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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이 신 (李臣). 그러나 또 하나의 이신(貳臣)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내 이야기
조선왕조에서 대대적으로 큰 치욕을 겪었던 2번의 전란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서 당시의 왕권과 신하들의 당파싸움 속에 오로지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바로 민초들이었다.
사실 역사의 후대에 속하는 우리들로서는
과거의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기초로 여러 가지 상황을 예견해 볼 때 전쟁이 주는 고통의 비참함은
6.25를 겪으신 어른들의 말을 들어도 알 수 있지만 실제 그 현장을 겪어보지 않은 후손들로서는 간접적으로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을 통해서 다변도의 생각을 할 수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선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대상자는 노약자, 어린이, 그리고 여인들이다.
아무리 대세가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전쟁을 치른다 하더라도 역시 승. 패자와는 상관없이 전쟁이 주는 고통은 바로 뭐라 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시발점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
이 신(李臣)-
서자도 아닌 노비인 엄마를 둔 그는 얼자 출신이다.
광해군을 보위하던 아버지를 둔 그는 인조반정을 통해 이복 형과 아비를 잃었고 정묘호란을
통해 사랑하는 아내 선화와 딸 난이를 압록 강변에서 잃은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청 황제의 눈에 들어 조선의 칙사로 발령받아 고국에 돌아온다.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두매 산골에서 화전민으로 그림을 그리는 부인을 곁에 두고
갖바치 생활을 하던 그에게 전쟁은 그의 삶과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렸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그저
덤 , 그 자체란 생각으로 살아왔다.
백성들은 왕조의 왕이 누가되는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소위 말하는 고관 대작의 신하가 누구인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저 밥 배불리 먹게 해 주고 등 따뜻하게 누울 내 집과 건강한 가족들만
있다면 요순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누가 왕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정면으로 이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당시 호란을 겪은 후의 조선이란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는 위정자들은 그러하질 못했다. 적어도 폭군이라 불린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 공신들과 인조는 반정의 이유가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성공은 했으나 차후 벌어진 두 번의 난을 겪고도 그 흔한 책임의 과실을 따지는 절차
조차 무시하고 오로지 황제의 칙사로 하여금 청으로 입조하란 말이 떨어지질 않길 바라며 눈치를 보는 조정으로 전락해버렸다.
전체적으로 크게 세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 인조의 생각과 계획, 이 신이 생각하는 계획과 나라의 윗 선들이
다루고 있는 당시 조선의 시대를 엿 볼 수 있는 청과 명과의 조율적인 행동을 견제하기 위한 당파와 왕을 견제하려는 신하들, 그리고 이름없는 백성들의 환란을 겪으면서 신분붕괴와 이를 책임 지려하는 행동을 기피하는 이씨 왕조에 대한 비판이란
생각이 그려지고 있다. 이 부분들이 이 소설에서 이 신이란 사람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설정 방식이
좋았단 생각이 든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조금의
상처만 나도 그 상처의 쓰린 기억은 사라지지 않거늘, 조정은 그것을 무시했고 인조의 그릇된 행동을 본
반정공신 중에서 인조의 목숨을 노리는 또 하나의 반정세력이 나타난다.
칙사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회유정책을 하는 가운데 인조와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대신들 중 일부가 자진이란 그럴 듯한 포장으로 살해가 되고 이를 추적하는 이 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간의 다툼, 그 가운데 광해군이 완성하고자 했던 폭약 비격진천뢰란 존재가 드러남으로써 반정세력과 이 신의 연관을 의심하며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는 인조의 철저한 계획이 실행되는 설정이 권력을 쥐려는 자들의 서슴없는 한 면을 보여준다.
특히 인조 그 자신은 왕권을 손에 쥔 자로서 신하들과의 관계를 전 선대왕과 광해군을
통해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소신을 갖게 되면서 뜻밖에 이 신은 그 계략에 휘말리는 상황을 맞는 부분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여기엔 두 호란을 겪으면서
또 하나의 비극을 주는 것이 있으니 억지로 청에 끌려가 모진 육.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돌아온 여인들을
바라보는 조선양반들의 시선이다.
화냥년(還鄕女: 환향녀가 변한 말: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정절을 잃은 후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을 이르던 말)-
영의정 김 환이 자신의 첩과 딸을 비싼
대가를 치르고 데려 올 때 처남인 병조판서 홍원범에게도 부인과 딸이 다시 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시 돌아온 여인들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타국에서 이미 버린 몸이라는 시선과 어찌 다시 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냐는 양반들의 이혼 소청을 왕은 승낙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다시 조정과 양반이란 사대부들이
지닌 비 사고적인 생각을 작가는 비난하고 있다.
원해서 스스로 간 것도 아니요, 결국엔 나라 님의 정치 잘못과 위정자들의 판단 실책에 따른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여인들을
누가 위로해 줄 것이며 한 지붕 아래 따로 살아가는 타인처럼 마주치기를 저어하는 양반 사대부들의 , 오로지
대의에 의한 , 대의를 위한, 그래서 대의가 제시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는 , 결국엔 자살이란 허울을 또 다시 강요하는 , 타인들의 가정을 가타부타 말 하지 않았던 홍원범에게도 어쩔 수 없는 당시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꼬집는다.

이 신 또한 그러한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그는 아내와 딸의 행방을 쫓는 그의 외로운 행보는 그 만이 알 수 있고, 백성들의 고통을
알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괴리감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李臣, 아버지는
내게 이씨 왕조의 신하로 살라 하고,
貳臣, 세상은
내게 다른 왕을 섬기라 한다.
다른 왕을 섬긴 이신(貳臣)이란 결국 두 王朝, 그것도 이민족이 세운
나라를 섬긴 기회주의자란 뜻이고, 이는
결코 그가 스스로 원한 신분상승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나라 밖의 정세조차 제대로 인지를 하지 못했던 당시의 조정 대신들의 당파에 얽힌 힘겨루기,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단 길로 생각했던 그 위정자들의 그릇된 행동의 몫은 오로지 백성들의 고통이 되었음을 피차 서로 미루는 조정의 분위기들은 다른 역사적인 사실 들 속에서 다뤄지고 있는 왕의 고뇌와 대신들의 고통을 그린 점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이 소설은 전란을 겪고 난 후의 민초들의 삶, 평범하게 살길 원했던 얼자이자 갖바치였던 이 신이란 자의 눈을 통해서 오늘 날, 현재의 우리들에게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 지를 부드럽지만, 강하게, 소리 없이 전해주고 있다.
결코 원하지 않았던 소용돌이 속에 두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어찌 보면 시대의 희생양의 대표격이었던 이 신이란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전쟁 후의 책임감을 묻는 저자의 소리 없는 글이 그 어떤 소리보다도 강한
울림이 전달되어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