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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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은  날짜와 읽고 난 후의 날짜 간격을 세어보니 기존에 보통 책을 읽는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다. 

 길어진 이유는 받자마자 읽기 시작한 다른 책들보다 의도적으로 손에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역사를 돌아보는 소설들은 웬지 나와 같은 동시대를 살아왔다는,  '최신'이라는 느낌이 주는 뉘앙스가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기분이 많이 들어 웬지 서두르게 읽혀지지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 뒷장엔 잃어버린 10년의 연표가 들어있다.

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 , IMF에 구제금융 요청부터 시작해서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끝을 맺는 연보-

그러고 보니 그 세월동안 우리들은 참으로 많은 일련의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 살아왔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서로 다른 이념과 노선, 확신, 그 안에서의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틈틈을 보여주는 이책은 저자의 말처럼 특정 주인공이 있을 수없으며, 이름만 들어있을 뿐 실제 우리들이 살아왔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한다.

 

저자는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소설가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 창작이란 직업을 갖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의 배경을 자신이 다닌 학교, 과를 통해서 10년을 들여다 보게 한다.

 

아름다움의 학문을 배운다는, 그래서 뭘 배우는지 알기 위해 화자 박태의는 미학과에 입학했다.

초,중,고를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서 살아왔다고도 할 수있는 대한민국의 다른 학생들과도 다를 바 없는 그는 같은 과 한 학년 선배인 , 미국에서 태어나고 강남의 부유층 무남독녀인 미쥬를 만나게 되면서 그녀의 확신에 찬 똑부러진 말투와 확고한 여성주체성을 강조하는 당찬 모습에 빠져버리게됨으로서 그녀가 가입한 서클에 들어가게 된다.

 

일명 철학연구회-

말로만 그렇지 실제로는 '전국학생연대회의'라는 학생운동 정파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리지만 미쥬를 향한 사랑에 나올 수가 없다.

미쥬의 남친인 반대 학생운동파인 대석형과는 같은 기숙사에서, 공대에서 자신들의 정파 일원을 키우고자 들어온 양진우와는 그를 감시하기 위해 가깝게 지내게 되다보니 어느 새 그들은 흔히 말하는 데모, 일면 사회적인 일에 학생운동으로 뛰어들게 된다.

 

어느 날 부평 대우자동차 사건에 연루되어 대석 형이 대공분실로 끌려가고 나오면서 정신이 피폐해짐을, 곧이어 자신이 끌려들어가게 되면서 왜 대석형이 그렇게 됬는지 알게 된다.

고문 없는 정신적인 피폐는 결국 태의를 진우라는 이름을 직접 발설하게 만들고 태의는 그 후 진우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을 몰아간다.

 

미쥬와의 연인사이가 끝난 일, 미쥬가 총학생회장 사퇴 후 헬싱키로 곧 이어 미국으로 날아가버린 일, 대석 형의 고시 패스로 검사로 변하면서 부평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맡게 되는 일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거치면서 진우는 그의 곱상한 외모와는 다른, PC방에 파 묻혀 스타크래프트나 즐겨 하던 그의 모습이 아닌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되면서 전혀 태의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다.

 

군대를 다녀오고 안정적인 직장인 생활을 하게 된 태의는 10년 만에 만나자고 하는 진우를 어떻게 대해야할 지, 막막한 심정을 드러낸 첫 문장부터가 강렬하게 다가 오는 이 소설은 학점 D 마이너스란 것을 통해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낙오자가 될 것인가? 간신히 턱걸이에 닿아 안정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경계선 마지노선에 안착할 것인가? D를 받는냐, F를 받느냐에 따른 학사경고에 이어진 제적을 당하는냐, 자신들이 추구한 좀 더 나은 세상을 가기 위해 지금의 이 점수를 버리고  갈 것인가? 버리고 다시 평범한 세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렇다면 진우의 선택과 태의의 선택 중 누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있을까?

 

당시의 시대를 살아오고 지금까지 그 연장선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이 소설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에 대한 공감과 함께 그들의 청춘의 한 면을 들여다봄으로써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

 

D마이너스를 받았다고 해서 그 순간의 불완전함을 벗어나 안전한 모든 것을 갖는다는 의미라고 할 수있을까?를 묻게 되는 소설-

 

"너희가 무엇과 싸우는지 정확히 말해주마. 너희는 세상과 싸우는게 아냐. 세상이란 단어는 아무 뜻도 없어.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빛을 가졌던 놈들. 그리고 언젠가 네 후배들이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 거야. 끝이 없는 윤회같은 거지.나는 너희를 증오한다. 너희는 역겨워. 너희에 비하면 무장강도가 차라리 순수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P407

 

문경위가 겪은 시간과 진우가 겪는 시간은 분명 다르고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서 해야할 행동이 다르듯이 두 사람간의 대화는 당시의 분위기와 함께 생각하는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한다.

 

결국 다른 두 갈래의 길에 나뉜 두 사람, 태의는 스스로 교회 신자가 되어 딸의 전도에 영향을 미칠 평범한 샐러리맨 아빠로, 진우는 한 쪽 눈을 잃어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운동을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의 삶을 보면서 과연 누가 D학점이고 누가  F학점인지 ,,,

 

장편 소설이긴 하나 짧은 챕터 속의 이야기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두꺼운 책임에도 질리지가 않게 읽힌다.

저자의 말처럼 가깝되 바깥인 곳에서 바라보는 것일뿐이란 생각으로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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