 죄 때문에 병에 걸렸다 하여 멀리하던 병자들과 가까이 하고 무식쟁이들을 제자로 삼았고 그 제자들에게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행동인 발 씻김까지 했던 그가 악마라고 까지 욕을 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리세인들과 사두게인들 이었다. 특히 바리세인들을 경멸했는데 그 이유는 한가지 였다. 잘난 척하며 사람들에게 인사 받기 좋아하며 종교적으로 경건한 척했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 목회를 하기 때문에 죄없이 깨끗한 분이 그렇게 통열히 비난을 한 것이다. 

 

혼자 잘나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없다면 누군가의 그늘에 기대는 것도 필요하고 누구와의 관계에서 봉사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지혜로 낮추임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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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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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초인가? 유튜브에서 이미 랜디포시 교수가 출연한 '오프라 원프리' 쇼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몇 가지 이야기가 기억이 나는데 늘 걱정을 하며 사는 '이오르'와 늘 방방 떠다니는 '티거'에 대한 이야기, 박사학위를 받은 아들을 '네 아들이랍니다. 방금 닥터가 됐지만 병을 고치지는 못한답니다.' 라고 소개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이 남는다.
 


최근 몇 주 동안 야근은 기본이요 철야을 주에 3~4회씩 하는 와중에도 책을 3권이나 읽었다.
지난 주일 그러니까 7월 25일, 아내는 사당까지 와서 식사를 같이 했다. 아내는 다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북쪽으로 가고 난 지하 서점에서 10분내로 읽을 책을 골라야 했다. 원래 사고 싶었던 책은 '내려 놓음'에 대한 책이었는데 찾지 못하고 있던 터에 이 책이 보였다. 덥썩 집어서 계산을 했다.

책의 분량에 비해 비싼 12,000원, 할인도 없이 그냥 샀다. 



랜디포시는 마지막 강의로 유명세를 타던 당시에 필자도 호감을 가지고 있던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공학부 교수였다. 그의 전공은 가상현실 -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되는 학문이다. 또 그는 말기 췌장암 환자로 반 년도 못 산다고 선고 받았고 임종 전까지 편안한 생을 마감하기 위한 최소한의 화학요법을 받고 있었다. 강단에 오른 그는 말기 암 환자로 보기에는 강단있는 모습과 밝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 던지 이야기에서 그는 자신이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암 환자이며 의학적으로 치료를 포기한 상태임을 밝힌다.
(그는 자신을 부상당한 사자로 표현하고, 부상당한 사자도 포효하고 싶어한다고 표현한다. 또 자신의 병을 '방안의 코끼리' 같이 감추고 싶은 이야기 지만 말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마지막 강의는 명예 퇴임하는 노교수들의 퇴임인사 같은 행사이지만 포시는 이 강의를 독특한 목적으로 사용한다.
그가 얼마남지 않은 시간 중에 작지 않은 시간을 사용하여 강의 준비를 한다. 이유는 그의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랄 아이들을 위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자신의 거실에서 촬영해도 되었지만 공개 강의를  통해, 방송을 통해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정하고자 했던 이유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서글픈 유년을 보내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부재 보다 더 큰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 였다.

 

그는 디즈니랜드를 사랑했고 그 때문에 디즈니랜드에서 일할 꿈을 꾼다.
사실 디즈니랜드에서 일할 기회는 쉽지 않다. 교수 생활 중에 안식년을 얻어 일했던 이미지니어도 순전히 억지를 부려 얻은 자리였는데 여기서 그는 알라딘에 등장하는 마술카페트를 모티브로 한 가상현실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래서 인지 그는 꿈을 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한다. 자신 스스로도 어린시절 디즈니랜드을 만드는 사람에 되겠다는 생각이 노력끝에 현실이 되었고 자신의 가르친 학생이 어린시절 제다이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어 ILM에 입사하여 스타워즈 에피소드 II에서 중요한 역활을 한 것을 예로 든다.

  
포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꿈을 확장하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까지도 그가 들려주는 아버지의 사랑담긴 잔소리(?)을 듣게 하는 것이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마치 인생의 비밀이라도 되는 냥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마치 성자 처럼...

어느 날 그는 학교 근처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볼크스바겐 비틀 카브리오레(헝겁 지붕이 열리는 차)의 지붕을 열고 왼손을 차 문위로 살짝 내어 놓고 음악을 들으며 평안한 얼굴로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  누가 그를 말기 암 환자라 하겠는가?


나의 마지막 강의를 어떤 내용을 꾸며야 할까?

 

성자 랜디포시는 2008년 7월 25일 새벽, 자택에서 좋은 세상으로 떠났다.
필자가 책을 사던 날로 부터 꼭 2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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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스 Chance - 패러다임이 바뀌는 곳에 기회가 있다
이남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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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는 말로 인생에서는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그 기회는 40살 전에 2번 그 이후에 한  번 온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생일대의 기회가 기회인지도 모르고 보낸다. 기회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수소의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말들에 동의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실제 기회를 잡아 성공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기회라는 것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것을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용하다는 점장이에게 물어본다. '그 기회가 언제 오냐고?' 또는 '이번에 뭔가 하려고 하는데 일이 좀 되겠냐고?' 점장이들은 답을 한다. '동쪽에서 귀인이 온다.',' 동쪽으로 가면 돈 냄새가 난다.'는 등등...
어떤 이들은 거금을 들여서 여러가지 샤머니즘 적인 행위도 한다.

