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월드비전 희망의 기록
최민석 지음, 유별남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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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어린이 보호와 관련해 활동 중이 국제단체는 4-5개 정도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UNICEF가 그 중에 하나이고 NGO 중에는 월드비젼과 컴패션이 가장 돋보인다. 공교롭게도 이 두 단체는 민간기구이면서 개신교 단체이다. 거기에 흥미롭게도 이 두 단체는 우리나라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월드비젼의 원래 이름은 선명회이며 한국동란 시기에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거두면서 이들을 양육을 위해 만든 단체이다. 또 같은 이유에서 시작한 같은 사업이 지금의 컴패션을 만든 것이다. 한국전쟁시기에 전쟁고아의 양육을 위해 시작한 이 두 단체는 지금은 10개국 이내의 후원국 기부자들의 후원금으로 전세계 미개발 국가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의 양육교육을 실시한다.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는 1990년을 넘어서면서 자체 기부금과 사업자금으로 다른 나라를 돕는 후원국이 되었다.
 

하루에 3만 5천명이 굶주림으로 이세상과 이별한다. 이 중 대 다수는 영유아이다. 기아 뿐 아니라 단 1-2달러의 돈만 있으면 예방이 가능한 병으로 죽거나 우물만 있어도 걸리지 않을 많은 수인성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이 전세계 인구에 절반 가까이 된다. 이 얼마나 고통스런 삶으로 가득찬 세상인가? 우리 나라 시내를 돌아다녀 보자, 종로 거리를 거닐어 보자! 명동 한가운데를 지나가 보자!
상상이 되는가?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상상이 되는가? 지구 저편에서는 식구가 하루를 연명할 더러운 물을 길어오기 위해 하루 2-3시간을 물통을 지고 이고 걸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입하나 줄이자고 학교 다닐 나이에 조혼을 하고 20세 전에 이미 아이 1-2명을 낳고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심지어 다이너마이트를 이고 지하광산을 기어다니며 채굴을 하는 아이를... 우리의 분주한 일상에서는 찾아 보기 어려움들이다. 강남역의 분주함 속에는 이런 고통을 찾아볼 수 없다.

TV속의 기획 프로그램이나 뉴스등에서나 봄직한 일이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NGO인 월드비젼 코리아의 직원으로 월드비젼 창설 60주년 기념 취재로 세계의 자사 사업장을 다니며 취재 중에 만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가 마지막에 NGO에서 일하는 사람의 자세(?)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느껍게 그러나 이성적으로 취재했지만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글로 써는 상상하기 어렵다. 글에 그들의 말도 안되는 (우리 입장에서는...) 상황이지만 솔직히 글은 글일 뿐이다. 머리로만 심각형을 인식했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그 상황에서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왔다고 한 것은 이해가 된다. 필자도 저자가 책 후반에 이야기한 몇 개의 에피소드를 읽다가 눈물이 왔다. 지하철 안이었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어느 여성 대학생이 남자 친구의 후원계좌로 자신의 통장에서 송금하겠다는 것이다. 남자 친구는 25살이었고 교통사고로 얼마전 사망했다고 한다. 남자 친구는 죽었지만 남자친구가 후원하던 아이의 양육비를 자신의 계좌에서 입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런게 사랑이 아닌가 싶었다 왈칵 눈물이 나왔다.


책에는 몇 장의 컬러 사진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몇 몇 사진은 처연할 정도로 무표정한 사진이다. 몇몇 사진은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다. 무표정한 사진의 주인공들은 조혼으로 이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버린 여성들의 사진들이다. 이미 아이가 아닌 이들의 무표정에서는 인생을 포기한 이 들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처가 나타나 있다. 반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라도 웃고 있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하지만 그들이 웃는 이유는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 들이 저자와 인터뷰했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 아이들은 이미 월드비젼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을 받는 가정과 마을의 아이들이다. 그렇다 그 들은 이미 다른 나라의 잘 모르는 이로 부터 후원을 받기 시작했고 이전과 다른 삶은 시작한 이들이다. 이 것이 그들의 웃음의 원인이다.
 

