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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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서 재조명해 보면 가끔 전혀 뜻밖의 결과물이 탄생할 때가 있다.

 

바로 삼국 통일의 주인공인 신라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되는데, 북방의 강력한 고구려와 백제를 모두 통합하고 당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겐 어떤 힘이 있었길래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책은 삼국통일 바로 전의 긴박했던 시대상황을 그린 역사소설이다.

픽션의 가미를 염두에 두더라도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세 사람의 갈등과 사랑을 그린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정치적인 면 외에 평범했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갖고 태어난 신분의 세계 속에서 그 나름대로의 행동과 말을 통해 시대에 부응하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 흥미 있게 읽힌다.

 

 쿠데타에 이어 막강한 힘을 쥐게 된 막리지 연개소문의 정치적 성향과 반대 노선을 유지해 온 고구려의 다섯 부족 가운데 하나인 남부살이 아버지를 둔 진수는 활 솜씨가 뛰어난 청년이었지만 신수두 대제(大祭)의 경쟁을 앞두고 절친이자 경쟁자였던 친구가 죽게 되자 그 혐의를 받게 되고 곧이어 아버지마저 계림(옛 신라 이름)과의 전장에 나간  것을 알게 된 후 아버지를 찾으러 적 진지에 가까이 갔다가 포로로 잡혀 화랑인 김유에게 노비로 넘겨진다.

 

김춘추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영명부인의 삼남이었던 그와 진수는 원수지간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자신마저 고국으로부터 억울한 누명까지 받고 있단 소식을 알게 된 후 기회만 오길 기다리는 처지가 되면서 영명부인이 운영하는 가게의 노비 점원으로 일하게 된다.

 

한편 가게에는 정체모를 영특한 '정'이란 소녀가 있었으니, 바로 김춘추의 딸을 죽게 한 윤 충이란 자의 딸이면서도 딸이 아닌 존재가 있었다.

 

호기심 많은 지적탐구 정신 때문에 숙부와 함께 신라까지 오게 되어 영명부인 가게에서 일하게 됬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감시 때문에 불안에 떨며 살아간다.

 

이렇듯 세 남녀의 얽힌 이해관계는 삼국 통일 직전 왕경(王京-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이르던 말)을 중심으로 정을 사이에 두고 사랑의 감정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원수라는 지각하에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그러면서도 정과 진수와의 관계 또한 알듯 모를 듯 한 사랑의 감정선을 넘나든다.

 

연개소문이 죽고 세 형제의 쟁권다툼 속에 어수선한 고구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진수의 나라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은 김유가 가게 된  계림 견당사의 활약에 힘입어 계림은 당과 동맹을 맺게 되고 이는 곧 백제의 사비성 함락이란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는 결과물을 낳는다.

 

광활했던 옛 고구려가 지녔던 기상과 광대했던 땅의 점령지를 사진을 통해 다시금 바라보는 오늘 날의 우리들 역사와  서로간의 이권 다툼과 눈 앞의 당쟁과 이익에 맞물려 나라의 안위를 돌보지 못했던 백제의 상황들은 계림으로 하여금 당과의 밀애를 하게 한 제공을 했고 결과적으로 진수는 자신의 나라 고구려 대신 또 다른 고구려가 지녔던 아리티(하얼빈)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이처럼 통일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차후의 결말은 세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고 죽음같은 과정들이 생략이 된 채 각자의 갈 길을 가는 여정으로 끝을 맺는다.

 

지금이야 모두 같은 뿌리의 자손이기에 이런 역사적인 태동의 과정부터 단군신화의 단일 민족이란 개념이 박혀있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결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먹히고 먹히는 세계로 비칠 뿐인 현실적인 문제를 작가는 발품을 팔아서 여기저기의 사료를 취재하고 이를 엮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구성을 보여준 책이다.

 

'정'이란 여인의 활기찬 기상은 남자 못지 않은 넘치는 혈기를 보여주고 진수의 멸망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는 착찹한 심정, 자신이 가진 위치에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는 지에 대한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몸에 밴 절제생활 뒤에 오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접고 나라을 위해 오로지 목숨을 담보호 한 채 계급 상승과 그에 어울리는 정치적인 결단을 해야만 했던 김유...

 

이렇듯 개인 대 개인으로선 전혀 원수라고 불리어질 정도까지는 아닌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과 역사가 요구하는 흐름에 자신의 생을 감내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심정들이 잘 드러내주고 있다.

 

책 머리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의 일부인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라고 쓴 말이 심금을 울린다.

 

삼국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초 과정을 다룬 소설답게 역사 속의 나라가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 안에 있어야 할 나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고, 뒷 편의 찬란했던 왕경의 세세한 모습과 지금은 중국령으로 변해버린 고구려의 오녀산성과 국내성 유적에 속하는 중국령 부분들의 사진이 더 없이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든 책이다.

 

 학창시절의 수학여행하면 의례히 가야만 했던 옛 신라의 수도 경주, 왕성을 통해 본 역사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나온 조선시대의 역사소설에 비해 좀 더 이런 관련된  책들이 나와야 함을 느끼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다 소설가로서 책을 낸 이력은 기자출신답게 꼼꼼하게 당시의 풍속도와 그 안에 어우러지는 다양한 모습의 민초들의 말투와 생활들을 엿 볼수있게 그려진 부분들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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