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 최씨, 영조를 가르치다 - 개천에서 용상으로
신창호 지음 / 써네스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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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MBC의 인기드라마 '동이'를 통해 조선시대 3대 성군이라고 칭해지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숙종의 40여년의 긴 재위기간 중 역사적으로, 조선 정치사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남긴 왕이다. 숙종의 두 번째 왕비인 인현황후 민씨, 첫 번째 후궁인 희빈 장씨 그리고 이 책에서 교육적 귀감으로 삼은 두 번째 후궁 숙빈 최씨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이라도 쓸 정도로 매우 드라마틱하였다. 거기에 숙종의 네 번째 왕자인 연잉군은 훗날 역시 드라마틱한 사건과 조선의 후기 르네상스를 만든 성군 영조이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후대에 두고 두고 희자되며 문학의 소재로 쓰이게 된다.

저자는 이 드라마틱한 시기의 인물인 경종과 영조 두 왕의 두 어머니와 아버지 숙종이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교육학적으로 접근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아버지 숙종은 그의 정치적 수완처럼 이율배반적으로 매우 복잡다단한 행동으로 자녀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존재였을 것으로 본다. 경종은 배다른 아우 연잉군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연잉군이 태어나자 그 사랑은 연잉군에게 옮겨진다. 그 것은 어머니 희빈 장씨에게 대한 사랑이 숙빈 최씨에게 옮겨지면서 둘 사이에 매우 냉냉해진 것과 동일했다. 연잉군의 경우도 배다른 동생이 태어나자 아버지의 사랑의 겨두어짐을 겪었다. 숙종은 왕비와 빈들과의 관계도 정칙적으로 풀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시절 왕도 정치적은 싸움으로 그 존위가 위태로와 진다는 것을 경험한 탓으로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은 왕이 된 것이다. 숙종 재위기간 중에 일어난 풍당과 각종 숙청에서 숙종은 불리해진 세력이라면 가차 없이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다. 왕과 비 그리고 왕자들에게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어려운 아버지를 둔 아들들이지만 두 아들이 걸어간 길은 달랐다.
경종은 어려서 총명하고 성품이 인자하였고 이를 숙종도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왕세자 기간 동안 그리고 대리청정 기간동안 경종은 병약한 모습을 보여며 실제로 왕세자 기간 동안 병명이 정확치 않은 병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왕에 오른 후 4년 만에 죽게된다. 이에 반해 영조는 경종 재위기간 중에는 사사되는 위험에까지 처하는데 재위 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치적을 쌓는다. 이 중에는 아버지 숙종에 마련한 기틀위에 이룬 것도 있지만 즉위 이전에 겪고 배운 것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차이를 저자는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의 훈육 방법의 차이로 보고 있다.
희빈 장씨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양인 출신으로 무역으로 부자가된 친척과 남인이 결탁하여 왕을 만들고자 궁에 들어온 경우이다. 희빈 장씨 뒤에는 이런 이권 세력이 있었고 장씨 본인도 출세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이 것은 결국 자신을 제외한 세력을 적으로 여기는 강박증과 아들에게 대해 지나친 욕심을 가지게 된다. 마음이 여린 경종은 이런 어머니 밑에서 강박에 시달렸을 것이고 아버지의 사랑마저 잃고 나자 병을 얹을 것으로 보인다. 숙빈 최씨에 대해서는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관노가 되었을 것이고 또 어떤 이유로 궁에 들어왔는지 그녀가 무수리였는지 인현왕후의 종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상전에 대한 충절을 보고 숙종이 반해서 잉태를 하고 빈이 된다. 숙빈은 이런 입지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늘 조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궁의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나인들 사이에서 까지 숙빈의 이런 겸손한 태도는 칭찬이 자자했고 숙종도 이런 숙빈의 행동을 아꼈다고 한다. 자신에게 충절을 보이고 인품까지 단아한 숙빈 최씨를 인현왕후도 당연히 아꼈고 이에 따라 인현왕후의 배후 세력들이 이후 영조의 뒷 세력이 된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연잉군은 늘 조심하고 겸손하며 신중할 것을 훈육 받았다. 왕자 이전에 올바른 사람이 되는 교육을 한 것이다. 그리고 숙빈 최씨는 연잉군에서 왕가의 업격한 법도 이외에도 어머니의 사랑과 인간으로 써 가져야 할 그런 것들을 가른친 것으로 보인다. 연잉군이 숙종의 병환 중에 매일 숙종 곁에서 병수발을 한 것과 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형, 경종에게 매일 문안을 드리러 간 것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그의 마음 안에 따스한 인간미가 넘쳤던 것으로 보인다.

 

영, 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전 시대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개혁 정치를 실시하고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에서 많은 노력을 보인 이 시기를 연 영조을 있게 한 것은 획일화되고 정체된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과 인간미를 살리는 교육있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예로 든 이야기로 긴 길을 마칠까 한다.
알코홀 중독과 가정 폭력속에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형제가 있다.
한 형제는 폭력 전과로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는 '이런 가정환경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냐고 한다.' 그런데 그의 다른 형제를 찾아보니 그는 대학교수에 목회자로도 활동 중었다. 그 형제에게 물으니 '그런 가정환경에서 내가 선택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라고 했단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더블어 희빈 장씨가 보여준 경종에 대한 집착과 교육 그리고 숙종의 무관심은 마치 오늘 날  어머니들의 과잉 교육과 흡사하다. 요즘 하는 말로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 이 필요하단다.
이 무슨 망국적인 상황인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3번 이사했다는 맹자 어머니의 고사는 '맹모삼천지교'라고 하여 요즘 교육에서 경전처럼 생각되어 진다. 일류대를 보내려면 강남의 어디, 양천구의 어디로, 강북의 어디로 이사해야 하며 어떤 아파트에 살아야 하며 어떤 유치원에 초등학교, 중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이런 부모의 스케쥴이 획일화된 사회 구성원을 만들어 낸다. 다행히(?) 잘 버티어 낸다고 해도 그냥 일반화된 사람이 만들어진다. 창의적인 신인류를 기대하기 어렵고 못 버티어내어 경종 처럼 된다면.... 그 때는 어찌 할 것인가?

그럴리 없다고? 과연? 사람은 기계다 아니다 가슴을 가진 존재이다. 내 아이가 몇시간 공부하는 계산하기 전에 아이와 몇 시간이 대화하는지 계산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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