필자는 아내와 함께 3명의 아이를 후원한다. 
아내는 필리핀과 방글라데시의 남자 아이 둘에게 필자는 필리핀의 여자아이 1명을 후원한다. 우리 부분은 컴패션을 통해서 후원하는데 후원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곧 아이의 최근 사진을 올 것이다. 작년 말에 받은 사진에서 아이의 크가 커지고 웃은 얼굴을 보여주어 그 기쁨은 아주 컸다. 아이는 노래와 춤추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받을 때 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세상은 혼자 동 떨아진 태평양 한 가운데의 섬이 아니다. 세상의 누군가가 겪은 고통은 언젠가 나에게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내 대가 이르다면 내 후대에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지만 가장 큰 영향은 역시 지구 온난화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죄인 역활을 하게 된 북반부 선진국의 국민으로 써 책임감을 통감한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이 재앙을 먼저 당하지만 머지 않아 온 인류가 겪을 문제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다. 우리는 같은 색의 피를 가졌다. 나라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인간이라면 산소와 만나면 붉은 색으로 변하는 헤모글로빈을 포함한 같은 혈액을 가진 인류이다. 그 들이 검은 피부를 가졌다고 흰 피부를 가졌다거 녹색이나 청색피를 가진 것이 아니다. 60년 전 이 땅에서 죽어간 젊은이 들을 생각해 보라 어느 있는지 몰랐던 나라의 전쟁에 참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잃은 이들이 있었다. 그 들을 생각하면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의 고난 중의 어린이들을 알고 나서 눈물을 정도를 흘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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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 감정 코치
존 가트맨 지음, 남은영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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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얻은 아이라 매우 소중하지만 요즘 일 때문에 집에 겨우 가는 상황이라 아이에 대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언젠가 프로젝트는 끝나고 파견 근무가 끝날 것이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까 고민이 많다. 2-3주 전에 육아의 바이블이라 칭해주는 '베이비 위스퍼'를 시작으로 이제 60일이 지나가는 딸아이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주로 아이를 돌보는 집사람은 '베이비 위스퍼'를 읽고 나는 몇 년전에 MBC에서 방송이 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던 도큐멘터리의 원저에 해당하는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필자와 같은 세대들도 어린시절에 부모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해보지 못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의 일은 논외로 하더라도 필자가 기억하는 가장 괴로웠던 감정으로 억눌려 배뇨장애을 앓던 국민학교 5학년때도 부모님과 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결국 배뇨장애 치료를 하러간 남산 밑의 어느 한의원 의사 할아버지에게 했었다. 몸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심적 고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부모에게 이 것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이야기 해서 위로는 커녕 핀잔을 들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렇듯  시도도 못해볼 정도로 위축되었고 그렇게 자라서 어린이 되었다. 필자의 경우는 심한 예이지만 누구나 이렇게 부모에게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소용없다면 스스로 싺여 버린 어린시절의 부정적 감정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자란 경우 정서적인 문제로 두고 두고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슬픔, 두려움, 화냄 등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누구에게난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금기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럼 감정이 드는 자신을 부정하는 것 부터 배운다. 즉, 스스로가 나쁜 아이라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는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부모가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같이 고민하면서 감정을 순화시키는 과정을 함께한 아이들은 자라면서 대인 관계가 원만하며 사회적응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우수한 아이로 자란다.
    
반대된 이 두 가지 경우에서 보듯이 어린 시절 부모가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아이가 정의하게 도와주고 그 것을 해소하는 과정을 익히도록 돕는다면 아이는 점차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 왔을 때 그것을 인지하고 해소하는 방법에 익숙해진다. 세상을 살아가면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문제상황은 어디에서는 존재한다. 대신 그런 상황을 접할 때 부정적인 감정을 알고 해소 방법을 아는 아이는 그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고 자연스럽게 감정 조절과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문제 발생 자체를 회피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약물이나 술 또는 성행위 등에 집착하고 폭력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며 인내를 가지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 부터 시작해 보자.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이해하며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고 같이 해결 방법을 이야기 하다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낸다. 부모는 단지 공감하고 그 것이 어떤 것인지 힌트를 주고 아이 스스로 그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누구나 겪는 것이고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으로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책은 이것을 '감정코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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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정의(孟子正義)
이재호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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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를 원문과 주해 그리고 그 뒤에 설명을 붙인 몇 안되는 책이다.
일단 두께와 무게에 기가 죽을 지경이다. 국배판 장서인데 분량이 640장에 이른다.
'맹자'는 맹자의 제자 그 제자들이 맹자 생전에 제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의 대화와 일화를 모아 맹자의 사상을 모아든 책으로 후대에 이르러 정치에 대한 고전적으로 정의의 대표로 여겨진다.  

