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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힘 -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 연륜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옛 말을 들을라치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는 생활형 말들 잔치다.
그것이 때론 억하심정으로 어깃장을 놓고 싶어도 이치에 딱 들어맞을라치면 속담도 아닌것이 어째 그리도 내 속 맘을 요리 잘 들여다보는 듯한 말들만 하시는지, 어떤 때는 도둑이 제발 저리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도시 생활을 접고 겉 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는 안한다는 말을 뿌리치고 처가가 있는 충남 보령 월전리에 터를 박고 살아가는 귀농민(?)이다.
평균 연세가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들을 곁에서 뵈면서 느끼고 보고 살아가는 삶의 체험을 토대로 페이스 북에 올린 짧은 글들이 입소문으로 번지자 에세이를 내게 된 책이다.
충청도 특유의 느긋하고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말 속에 연신 기가 넘어가면서 읽게되는 이 책은 고진 삶의 인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평범하면서도 크나큰 욕심 없이 그저 입에 풀칠하는 정도와 서울 살이를 하는 자식들의 무사안녕을 비는 어느 부모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못 먹고 못 배우고 살아 온 한이 큰 , 충청도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말 속 하나하나에 웃으면서도 연신 가슴이 애잔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삶이 팍팍한 세상에서 오로지 내가 남을 제치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 사회에서 충청도 어른들의 한 숨 쉬고 넘어가는 말들 속엔 그런 삶의 지혜가 깃들어있다.
""워째유"?
이 단 한마디로 병의증세를 물어보는 단답형의 물음이 있다면 나와보시라~
누런 코 반, 멀건 코 반인 상태로 약 조제를 받으러 간 약국에서 약을 처방 받고 나오는데, 어르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누런 코허구 멀건 코가 반반이랴, 반반."
"반반이 뭐여, 반반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두 아니구."
"그러니께 지 코두 지가 모르믄 워쩌자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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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르신을 사랑하십니다."
"얼래? 돌아가신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워쩐 일이랴? 쌩판 모르는 양반이! 별일이네."
전도사인지 목사인지, 남자는 기가 질린 듯 얼굴이 굳어 버렸다.
"절에 다니세요?"
"아녀유"
"그러면 아무 데도 안 다니세요?"
"얼러려? 지가 빙신이유? 사지 멀쩡헌디 워찌케 아무 데도 안 댕기구 산대유 사램이? 밭에두 댕기구, 밥 먹으루두 댕기구, 똥 누구두 댕기구, 아직꺼정은 노상 싸돌아댕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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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일색이라 읽기엔 처음엔 좀 갑갑하고 어색하고, 시간이 좀 걸리지만 어르신들의 인생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개그맨 중에서도 충청도 출신들이 많다.
유난히 능청스럽고 촌각을 다투지않으면서 적재적소의 유머를 날려주는 센스를 가진 것을 보면 팍팍한 삶에 그나마 이런 유머라도 없다면 어찌 살았을까 싶은 것이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에 그저 순리대로 살아가다보면 언젠간 웃을 날도 오지 싶지않겠냐는 철학적인 위안과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여러가지 느낌을 동시다발적으로 받는다.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읎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 야, 시상(세상)일이 한가지루다가 뚝 떨어지는 벱(법)은 절대루 읎는겨, 사램이 뭔 일을 허잖냐? 그라믄 그 일은 반다시(반드시) 새끼를 친대니께? 빨래헐라구 벗으믄 새끼 쳐서 목간허구, 푸지게 먹으믄 새끼쳐서 설사허구 허는 거지. 따루 빨래허구 목간허구 먹구 싸는 거 절대루 아녀 야. 그라니께 빨래하믄서 허이구 언제 목건허냐 걱정할 것도 읎구, 먹으믄서 언제 싸냐 계산할 것두 읎다 이 말이여 내 말은. -p.209 <야코죽지 말어> 중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나오던 날 장인이 사위인 저자에게 던진 말 한마디를 읽고 있노라면 그러니께 시상살이가 그렇단 말이지유~ 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철철히 일찍 굴을 따다 파는 일에서부터 고추 농사, 농한기에 관광버스 대절해 여행가는 이야기, 친한 친구들 하나 둘씩 옆자리가 휑하니 비어가는 현실 속에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그저 만나면 반갑고 고마운 죽마고우들의 일상생활인 충청도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 휘황찬란한 전문적인 어휘가 섞인 것도 아니요, 철학적인 전문용어가 쓰인 것도 아닌 일상생활에서 묻어나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또 하나의 삶의 인생을 배워나가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