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러시아 할머니의 미제 진공청소기 ㅣ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정영문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미리니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할아버지 아하론은 우크라이나 마카로프에서 19살에 팔레스타인으로 오게됬다.
유대인들의 이주 정책의 일환인 제 2차 알리야시절(구 소련이나 동유럽권의 정치불안과 반유대주의에 불안을 느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한 일이란다. )에 오게된 할아버지에겐 형이 있었으니 이름은 예샤야후였다.
하지만 그는 미국으로 이주를 했고 이름조차도 샘이라고 바꾸면서 미국의 자유주의적 경제에 입각한 사업을 시작해 정착해나간다.
그런 형을 바라보는 아하론은 사회주의와 시오니즘으로 정착한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는 형을 이중의 배신자라 부르며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낸다.
할아버지의 배필인 우리의 주인공인 외할머니의 이름은 토니아-
할아버지가 이미 아들 둘이 있는 상태에서 배다른 언니이자 할아버지의 첫 부인이 죽자 18살에 14살 많은 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으로서 결혼을 하게되고 그 둘 사이에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이스라엘의 나할랄에서 정착을 하고 산다.
할아버지가 집 안의 소소한 남자로서 할 일(연장을 쓰는 일)에 관심이 없고 글에 관한 일에 소질이 있는 반면, 할머니의 특징이라면 바로 깨끗함의 정도를 넘어선 청소 결벽증이라고 할 수있는 완벽한 청소에 있다.
우선 집 안에 화장실 겸 욕실이 있어도 바깥 외양간 벽에 호스를 설치해 놓고 "훌륭한 샤워실"이라 부르면서 목욕을 하게하는 일, 문고리와 창의 문고리마다 헝겊을 씌어서 먼지를 방지한다는 일, 왼쪽 어깨에 천을 대고 수시로 때가 묻었다 싶으면 바로바로 닦고 문지르는 일이다.
부엌이 있되 식탁이라고 하는 곳에선 식사를 해 본적이 없고 바깥의 베란다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하는 청결의 대명사로 자릴 잡았다.
생리적인 현상의 해결을 위해선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감귤나무 아래에서 했으며 볼 일이 끝이나면 쓰레기의 처리도 모두 완벽을 요하는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18살에 예루살렘 모샤브 운동 신학교에서 만난 교사이자 시인인 맏 사위인 이츠하크 샬레브의 직업과 글쓰기 행동을 가족간에 이야기거리로 생각하며 지내고, 할아버지의 형인 예샤야후는 미국에서 들려오는 이스라엘의 정착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생에게 도움을 주고자 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돈은 바로 화가 난 할아버지에 의해서 되돌림을 당하고 그런 일이 몇 차례있자 예샤야후는 제수인 토니아의 결벽증 청소를 생각하고 궁리끝에 미국의 일렉트릭 제너럴사에서 만든 진공청소기를 도저히 되받아 받을 수없을 만큼의 철저한 계산으로 그들에게 보내게된다.
전 세계를 돌리고 돌리고 돌아서 온 그리운 내 누님의 품이 아닌 이스라엘, 그것도 나할랄에선 듣도보도 못한 진공청소기(vacuum cleaner)임에도 할머니는 당신의 고집대로 청소기(sweeper :스페이르)라 부르고, 이것은 곧 집 안에서 그렇게 불린다.
못마땅해하는 할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청소기가 주는 실험에 돌입한 할머니는 우선 청소기로 집 안의 먼지를 쓸어놓은 다음 손으로 걸레질을 하고 걸레를 짰을 때 하얀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검사를 한 행동대로 해 보니 너무나 깨끗해진 것을 확인한 결과 할머니는 만족스런 얼굴을 짓는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 미제청소기는 미국의 실정에 맞는 먼지의 농도와 성격을 모두 흡수하지만 이스라엘의 나할랄에서 만져지는 먼지는 먼지라기보단 사막의 모래처럼 여름엔 땅이 메마른 땅이요, 추운 계절이면 진흙창으로 변한단 사실을 예샤야후 할아버진 깨닫지 못한거였다.