맹자는 중년이 넘은 후 노나라, 제나라 등을 돌아다니며 제왕이나 제후들에게 자신의 정치 철학을 가르치고 그 것으로 요순 임금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이루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실험해 볼 만한 시간을 주지는 않았다. 사실 맹자의 철학은 仁義와 禮를 숭상하고 권력과 돈에 대해서 철저히 배제하는 그 철학은 권력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과는 다른 것이라 쉽게 받아 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제는 내 청치 철학이 좋으니 써보시요 하고 다닐 사람도 없이 그 건 어찌 보면 시대유감(時代有感)이다. 
   


책을 읽으면 바로 전에 읽은 '숙빈최씨 영조를 가르치다.'라는 책에서 맹자는 맹모의 엘리트 교육 로드맵에 따라 길러지고 공자는 스스로 공부했다 하여 공자가 더 높은 추앙을 받는 성인 되었다고 한 주장이 생각나서 웃었다. 실제로 맹자의 어머니는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맹자의 교육에 열정이 많아 우리가 익히 아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행 하였을 뿐 아니라 공부를 하다 집에 온 맹자를 공부를 끝내고 오라면서 쫒아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맹자가 많은 단편적인 이야기 중에서 이야기 하는 골자는 이렇다.
맹자 역시 그의 선인격인 공자처럼 모든 정치와 인간의 삶은 仁을 기초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로 부터 받은 인간의 자연스럼 행동양식인 仁이 개인적인 수준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고 이 仁이 사회되면서 義로 써 인간들의 행동 양식의 기준이 된다. 仁과 義 그리고 거기에 禮 와 知  이렇게가 모든 인간들의 기본 덕목이 되는 것이다. 인의예지에 의해서 왕이 나라를 다스리면 굶어 죽는 이도 전쟁에서 죽을 이도 없다고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이런 도의 정치를 하는 왕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맹자의 이런 충고조차 듣지 않고 그거 남의 나라를 쉽게 빼았는 방법에 대해 알려 달라는 왕까지 이었다.

물론 맹자가 이런 이상적인 것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맹자의 내용들을 보면 맹자도 인간적인 면을 통해 다소 과격한 행동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자신의 행동에 어떤 가치관이 있는지 설명한다. 군자가 아닌 이의 선물을 문안으로 들이지도 않고 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는 등의 행동인데 이런 행동들은 얼핏 보기에 예의에 어긋나 보이지만 그런 것에도 격식과 도가 있어 하나의 규약이라도 어기었다면 예가 아니니 자신도 예를 갖추지 않는다 것이다.

즉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유교의 격언은 이런 것에 기인한 듯하다.
맹자가 이런 예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 것이 있는데 지금 필자는 어느 나라때 이야기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왕이 왕의 동산으로 사냥을 나갈 때 각계 각 층의 수행원과 사냥을 도울 관원들이 함께 나간다. 이 때 필요에 의해 귀족이나 왕의 측권 또는 시종등을 부를 때 깃발을 달리 사용하게 된다.

어느 사냥터에서 왕이 멀리 있는 말을 관리하는  시종을 부르는데 귀족을 부르는 깃발을 흔들었다. 그 시종이 보기에도 자기를 부르는  상황이었지만 깃발이 달라 부름에 응대할 수 없었다. 사냥이 끝나고 그 시종은 왕에 불려가 부름에 응하지 않은 이유를 하문 받는다. 이에 시종은 규칙에 맞지 않는 부름이라 감히 나설 수 없다고 하였다고 한다,
맹자는 이를 말하면 어찌 시종에게 죄를 무를 수 있겠냐고 되 묻는다. 