기회라는 놈, 영어로 Chance라는 놈은 과연 모든 사람에게 공통하게 오기는 하는 것일까요?
앞서 이야기한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한 말 같지만 인생 역전의 기회 3번 정도는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평하다고 해야 하겠다. 요즘 세상에 공평하다는 말 자체가 워낙에 고마운 일이라서... ㅋㅋㅋ  그러나 공평하게 온다는 기회를 알아보고 잡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기회를 잡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도 그것을 잡아서 사용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고 책임이다. 자기가 챙기지 않은 기회에 어찌 하리요?

 

기회는 잡아야 기회지...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그냥 지나가는 기회는 기회라고 할 수도 없다. 잡아서 써 먹어야 기회인것이다.
또 기회는 아무에게나 나타나지도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기회가 와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은 사람을 주체로 다시 말해보면 기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준비하고 있던 사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딴데 보고 있다가는 내야에서 날아오는 공을 놓친다고 상상해 보자. 홈런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는데 옆 사람과 이야기 하느라 홈런성 공을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공을 잡을 수 없다.
홈런 공을 잡기 위해서는 야구장에 가야 하고 외야에 앉아야 하고 글로브나 채집망등을 구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맨손이라도 잡으려면 거기에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잘 준비하고 있어도 막상 공이 날아오는 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공은 커녕 공에 맞아 다칠 수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최고가 되었는가?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 매출 1000억의 벤처 기업가들이 어찌 하여 그리 성공했는가?
그들의 능력이 일반인 보다 높은 거은 인정하자. 그러나 그 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성정한 것은 타고난 능력 떄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정말 말그대로의 셀러리맨이었던 사람도 있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정년까지 적지 않은 연봉과 견고한 자리를 유지할 수 있던 사람도 있다. 그들이 그런 안정적인 상황을 떨치고 나간 것과 사서 고생한 점을 이야기 한다.

그들이 사서 고생스런 창업을 하게 된 이유, 바로 그것에서 그들의 성공 비결을 찾을 수 있다.

자기가 만들지 않으면 안되고 자기가 아니면 세상에 내놓지 못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자하는 열정, 그것을 위해서는 안정된 지금의 자신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들의 성공을 점치게 하는 것이다. 열정 못지 않는 시장 분석력을 두 번쨰 성공의 비결로 이야기 한다. 우리는 그 동안 성공한 기업가들 특히 1세대 기업가들에게  남다른 열정과 의지를 보아왔고 그것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온 것도 알고 있다.

열정과 용기만으로 성공이 가능하던 시기가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기업인이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되었고 우린 그것을 신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신화같은 이야기가 가능한 시기는 아니다. 불도저식으로 밀어 붙여서 성공하기에는 지금은 시장은 매우 복잡하고 섬세하다. 따라서 창업을 준비할 때는 시장의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아이템과 자본이 아닌 시장분석

창업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다음의 3가지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창업시 고려해야 하는 3대 요소라고 해야 할까?

사업아이템, 자본 그리고 시장분석, 흔히들 아이템만 잡으면 창업할꺼라고 말하는 사람이 넘쳐(?) 나던 시절이있다. IMF 전 특히 닷컴 버블시절에는 아이템만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도 실제로 있었고 아이템과 시장의 소요가 맞아 떨어져 성공한 기업도 있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 이후의 세상은 신셍기업에게  잔혹한 전쟁터가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변화는 소비자들의 기호와 시장환경 때문에 새로 진입한 신생기업은 순식간에 레드오션이 되어 버리고 폭발하여 사라져 버리는 시장에 진입하여 바로 페업하기도 하고 잠시의 호황기에 이어 레드오션에서 피튀기는 경쟁에 희생되기도 한다.
 
따라서 반드시 1-2년 사이의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준비하여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찾았다면 그 시장이 블루오션인지 레드오션인지에 따라 진입 전력을 바꾸어야 한다.
보편적으로 가장 적절한 시장 진입시기는 블루오션 직전의 막 생겨진 시장이다. 하지만 그런 시장은 찾아내기 어렵고 블루오션이라고 들어갔다가 금세 레드오션이 되는 경우가 있기 떄문에 단순히 시장의 구조만 보고 창업을 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성공한 이들의 시장 진입과정을 보면 블루오션에 들어온 경우가 좀 많지만 레드오션에 진입하여 성공한 경우도 있다.
책에서 저자가 가장 좋은 경우로 본 것은 아예 자기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 들어오는 경우이다. 그 예로 든 것이  DVR 시장이다. 당시의 보안장비 시장은 CCTV신호를 자기테이프에 저장하고 있었는데 세계 최초로 DVR을 시판하여 스스로 판을 짜버린 것이다.
레드오션에 뛰어 들었다고 해서 치열한 경쟁에서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포화상태인 소독업계에 뛰어는 세스코는 다른 선배 업체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독보적인 방역업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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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 사람을 얻는 마법의 대화 기술 56
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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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문제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빠지기 쉬운 오류중에 하나는 자기 방어를 위해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상황에서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선택은 매우 자연(?)스럽고 흔히들 그런다. 본성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이 쉬운 것도 그런 상황을 발생시킨다.