할머니의 오빠로부터 청소기 내부를 뜯어보고 청소기도 청소를 해 줘야한단 말에 할머니는 사용하면 더러워진단 이유로 그 길로 청소기 사용금지를 했으며 그 후 청소기는 집 안에 열쇠로 잠근 문 안에서 고이 잠들어야했다.
한 때 내가 데리고 잠을 할머니 집에서 잤던 애버게일이란 미국 여성으로부터 할머니는 청소기의 연도가 오래됬음을 알게된 그녀로부터 많은 금액의 제시를 받고 많은 다른 전기제품과 함께 받는 조건으로 넘길 것을 제시하지만 이 또한 할머니의 고집대로 근 40여 년간을 고이 지내게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짐을 정리하던 중에 그토록 보고팠던 비밀의 장소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간 순간, 청소기는 온데간데 없고 모두들 모른단 말만 할 뿐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 나 또한 청소기의 행방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작가의 실제 할머니 이야기를 이모와 엄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신 또한 할머니와의 추억에 잠긴 이야기를 작가는 고난과 개척의 시대의 어른들이 그랬듯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이스라엘의 생생한 삶을 같이 포착한다.
우리네와 다를 것이 없던 할머니의 세대처럼 토니야 할머니 또한 집 안의 일과 자식들 건사, 그리고 일하다 아기를 낳을 경우 밭에 바로 복귀해 일한 우리네 할머니들의 모습과 많이 흡사한 장면들이 나온다.
때론 할머니와의 의견충돌로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주는 고유한 느낌의 표현과 실 생활에서 나오는 묘사포착은 손자만이 느끼는 그런 아련한 향수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사실은 이랬어"란 말로 통용이 되는 작가의 집 안의 말투 속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갖고있던 한계적인 상황의 극복 속에 이뤄진 유대인들의 이동역사와 그 안에서 이뤄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 각종 유년의 기억들이 들어있어서 간만에 즐겨읽은 동심의 세계를 기억하게하는 책이다.
같은 형제간의 이념적인 차이로 인해서 멀어진 형과 아우간의 사이가 형의 집요한 유대인다운 공세로 진공청소기란 기계를 맞이하게됬지만 도리어 기계에 종속되어 다시금 청결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 할머니의 돌발적인 행동의 결과가 웃음을 유발시킨다.
할머니의 눈을 피해서 요리조리 다른 장소로 가서 자신만의 일을 하고자 하는 할아버지를 기어코 찾아내 집에 들어오게하는 할머니의 행동, 작가 아버지를 빗대어 가족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여전이 따뜻한 가족의 품을 그리게 한다.
사는 곳이 달라도 할머니가 주는 인자함이 이 소설 속에선 그다지 나타나지 않으나, 척박한 땅에서 살다보면 그 나름대로의 삶의 지헤로 할머니대로 터득한 삶의 노하우인 청소의 대가답게 여전히 눈에 그리듯 할머니 집이 보인다.
구세대일 것 같으면서도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엔 아주 개방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할머니의 침대 제공은 역설적인 포인트를 날리지만 이마저도 귀엽게만 보이는 것은 지나칠 정도의 청소결벽증을 갖고 있는 할머니만의 특허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거리들이 아직도 작가의 집 안에서 흘러나온단 자체가 이미 할머니는 당신만의 뜻 깊은 행동을 자손들에게 깊이 각인을 시켜주고 가신 것은 아닐까 싶다.
수표를 받고 되돌려주고, 청소기를 꽁꽁 포장해 보내는 예샤야후 할아버지 대 아하론 할아버지의 대결은 웃음코드이자 할머니의 청소기 사용으로 그 힘을 잃어버린 아하론 할아버지의 심정, 그리고 꾸준한 청소기 사용을 기대했던 예샤야후 할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할머니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두 분들은 무승부를 거두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이 소설은 체험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소설이 얼마나 독자들을 더욱 즐거운 시간으로 이끄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문학이 주는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그나저나 작가 자신도 도대체 그 청소기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니, 일단 유력한 용의자는 있지만 증거가 없고, 그저 대대로 이런 전설로만 내려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 p 269- 닭을 잡았느니.... 닭을 잡았으니(오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