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들 엄마와 딸의 관계는 때로는 친구요, 때로는 더없는 원수지간(?),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같은 유전인자를 지닌 '여성'이란 친근감은 이렇게 늘 삐걱거리다가도 어느 한순간 그 상대를 인정하고 바라보며 응원하게 되는 사이가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분명 공지영 작가의 딸인 위녕은 복이 많은 딸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배 아파서 낳은 자식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식이란 존재 앞에서 부모는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러다보니 가슴 한구석엔 뭔가를 더해주지 못한 아쉬움을 늘 가지고 사는 존재란 생각이 든다.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있는데, 문득 정말이지 갈수록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을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면 머지않아 나도 엄마의 나이가 될 때 저런 얼굴이 되려니 하는 생각들이 많이 들기도 한다.

 

 

그런 느낌을 물씬 풍겨준 이 책에 들어있는 레시피는 또다시 엄마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느 집이나 고유한 음식 솜씨가 있고, 그 손맛에 어우러져 나오는 독특한 음식의 맛깔스러운 느낌은 다른 집에 가서도 느낄 수 없는,  가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시간이 되면 엄마표 음식을 그리워하곤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면 이 책에서 전해주는 느낌이 바로 엄마표 음식 레시피가 아닌가 싶다.

공지영이라는 작가이기에 앞서 한 엄마란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새로운 책이지 않나 싶다.

 

독립해 나간 딸에게, 친구처럼, 때로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느꼈던 인생에 대한 실수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면서 인생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바라보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음식 레시피와 곁들여져서 진솔하게, 때로는 냉정하단 느낌을 들게 하는 구절 구절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방송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음식 레시피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공지영 작가가 전해주는 레시피 또한 아주 쉽고 수월하게 다룰 수 있는 레시피요, 엄마 근처에서 맴돌면서 눈에 익었던 장면들이 새록새록 더듬게 하는 레시피란 특징이 있다.

 

그날그날에 따른 기분 상황에 따라서 해 먹을 수 있는 초간단 레시피는 사실 어떻게 보면 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때우게 되는 독신자들에겐 조금의 수고를 들이더라도 나에게, 정확히는 나의 몸을 소중히 다루면서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싱싱한 음식을 먹을 것을 권하는 글들이 대부분을 이룬다.

 

취재나, 정보 수집을 위해서 수시로 해외를 드나든 형편, 오로지 글을 써야만 했던 암울했던 시절의 글쓰기가 오히려 지금의 공지영이란 자신을 만들어줬음에 감사하단 글귀는 노동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삶을 대하는 자세가 진실됨을 알 수 있게 한다.

 

시금치 된장국, 새우를 이용한 요리, 와인, 초간단 레시피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런한 레시피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든 오로지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길 것, 산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인생을 생각하는 연륜이 묻어난 작가이자 엄마의 위로, 결혼에 관한 자신의 길을 돌아보며 딸에게만큼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 글귀들 하나하나가 귀에 쏙 들어온다.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평생을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성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는 없어. 그러나 10분은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다. 그래, 그 10분들이 바로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첫 번째 걸음이고 그것이 수억 개 모인 게 인생이야. 그러니 그냥 그렇게 지금을 살면 되는 것. -p. 27

 

결혼은 그러니까, 지금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은데 이 사람하고 하면 그 좋음도 양보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럴 때 하는거야. 이 사람이 너무 좋아서 이 사람하고 연관된 모든 사람이 엄청 이상할 뿐만 아니라 나를 싫어하고 가끔 (듣기에 따라) 모욕하고 명령하고 이래도 이 사람이 하도 좋아 그쯤은 참을 수 있겠다, 이럴 때.    p297

 

전작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의 연장선처럼 들리기도 하는 글의 느낌이 묻어있으되, 이제는 한 사람의 어엿한 성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길을 헤쳐나가는 딸에게 들려주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레시피를 살며시 훔쳐본 느낌이랄까?

 

이 레시피 중에서 오늘만큼은 나도 내 몸과 정신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한가득 차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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