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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간혹가다가 모르고 지나쳐버린 책들 중에서 우연한 기회에 접한 책이 정말로 강렬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그런 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것은 인기 베스트셀러를 읽었을 때와는 다른, 오롯이 나만이 느끼는 감동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스토너'는 그렇게 나만이 느끼는 감동으로 다가 온 책이다.
누구나 내가 원하는 바대로 살아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나도 모르는 사이 시대와 주어진 환경의 흐름에 맞춰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이 많이 온다는 사실, 원래의 내 의지와는 다른 삶의 방향 수정키를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온다는 것을 .... 수긍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됨을 안다.
스토너의 인생 또한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큰 고비가 여러 번 있지만 모두 그나름대로의 방향키를 잡음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한 남자의 인생의 태어남과 사라짐에 대해서 무미건조의 색채를 드러내는 책이다.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는 자신의 농사를 이어받게 될 아들이 좀 더 윤택하고 현대식의 농업을 배울려면 대학에 보내라는 주위 권유에 아들을 대학에 보내지만 정작 스토너 자신은 2학년 때 영문학 시간에 맞닿았던 강렬한 느낌으로 인해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
매사에 무심하고 건조한 성격, 모든 것을 참는다는 데엔 일등이라고 할 수있는 가난한 그에게 매스터스, 핀치라는 친구들은 그에게 활력소를 불어 넣지만 당시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시기, 매스터스가 전사하고 핀치는 무사히 돌아오고, 스토너 자신은 대학에 남아 학업에 힘을 쏟게 된다.
그런 그에게도 첫 사랑이자 부인으로 맞아들인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은 강한 집념의 학업의 기쁨이 전반의 인생에서 기쁨이었다면 이디스의 왜곡지고 모난 성격, 자신만을 가두는 불타협적인 성격은 그의 후반 인생을 어둡게 만들고 점점 무관심, 내면의 속으로 더욱 들어가게 만드는 생활로 돌아가게 만든다.
딸 그레이스가 태어나고 한 때나마 자연스러웠던 부녀 사이도 이디스로 하여금 멀어지게 되고, 학교에서는 동료이자 상관이 된 로맥스와의 불편한 관계, 워커란 학생의 일로 인해 곤경에 빠지게 되면서 이 현상은 더욱 속도를 빨리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 줄기 햇살이 비칠 때도 있었다.
분명 타인의 눈으로 보자면 불륜이다.
대학원 세미나 강의 시간에 만난 캐서린 드리콜과의 예상하지 못했던 연애는 자신조차도 느껴보지 못했던 진정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하고 논문이나 연구생활에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꿔가지만 결국엔 남들이 모두 평범하다고 할 수있는 보통의 가정으로 돌아가는 상실감을 맛보게 된다.
그가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열병과 청각의 상실, 대학이라는 한 울타리를 결코 벗어나지 못했던 한 남자가 그 대학 안에서도 당했던 불편함의 감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정도로 밖에 볼 수없는 승리들 조차 그저 한 순간의 어느 부분만으로 기억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상이 모두 다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이 됬다.
스토너란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과연 그가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최고직으로 오른 조교수란 타이틀, 술에 절어 살게되는 딸의 모습을 보는 기분, 가족들이나 주위 인물들과도 친근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 탓에 그 누구에게도 피해는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으로 기억되지 못하는 인생을 독자의 눈으로 보게 됬을 때 스토너의 인생 자체를 다룬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인생을 다룬 책이란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읽다보면 답답한 부분들도 나오지만(왜 로맥스나 워커가 반발했을 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고 나가지 못하고 조용히 대꾸를 하는 장면들), 딸과의 관계를 두고 좀 더 진지하게 부인과 대화를 하지 못했는지,... 이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는 관조자적인 인생에 대한 생각과 느낌,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지는 스토너란 인물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인생도 이렇게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도 있고, 때론 물이 흐르다가도 말라버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이 작품을 발표했을 당시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 반세기 뒤에 고향인 미국도 아닌 유럽에서 재평가를 받아 베스트셀러가 된 이색적인 이력을 지니게 된 책~
많은 작가들의 추천 리뷰도 그렇고 톰 행크스도 추천한 책인 만큼 결정적인 클라이막스 조차도 없는 이 책의 단조로움이 오히려 읽는 이들에겐 뭔지 모를 뭉클함, 그것이 바로 스토너 인생의 이야기만이 아닌 바로 우리들 삶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동조를 느끼게 된다.
화려한 명성을 지닌 채 회자되는 삶도 아닌, 평범하게 흘러가는 한 사람의 인생 모습을 통해 과연 우리들은 책에 나온 대사처럼, "넌 무엇을 기대했나?" 를 물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