맹자에게는 국가의 경영을 통해 백성의 안녕 뿐만 아니라 이런 명분과 규칙 같은 것도 모두 인의지예의 하나로 어떤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선비의 입장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필자가 쉽지 않은 책인 맹자를 잡게 된 이유는 초 여름, 프로젝트로 지친 심신에도 정독했던 책 '10인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한다' 에서 유시민씨가 '정치인들은 맹자를 읽어보라'고 한 대목 때문이었다. 맹자라면 유교의 사상의 근간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왜 유시민씨가 이 책을 읽어보라고 했는지 좀 의아해 했던 사실 노무현 재단이나 노무현시민학교에서 강의했던 분들은 소위 진보사상가들이고 유교야 말고 구태의연의 독보적인 사상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 골자는 그것이어었다. 맹자는 넘치도록 고지식한 선비였고 받아 들여지지 않는 사상을 써줄 왕들을 찾아 다녔고 거의 실망스런 결과를 앉고 떠나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집스러운 사람의 늘 이야기 한 것은 하나였다. 사람을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왕은 백성을 섬겨야 하고 다음으로 종묘사직(농사, 하늘 그리고 조상을 모시는 제단)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신하나 제후들이 문제가 되어 나라 꼴이 어지럽다면 그 들을 갈아 치울 수 있다. 가물어서 농사가 안되면 종묘사직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백성은 어찌 할까? 백성 없는 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왕은 백성을 섬겨야 하고 백성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이 맹자를 읽어 보라고 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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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최씨, 영조를 가르치다 - 개천에서 용상으로
신창호 지음 / 써네스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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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MBC의 인기드라마 '동이'를 통해 조선시대 3대 성군이라고 칭해지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숙종의 40여년의 긴 재위기간 중 역사적으로, 조선 정치사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남긴 왕이다. 숙종의 두 번째 왕비인 인현황후 민씨, 첫 번째 후궁인 희빈 장씨 그리고 이 책에서 교육적 귀감으로 삼은 두 번째 후궁 숙빈 최씨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이라도 쓸 정도로 매우 드라마틱하였다. 거기에 숙종의 네 번째 왕자인 연잉군은 훗날 역시 드라마틱한 사건과 조선의 후기 르네상스를 만든 성군 영조이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후대에 두고 두고 희자되며 문학의 소재로 쓰이게 된다.

저자는 이 드라마틱한 시기의 인물인 경종과 영조 두 왕의 두 어머니와 아버지 숙종이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교육학적으로 접근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아버지 숙종은 그의 정치적 수완처럼 이율배반적으로 매우 복잡다단한 행동으로 자녀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존재였을 것으로 본다. 경종은 배다른 아우 연잉군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연잉군이 태어나자 그 사랑은 연잉군에게 옮겨진다. 그 것은 어머니 희빈 장씨에게 대한 사랑이 숙빈 최씨에게 옮겨지면서 둘 사이에 매우 냉냉해진 것과 동일했다. 연잉군의 경우도 배다른 동생이 태어나자 아버지의 사랑의 겨두어짐을 겪었다. 숙종은 왕비와 빈들과의 관계도 정칙적으로 풀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시절 왕도 정치적은 싸움으로 그 존위가 위태로와 진다는 것을 경험한 탓으로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은 왕이 된 것이다. 숙종 재위기간 중에 일어난 풍당과 각종 숙청에서 숙종은 불리해진 세력이라면 가차 없이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다. 왕과 비 그리고 왕자들에게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어려운 아버지를 둔 아들들이지만 두 아들이 걸어간 길은 달랐다.
경종은 어려서 총명하고 성품이 인자하였고 이를 숙종도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왕세자 기간 동안 그리고 대리청정 기간동안 경종은 병약한 모습을 보여며 실제로 왕세자 기간 동안 병명이 정확치 않은 병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왕에 오른 후 4년 만에 죽게된다. 이에 반해 영조는 경종 재위기간 중에는 사사되는 위험에까지 처하는데 재위 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치적을 쌓는다. 이 중에는 아버지 숙종에 마련한 기틀위에 이룬 것도 있지만 즉위 이전에 겪고 배운 것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차이를 저자는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의 훈육 방법의 차이로 보고 있다.
희빈 장씨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양인 출신으로 무역으로 부자가된 친척과 남인이 결탁하여 왕을 만들고자 궁에 들어온 경우이다. 희빈 장씨 뒤에는 이런 이권 세력이 있었고 장씨 본인도 출세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이 것은 결국 자신을 제외한 세력을 적으로 여기는 강박증과 아들에게 대해 지나친 욕심을 가지게 된다. 마음이 여린 경종은 이런 어머니 밑에서 강박에 시달렸을 것이고 아버지의 사랑마저 잃고 나자 병을 얹을 것으로 보인다. 숙빈 최씨에 대해서는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관노가 되었을 것이고 또 어떤 이유로 궁에 들어왔는지 그녀가 무수리였는지 인현왕후의 종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상전에 대한 충절을 보고 숙종이 반해서 잉태를 하고 빈이 된다. 숙빈은 이런 입지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늘 조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궁의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나인들 사이에서 까지 숙빈의 이런 겸손한 태도는 칭찬이 자자했고 숙종도 이런 숙빈의 행동을 아꼈다고 한다. 자신에게 충절을 보이고 인품까지 단아한 숙빈 최씨를 인현왕후도 당연히 아꼈고 이에 따라 인현왕후의 배후 세력들이 이후 영조의 뒷 세력이 된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연잉군은 늘 조심하고 겸손하며 신중할 것을 훈육 받았다. 왕자 이전에 올바른 사람이 되는 교육을 한 것이다. 그리고 숙빈 최씨는 연잉군에서 왕가의 업격한 법도 이외에도 어머니의 사랑과 인간으로 써 가져야 할 그런 것들을 가른친 것으로 보인다. 연잉군이 숙종의 병환 중에 매일 숙종 곁에서 병수발을 한 것과 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형, 경종에게 매일 문안을 드리러 간 것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그의 마음 안에 따스한 인간미가 넘쳤던 것으로 보인다.

