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있는 것 중에 하나가 공공요금 용지나 우유팩에 있는 미아찾기 사진과 함께 실려있는 인상착의 내용이다.
잃어버린 당사자를 둔 부모들이나 그 주위에 연관된 분들의 경우를 방송이나 기타 여러가지 사연들을 접하는 사례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행이도 찾는 경우가 있어 가슴의 한 켠을 쓸어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대단한 체력과 끈기, 그리고 반드시 찾을 수있다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바로 이 처럼 소리없이 어느 날 자발적이든, 그렇지않든 간에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작가 스스로도 이런 가출체험을 통해서, 그리고 익명의 이름없는 자라로 일컬어진 어느 제보자의 인연으로 이 책을 쓰게 됬다고 하는데, 전작인 '속삭이는 자'에 이은 또 하나의 스릴러 물을 만나게 됬다.
'속삭이는 자'에서 활동한 밀라는 그녀 자신에게도 결코 지울 수없는 상처를 안고 공간 감각을 상실한 채 지위상승을 뿌리치고 주위에서 흔히 말하는 '림보'라 불리는 실종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찾는 부서로 자진 옮겨 온 상태다.
림보라 하면 천국과 지옥의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그 중간 ,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한 상태를 말하며 이는 곧 실종자들의 상태를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친한 동료마저 어느 순간 실종자 신세로 바뀐 상태에서 오로지 팀장과 자신 뿐인 부서에 어느 날 한 소년의 전화를 계기로 사건이 시작이 된다.
가족이 모두 죽은 상태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던 소년의 곁에는 범인이 시켜서 가족들이 죽는 모습을 보게 했고 이를 경찰에 신고까지 하게 한 행동에 이어 그 범인은 실종된 지 17년이 된 사람-
회계사 출신이지만 엄마의 지병으로 사회생활조차 원만히 하질 못한 채 고가의 약 값을 대기에 버거웠던 그가 엄마의 사망 후 돌연 자취를 감춘 채 다시 나타나 살해한 건 바로 의약품 회사의 대표 집이었던 셈-
하지만 연이어서 바로 살인사건이 터지고 이들의 연관성을 잡고 수사를 하려던 경찰에겐 도저히 살인의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그러던 차에 한 때는 형사였다가 불의의 사건으로 동료들에게 조차 비난의 대상이 된 , 심리전문가로 진로를 바꾼 베리쉬라는 사람과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베리쉬가 당시 수사를 하던 사건 중에는 불면증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주 대상이었고 이들 중 일곱 명의 실종 사건이 오직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 뿐이었다.
그의 이름은 '카이루스!'
왜 실종된 자들이 이제서야 나타났으며 살인을 시작으로 자신들의 귀환을 알렸을까?
흔한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대변될 수있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카이루스란 존재에 대해 두 사람이 사건을 파헤치는 긴장감 속에 이 두사람 또한 똑같은 피해자란 사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밀라는 전 시리즈인 '속삭이는 자'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로 딸을 낳게 됬고 자신이 스스로 자해를 함으로서 오로지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엄마지만 엄마로서 차마 딸에게 하는 평범한 생활조차 할 수없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살아가는 여인이다.
베리쉬 또한 카이루스를 유일하게 봤다는 실비아란 여인을 증인보호프로그램 일환으로 같이 생활하 던 중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이후 그녀가 행방불명이 됨으로써 더 이상 경찰생활이나 또 다른 사랑의 대상을 찾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자의 속삭임이 불러일으키는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어느 날 자취를 감춰버렸던 자들이 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경위들은 소위 말하는 선의의 행동이 나중엔 악의 결과로 비쳐질 수도있음을, 역설적인 경우를 말해준다.
"어미 사자는 자기 새끼들을 먹이기 위해 새끼 얼룩말을 사냥합니다. 그런데 이건 자비로운 행위입니까, 악의적인 행위입니까? 물론 어미 얼룩말은 새끼를 잃은 상실감에 괴로워하겠지만 그 반대의 상황으로 가면 어미 사자는 자신의 새끼들이 배고 고파 굶어죽는 장면을 지켜봐야 합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유는 채식주의 사자가 없기 때문입니다."(P. 299)
처음엔 선의의 행동으로 그들을 돕겠단 취지에 그들을 불러내 이름없는 자들로 살게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사회로 나와 예상치 못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이런 경우가 바로 악의 논리로 설명될 수있지 않을까?
저자의 이력을 십분 활용한 책 답게 저자의 눈에 띄는 점은 범인 색출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점이다.
사건이 발생이 되고 누구나 그러하듯 범인에게만 촛점이 모아진 상태에서의 관점보다는 그로인해 피해를 당한 피해자에게도 관심을 돌리고 그로 인해 파생하는 불의의 제 2차 피해를 막기위한 절차가 필요함을 말한 대목은 소설이긴 하지만 실제의 생활에서도 필요함을 느끼게 해 준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범인이 밝혀짐으로써 스릴이 주는 재미도 주고, 실제 익명의 이름없는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를 소설에 입힘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셰계가 있기도 하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끝까지 결말의 완성이라고는 볼 수없는 차기작을 기대하게하는 열린 결말을 제시하는 작가의 노련함과 또 다른 독자나름의 판단력을 부르게 하는 , 현대인들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 보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