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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고아이면서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댄 머서는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착한 사람이다.
어느 날 붉은 대문을 여는 순간 자신이 결코 그 곳을 빠져 나올 수없단 것을 알면서도 구조요청을 한 소녀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문을 여는 순간 NTC뉴스의 리포터인 웬디 타인스가 파 놓은 방송 함정에 걸려 법정에 서게 된다.
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되지만 이미 그는 전국에 소아성애자란 낙인이 찍힌 상태-
술에 취한 여성이 모는 차에 남편을 잃고 아들 찰리와 살아가는 웬디에게 댄은 만나자고 하고 만난 장소에서 웬디가 보는 앞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쏟 총에 댄은 쓰러진다.
시신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전혀 상관이 없는 아들과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마샤 맥웨이드와 테드 사이의 큰 딸인 헤일리가 어느 날 실종이 되고 무려 3개월이 흐른 후 댄이 머물고 있었던 호텔에서 헤일리의 전화기가 발견이 되면서 그녀가 죽어있는 장소를 발견, 장사를 지낸다.
한편 웬디는 자신도 모르게 댄을 몰아친 결과로 그가 결백했음에도 사람들 사이에선 여전히 그가 소아성애자로 낙인이 찍힌 것을 괴로워하면서 그의 시체와 그가 정말로 헤일리를 살해했나에 관한 조사를 하던 중 그가 과거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창생 4명을 역추적하면서 사건을 긴박하고도 전혀 뜻밖의 사실들이 도출이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반전의 대왕이란 호칭이 이번에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전혀 관계가 없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지금의 실 생활에선 도저히 뗄래야 뗄 수없는 인터넷이 주는 막강한 효과를 보면서도 그것에 대한 피해를 보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웬디가 남편을 죽인 여성을 쉽게 용서할 수없이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듯, 헤일리의 죽음에 관여가 된 사람들 , 역시도 용서를 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실제 내가 이런 일을 겪는다면 과연 나는 내 아픔을 삭이고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된다.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결과는 살인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풋내기 혈혈왕성했던 대학생들이 벌인 사냥대회의 결과로 한 여성의 일생과 얼굴에 지을 수없는 상흔을 남긴 5명의 죄 값을 용서해 준 여성을 대면한 웬디의 입장에선 다시금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단 점에서 누가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딜레마에 빠지는 고리의 연결성을 작가의 탁월한 구성에 힘입어 술술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는 각자의 입장에 처한 상황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해고를 당한 필턴볼의 입장, 댄의 입장, 웬디의 입장, 용서를 한 시아버지의 입장, 처남에게 총을 쏠 수밖에 없었던 에드의 입장, 헤일리를 두고 괴로움에 떠는 댄의 전처인 제나와 노엘의 입장에서 죄 값을 치름에 있어서 누굴 눈감아주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지에 대한 결과가 부모를 가진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만드는 필치의 힘이 있다.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을 둔 엄마로서 인터넷의 활용도를 아들의 힘을 빌어서 범인 추적을 해 나가는 웬디의 모습은 지금의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보통 엄마들의 모습이 비쳐져서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기에 약한 사람들은 어디가나 있구나 하는 웃음과 함께 자신 또한 방송과 인터넷이 주는 힘 앞에 아무런 항거조차 할 수없게 만드는 문명의 이기 고발심 것도 느끼게 한다.
용서한다라는 말 한마디-
정말 쉽지만은 그 말 한마디로 인해서 그에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한결 무거운 일부분의 짐을 덜어내게 만든 작가의 결과론이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들을 증오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남을 증오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을 붙잡고 있어야 해요. 그러는 동안 정작 중요한 건 놓칠 거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P412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종교의 힘에 빌어서 용서하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극복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이 소설속의 사고를 당한 여인이 그들 5명을 용서하기까지 잠깐동안의 만남을 그리고는 있지만 상당한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맞다. 언제까지고 그들을 증오하면서 망친 일부분의 내 인생을 한탄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단 생각하에, 또 뭣보다 위 구절이 와 닿은 것은 우리네 인생은 그리 길지만은 않기에 증오로 허비하면서 살기엔 너무나 억울하지 않나?
용서할 수없는..국내의 제목 번역이 다시금 와 닿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