 

영, 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전 시대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개혁 정치를 실시하고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에서 많은 노력을 보인 이 시기를 연 영조을 있게 한 것은 획일화되고 정체된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과 인간미를 살리는 교육있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예로 든 이야기로 긴 길을 마칠까 한다.
알코홀 중독과 가정 폭력속에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형제가 있다.
한 형제는 폭력 전과로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는 '이런 가정환경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냐고 한다.' 그런데 그의 다른 형제를 찾아보니 그는 대학교수에 목회자로도 활동 중었다. 그 형제에게 물으니 '그런 가정환경에서 내가 선택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라고 했단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더블어 희빈 장씨가 보여준 경종에 대한 집착과 교육 그리고 숙종의 무관심은 마치 오늘 날  어머니들의 과잉 교육과 흡사하다. 요즘 하는 말로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 이 필요하단다.
이 무슨 망국적인 상황인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3번 이사했다는 맹자 어머니의 고사는 '맹모삼천지교'라고 하여 요즘 교육에서 경전처럼 생각되어 진다. 일류대를 보내려면 강남의 어디, 양천구의 어디로, 강북의 어디로 이사해야 하며 어떤 아파트에 살아야 하며 어떤 유치원에 초등학교, 중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이런 부모의 스케쥴이 획일화된 사회 구성원을 만들어 낸다. 다행히(?) 잘 버티어 낸다고 해도 그냥 일반화된 사람이 만들어진다. 창의적인 신인류를 기대하기 어렵고 못 버티어내어 경종 처럼 된다면.... 그 때는 어찌 할 것인가?

그럴리 없다고? 과연? 사람은 기계다 아니다 가슴을 가진 존재이다. 내 아이가 몇시간 공부하는 계산하기 전에 아이와 몇 시간이 대화하는지 계산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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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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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자식들... 국제 금융재벌에 손에 좌지우지 되는 세계 경제...
미연방준비위원회와 연방준비은행에 대해 알것이다. 연준위라 불리는 이 기관은 미달러화와 미국의 금리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 기관이 미연방 기관이 아닌 사기업인것을 아는가? 100명 중에 한 명이 알까 말까하는 사실이라고 한다.

연준위는 뉴욕은행, 록펠러 소속의 씨티은행, 로스차일드 가문의 하노버방크 등이 주주로 있는 사기업이다. 미연방정부는 단지 20%의 의결권을 가지지만 그것 마다도 허수아비에게 씌어진 모자 일뿐이다. 미달러는 국민에게서 걷을 미래의 세금을 담보로 개인은행에 채무를 지고 그것을 담보로 찍어낸 돈, 즉 채무화페,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채무 증서이다. 미국은 국민의 미래 세금을 몇 십년 당겨서 담보로 잡히고 그 돈을 찍어내 흥청망청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환영해 마지 않은 달러도 미국 국채도 사실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 쓰레기 조각인 것이다.
  



