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순 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 70대 소녀 엄마와 40대 늙은 아이의 동거 이야기
최정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베프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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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에 사촌들끼리 모여있을 때 한 사촌이 말하길, "너희도 알다시피 난 결혼해서 시어머니, 남편, 아이 둘까지 낳아서 기르고 있지만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다," 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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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이해가 잘 안됐다.

물론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자녀들과 손주, 손녀까지 잘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시면 더할 나위 없지만 어느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는 이치가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아버지란 존재는  이미 자신과 이별을 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촌이 왜 그런 말을 할까?

 

소위 말하는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격식을 갖추고 사는, 즉 모두 갖추고 사는 사람이그중에 어느 한 부분이 비더라도 나머지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것인데, 그래도 빈자리가 주는 느낌이,  다른 것이 가진 것과는 또 다른 것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생각을 했었다는, 뒤늦게서야 그 사촌이 말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대강 알아가고 있는 시간이 되다 보니 부끄럽단 생각이 든다.

 

사촌이 말한 그 의미, 성장하고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고 살고는 있다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에 이젠 자신을 낳아 준 엄마  한 분밖에 없다는 그 소중함의 느낌을 절실히 느껴가고 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정답을 새삼  느끼고 있는 바, 나날이 연약해지시는 부모를 대할 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몇 겁에 걸친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하던데, 하물며 부부의 연, 부모와 자식의 연은 비교해 본다면 몇 겁이 아닌 그 헤아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를 다하란 말이 있지만 우리들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항상 곁에 있어준 부모란 존재에 대한 망각을 잊어버리고 산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감정의 표현을 어찌할 수 없는 상실감에 쌓이는 순간이 오게 되면 이젠 오직 한 분 밖에 남지 않은 부, 모에 대한 바라봄을 달리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느낌을 아주 재밌게 그리고 있으면서도 콧물 찍, 눈물 찍, 웃음 픽픽, 입가에 나도 모르게 옆으로 길게 입모양이 벌어지는 것을 알아채고 다물어 버리게 한 책이다.

 

엄마란 존재는 희생이라고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특히 모진 시집살이가 같이 곁들여 박자를  맞추게 되면 그야말로 여자의 인생은 막연히 모진 세월을 이겨내며 자식들 뒷바라지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는 삶의 연속이 아닐까?

 

 

말순 씨는 72살의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여인이다.

종가의 며느리로서, 남편의 외도로 인한 마음고생, 이후 남편 남자 1호 일랑씨가 세상을 버리고 이젠 손주나 손녀 보는 재미에 빠져 있을 연세에 아직도 뒷바라지다.

바로 결혼을 하지 않은 40대의 아들과 동거 중인 그녀는 우리들의 엄마 모습이다.

 

 

남편의 부인으로서, 모든 고생 시키고 떠나간 일랑 씨였지만 당신을 사랑했단 말 한마디를 아직도 품에 안고 사는 여인, 배호의 [누가 울어], 나훈아의 [사랑],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조용필의 [허공]에 이어 드디어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레퍼토리를 바꾼 말순 씨의 마음은 어떤  그리움과 원망, 그리고 회상이 들어있을까?

아들이 아무리 남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해도 돌아간 양반에 대한 원망은 읽다 보면 다시 보고 싶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 그것이 바로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쏟아부어버린 것 때문은 아니었는지...

 

 

 

국 3가지에 반찬은 20여 가지로 차려놓은 말순 씨의 자식을 대하는 사랑,

아무리 나이를 먹은 늙은 아이란 존재는 엄마  앞에선 영락없는 어린 자식, 바로 나이를 먹지 않는 어린아이 그 자체다.

 헤아릴 길 없는 엄마의 마음, 말순 씨와 40대 아들이 같이 살며 때론 투닥투닥, 때론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마시는 중에 싹트는 모자지간의 삶은, 아마도 결혼이란 것에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노모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해 주는 장면들을 통해 때론 찡한 감동이 몰려오기도 한다. 

 

 자칭 엘리베이터 걸이 되어 항상 되풀이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로 그치고 마는 "학교 파하면 언능 집에 와야.",  "퇴근하면 술 마시지 말고 언능 집에 와야." 의 엄마표 잔소리, 이에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더 좋은,"~야 밥 먹어야."라는 소리까지....

 

 

 

 

"밤이 너무 캄캄해 슬프다"라는 말을 하는 소녀 같은 감성의 소유자, 좋아하는 콜라를 값싸게 사려 아픈 무릎을 사용해 가며 마트까지 가는 짤순이, 그것을 아들이 알고 싫은 소리 할까 봐 몰래 쟁여두는 귀여운 센스쟁이, 파마 싸게 해준다는 미용실에 가려 일찍 집에 나서는 정성.....

 

내리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잠시나마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엄마들을 많이 생각해 봤다.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일인 다 역의 역할을 해 온 말순 씨는 엄마의 상징이요,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특유의 행동과 말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심금을 울리게 하는,  어쩌면 우리 자식들은 그런 엄마란  존재에 대해 나이는 먹어가지만 그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곱디고운 원피스 차림의 멋을 부리던 여린 감성을 지닌 한 소녀가 아직도 있음을 너무 간과해 버리고 사는 것은 아니었는지....

 

이 글 속에 나오는 말순 씨와 아들의 생활 속에 묻어나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문득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들고 가야겠단  마음을 먹는다.

 

이 세상의 모든 말순 씨!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곁에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

그대들을 정말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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