 

문제상황에서 대화에서 화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내리막길이고 하나는 오르막길이다. 선택의 순간은 단 1-2초 이기 때문에 순간 쉬운 길인 내리막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선택한 내리막길은 점점 빠르게 내려가고 속도는 늘어 정지하기가 불가능하다. 정지하는 방법은 어디에 부딪혀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반대로 오르막길은 발걸음 떼기 부터 힘들다. 걸을 떼어 한 걸음 걸음 힘들게 올라간다. 그러나 정상에 다다르면 좋은 공기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 순간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나를 방어하고자 던지 말의 대부분은 상대를 비난하게 되고 그 비난에 대해 상대고 같은 기재로 반응한다. 대화는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닫고 상황은 몇분내에 종결되지만 그 앙금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일이 있은 후 당사자들은 서로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문제상황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대화나 이미지 지난 일을 들추어 반복적으로 되집는 일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대화 시작시에 문제점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벌어졌는지 요약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누구 잘못이니 이런 책임 규명은 부차적인 일이다. 일단 상황 파악과 이 상황에서의 해결 방법을 논의하고 난 후 상황이 종료된 후 따져도 늦이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점 이후 당사자간들이 어떻게 데처할 것인가이다.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문제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또 자잘못의 규명이 아닌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자리라면 일단 문제점과 그로 인한 상대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내가 상대의 문제에 대해 응대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그 문제의 해결이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 줌으로 써 상대가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하거나 내가 해결하는 동안 협조할 것이다. 이때 상대를 비난 또는 무시한다면 서로 감정이 앞서 대화 다운 대화의 진행이 불가능하고 이것은 문제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킨다.

긍적적인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 가짐은 역지사지, 즉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상대가 불편한점, 화가 나는 것을 나에게 치환하여 생각해 보면 상대가 억지를 부른다 그것이 억지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공감하고 나면 상대의 불평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되고 대화에 입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진다. 잘못된 대화의 대부분은 이렇듯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이 나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와 말을 하면 일단 마음이 누그러지고 상황을 객곽적으로 보게된다. 상황이 객관화 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내가 양보할 수도 있는 것이고 서로 양보가 된다면 대화의 결과는 당연히 긍적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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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 생각이 술술 풀리는 46편의 초간단 생각 창조법
황인원 지음 / 흐름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시절에 선물 받은 시집은 아직 본가의 내방 책장에 꽂혀있다.
'만남은 기다림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좋다' 하던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 1980년대 중반 고등부 친구들이 사진 액자로 지금도 그 방에 걸려있다. 대학 떄는 민중가요를 통해 민중시를 알게 되었고 동생이 보던 시집으로 안도현 시인등을 알게 되었다. 연탄이라는 시는 지금도 좋아한다. 외우지는 못한다. 연탄 함부로 차지마라.... 끝~


필자는 책을 많이 읽는데 어느 순간 부터 시는 물론이고 소설도 거의 안 읽는데 교양, 시사, 인물 관련 책을 읽는다.
현실적이 된 것인지는 몰라도 이제 함축적인 문장에서 비유, 대유, 은유하며 은밀한 복선으로 이야기의 결론을 미리 숨겨 놓은 그런 글들을 읽어 본지가 오래 되었다.

 

시에서 경영을 배운다.

이건 또 무슨 궤변인다? 시어(詩語)애는 엄청난 함축과 비약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읽은 이가 해석하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말이 안되는 구절은 마음에서 받아 들이기에 따라 엄청난 의미가 되고 충격이 되고 감동이 된다. 함축적이기 떄문에 그 결과는 직설적인 문장 보다 크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살펴보자.
우리는 우리의 삶을 계획하고 어느 정도 운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제어 가능한 부분은 많지 않다.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격구중에 가장 유명한 문장에서 우리가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전체 걱정꺼리에 10%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의 일들을 정확하기 예상하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0-20%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의 사건을 대비할 때 정확하게 인지 가능한 것은 10% 정도 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유동적이면 실제 상황이 되어야 그 양상이 파악이 가능하다. 우리의 삶은 불확실과 유동성으로 차 있다. 시의 의미를 파악할 떄 처럼 우리의 삶은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에서 어떤 것으로 배워서 우리의 인생을 경영할 것인가?
필자는 사물과 현상을 오랜동안 집중하여 관찰하고 상상하며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 깨달음에 이른 상상법에는 의인화, 다른 것으로 치환하는 것을 통해서 혁신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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