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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들은 인지를 못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는 자명한 사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체감적으로 느끼는 강도는 점점 더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철모르고 어느 분이 돌아갔다는 말 한 마디를 무심코 넘길 수 없는 나이가될 때는 더욱 그렇다.
특히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주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선 그 어떤 표현조차도 사실은 사치이며 그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그저 시간이 어서 흘러 주기만을 바랄 뿐인 나약한 인간의 한 존재로서 살아가야 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렇다면 만약 주어진 삶에 대한 시간을 안다면 우리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을까?
여기 그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올 해 나이 27살인 데이지-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먼저 가신 후 엄마와 단 둘이 살다가 멋진 남편 잭을 만나 결혼한 여인이다.
잭은 그야말로 자신의 분야에선 철저하고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실 생활에선 별로 완벽하지 않는, 데이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사람이다.
그녀 자신은 심리상담 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잭은 자신의 전공 분야인 동물학과에 적을 두고 의사와 박사를 진행하고 있다.
머지 않아 5월이면 잭은 박사학위를 수여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신들의 시간을 좀 더 충분히 갖게 된다는 희망, 또 사랑스런 아이들을 낳게 될 것이란 계획이 이 순간적인 통보에 무너지고 만다.
완치됐다고 믿었던 유방암의 재발이라니~
그것도 온 몸의 주요 장기인 뇌종양, 간, 뼈, 폐까지 펼쳐진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살 수만은 없다는 데이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떠오른다.
자신이 먼저 가게 되면 잭 혼자 남게 될 것이고 잭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살펴줄, 진정한 짝을 찾아주겠노라고~
그 때부터 온 신경이 그에 쏠리게 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남의 창을 두드리고 잭에게 어울릴 만한 여성은 누구인지, 잭과 함께 가는 파티에서 만나는 여성들마다 모두 대조를 하고, 대학 캠퍼스에서 오고 가는 여대생들을 눈여겨 보는 행동까지....
죽음을 목전에 둔,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단 시일까지 통보 받은 병에 대해 생각해 보면 무척 무거운 소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데이지는 그 모든 것들의 절차들을 가볍게 제 자신 나름대로 넘겨버리면서 본격적인 남편 반려자 찾기에 나선다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각 인물들의 심리 상태는, 만약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우리들의 문제라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흔히 말하는 죽음에 대한 몇 단계를 이야기하지만 그에 앞서서 데이지가 느끼는 감정들, 잭을 두고 자신이 먼저 떠나갈 경우에 대비한,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시종 따스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려 잭을 먼저 가까이 하지 않았던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솔직한 자신의 감정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내가 죽으면 누가 그 양말을 치워줄까?
내가 죽으면 누가 잭의 어깻죽지 바로 아래를 긁어줄까?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창문 틈을 막아주고, 바닥 업자를 부르고, 바닥을 쓸고, 도시락을 싸고, 청바지를 찾아주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장을 보러 가고, .....-p136
서로가 사랑해서 결혼이란 형식에 빗대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했기에 서로 눈만 쳐다봐도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대를 두고 떠나가야 한다는 죽음이란 실체 앞에서 과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연신 생각하게 한다.
긴 눈물을 흘릴 것으로 예상했던 책이었지만 그다지 어둡지 않다는 분위기로 이끈 저자의 글이 오히려 더욱 슬픔을 가져다 준다.
차근차근히 자신의 죽음 뒤에 올 홀로 남겨질 잭을 위해서, 더는 미룰 수도 없었던 박사학위 졸업식 때까지 살아 있어야 했던 데이지란 여인의 사랑 법은 잭에 대한 사랑을 진정으로 느끼면서 오히려 내칠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 정말 사랑하는 사람 곁에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을 머리 속에 고이 간직하고자 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눈썹 한 올 한 올, 약간 삐뚤어진 입, 그리고 남들이 보면 어긋나 보이는 치아까지..사랑스럽게 느끼는 순간을 느끼고 곱씹어 보려는 장면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이런 경우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웃의 아픈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도록 글은 그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무슨 계획을 세우면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일깨움도 그렇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잠시만이라도 따뜻한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에 남을 일인지, 앞 일을 모르고 살아가기에 이런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간절히 일깨워 주는 따뜻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아니 문득 안부 전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서 행동해보라고, 소리 없는 글이 내게로 전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