미국의 근세에 새로 독립한 국가중에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런 미국이 속으로 썩어 들어가 지금 처럼 세계 최대의 군사국가, 최대의 채무국가가 된 배경에는 유럽의 금융재벌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금융재벌가문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치가 떨리는 계획에 의한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이들은 유럽금융의 중심 런던시티를 주무르고 이어 미국까지도 자신들의 손에 넣고 주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스라엘 건국의 큰 공(?)을 세우고 세계 양대 대전과 미국과 유럽의 대공항의 배후 인물로 지목 받고 있다. 
또 하나의 암적인 존재인 영국과 미국의 엘리트들이 그들 금융재벌 세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있다.
록펠러등의 부호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정치인들 학자들이 의심스런 커넥션과 관계를 맺고 있고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이 이들의 비호 아래 대통령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신경제학파의 경제정책이 잘못되었다면 공격을 받고 있다. 신경제학파가 공격 당한다면 가장 먼저 돌을 맞을 인물은 케인즈다. 그의 학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마치 공상소설 같은데도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그를 따르는 신경제학파가 20세기 세계경제를 주도했다. 심지어 동북아시아의 어떤 나라는 아직도 그들의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그의 득세에도 구린내가 나는데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원을 받는 어떤 모임 소속으로 알려져있다. 이 조직은 '사도회'라 불리면 회원들은 천사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조직원 중에는 한 때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마가렛 대처라는 여자도 있다. 미국에도 이런 조직이 다수 있는데 그 조직에는 록펠러, 로스차일드 등등의 지원을 받는 젋은 정치인, 경제인등이 가입되어 있다. 클린턴, 카터, 케네디 등도 이들 조직원이 되면서 갑자기 유명해지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을 만들기도 맘에 안든다고 죽이기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며 건실한 나라를 통째로 집어 삼키기도 하는 이 거대하고 사악한 무리들은 이제 세계를 하나의 경제 체제하에 두고 그 뒤에서 자신들의 터질 것 같은 배를 또 채우려고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이 방법은 스스로 양털깍기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일본, 한국에서 그 행태를 보았다. 이 방법에 의해 남미의 나라들이 헤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가장 나쁜 경우를 멕시코에서 볼 수 있고 일본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거의 유일하게 한국만이 그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IMF는 자신들이 운영이 성공적이라는 홍보를 위한 우리나라의 경우를 선전하고 다닌다.

IMF의 임무는 국제금융재벌의 공격(헤지펀드나 선물옵션 거래등등...)을 받아 갈증에 허덕이는 양들에게 약간의 물과 풀을 주면서 그들의 털을 깡그리 깍아버리는 역할이다. 그런 목적으로 경제 원조라는 명분으로 감추고 헐값이 된 피핵국의 중요 자산과 기업을 사들여 국제금융재벌들에게 팔아 넘긴다.

  



이들 사탄의 자식들에게 국가도 도덕도 인류도 없다. 돈만 벌면 그만이다. 규모를 산정하기 불가능한 재산을 가지고 200년 넘게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면서도 아직 도 배가 고픈 그들은 세계의 모든 돈을 달러 처럼 채무화페로 만들고 세계공용의 은행시스템을 만들어 전세계인을 노예화하려고 한다. 참, 암담한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대출을 하거나 신용카드를 쓰거나 주식을 하거나 선물옵션, 또는 모기론을 빌릴 때 알게 모르게 그들의 계획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그들의 계획을 보기 좋게 물리쳐서 국내 은행이 아직 우리 정부의 통제에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같은 나라에서 화페의 유통이 증가한다는 것은 채무가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화페는 채무에 따른 이행보증서이기 때문이다. 그 국민들이 하루 하루의 생활과 유흥을 위해 쓰는 달러가 그들의 자녀 또는 손자들이 벌어서 국가에 낼 세금을 미리 담보 잡혀서 나온 돈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소비를 하는 미국인들은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타산지석이 필요하다.
바다 건너 미국인들의 비극은 결코 그 들만의 비극이 아니다. 어떤 세계 인도 우물안에서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거리가 멀다 뿐이지 세계인은 모두 지구라는 좁은 세계안에 산다. 옆집에 불이나면 꺼지지 않은 그 불은 언젠가는 우리집에 찾아온다.
아~ 그 보다 더 일본의 검은 돈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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