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추리'가 주는 재미를 다르게 볼 수있지 않을까 싶다.

스위스 출신의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작품이 수록된 책이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선 코너로 나왔다.

국내엔 그의 작품의 희곡이 상영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접해보질 못한 상태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뭐랄까, 추리소설의 화끈한 액션이나 스릴 넘치는 강한 체력과 영민한 두뇌회전을 자랑하는 어떤 주인공의 형사나 경찰의 이미지를 그려왔던 종전의 내 머릿 속의 캐릭터와는 전혀 딴판의 인물들이 그려져있어 좀 당황스러웠다.

 

두 편의 작품 모두가 독자가 바라는 그런 형태의 결말을 내세우지 않기에 추리소설의 그런 묘미에 젖어있던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 또는 이런 형태의 제시를 해 주는 작가의 생각을 되새겨 볼 만한 시간이 아닐까 한다.

 

첫 번째 작품인 '약속'은 '나'가 쿠어 시 안드레아스 -다힌덴협회에서 주최하는 추리소설 창작 기술에 관한 강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만난 전직 취리히 주 경찰국장을 지냈다는 H박사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그의 차에 동승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기초를 한다.

 

자신의 유능한 부하이자 천재란 소리를 들었던  마태란  직원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들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어린 소녀의 강간살해에 대한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마태와 그 주위를 둘러싼 사건 해결에서 오는 여러가지 변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태는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 , 교도소에도 들락거렸던 폰 군뎉이라는 행상의 제보로 자신의 출세길이 보장됬던 요르단의 출국을 보류한 채 사건해결에 나서게 되지만 이내 동네의 분위기와 다른 동료들의 시선은 폰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고 폰은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는, 마태로선 사건의 범인을 잡겠다는 '약속'을 죽은 소녀의 부모에게 했기에 그 동안 벌어졌던 몇 차례의 비슷한 사건을 들춰가며 주유소를 인수하고 죽은 소녀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소녀를 곁에 두고서 범인이 나타나길 기다린다는, 오로지 끈기와 시간의 다툼, 자신의 확신에 찬 의지가 현실에선 어떻게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범인이 누군인지 밝혀지되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꼭 잡힐 것이란 보이지 않는 형상과 다투는 사건의 현실 자체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인 사고(事故)-아직도 가능한 이야기란 주제를 다룬 이야기다.

트랍스는(덫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직물판매업자다.

자신이 몰던 차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 다름아닌 사고(事故)로 인해 차를 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친다.

 

집에도 갈 수있었지만 마을 근처의 집에 머무르게 되고 숙박비는 받지 않는, 어느 나이든 한 노인의 집에 머물게 된다.

알고 보니 이 노인과 그의 친구들은 전직이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형리 출신들이다.

퇴직 후 무력에 빠질 즈음 어떤 한 사건을 내세우고 그 사건에 관한 자기들의 직분에 맞는 법의 형량(실제 법에서 행하는 법 형량이 아닌 그들 자신들 놀이에 한해서만 이루어지는)을 내리는 놀이에 빠져 삶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주인인 노인은 트랍스에게 제안을 한다.

자신들 놀이에 끼여들지않겠느냐고-

보통의 사건일 경우엔 범인을 내세우지 않고 진행하는 절차를 트랍스는 자신이 범인으로 나설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자신이 오늘 날 승진하기까지 상사였던 기각스의 죽음과 그의 부인과의 내연의 관계를 통해 그 동안 자신은 깨끗한, 죄가 없다고 살아왔던 생각에 일변에 변화를 겪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확실한 깨끗한 결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미망인의 말을 통해 범인의 실체에 대해 들었던 H박사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글쓰기 형태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는 점에서 작가가 드러내고 싶었던 말을 대신한다.

현실의 세계는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사건해결의 결말을 그리 쉽게 찾아 볼 수없으며 이는 현실이 주는 한계이기도 하고 그럼으로서 추리작가들은 틀에 박힌 글쓰기에 대한 시도를 재고해야 함을 알려준다.

 

그토록 자신의 출세길을 포기하면서까지 범인잡기에 몰두하면서 늙어가는 마태란 인물의 묘사를 통해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 그 어떤 용맹함과 용기, 그리고 뛰어난 두뇌조차도 현실세계에선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도 있음을, 스스로 만든 덫에 걸려 사람이 변해감을 보여주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또 하나의 미제 사건이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갈의 맛을 볼 수없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또한 트랍스의 경우도  평범한 한 인간의 과거를 통해 되짚어 보는 잘못을 가리는 과정들이 실제 일상생활에선 그저 지나치고 관심 자체도 보이질 않을수도 있는 사건을 파헤침으로써  그 자신이 직접 관여를 했던 간접적으로 관여를 했건 간에 죽음에 일조를 했다는 사실 앞에서 그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벌어지는, 결국엔  자신 스스로 처단을 해버린 과정이 한 토막의 연극을 통해서 보여지는 느낌과 함께 결코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무거움을 준 이야기다.

 

기존의 추리소설로서 추구하는 형태를 탈피해 새로운 글의 창작을 엿 볼수있었던 작품(약속)이기에 그가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추리소설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한 그의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의 추리소설이 주는 전형적인 틀에 박혀 있던 독자들에게 다른 눈을 뜨게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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