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ㅣ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입술이 붙은 채였다.
수술로 위.아래를 분리해내는 과정에서 정강이의 살을 붙였고 그 결과 정강이 털이 항상 그 소년의 입술 주위에 자라나게된다.
부모의 이혼에 이어서 엄마가 죽고 외할아버지, 할머니, 남동생과 생활하는 소년은 친구도 없지만 머리가 좋고 말수가 없는 소년으로 자란다.
소년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할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손을 잡고 백화점 구경가는 것-
그 중에서도 옥상에 있었던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었을 때 구경거리로 삼을 예정이었던 백화점의 의도와는 달리 빨리 커져버려 본국인 인도에 까지 가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타지도 못하는 거대한 몸 때문에 죽은 사연을 갖고 있던 인디라라고 불린 코끼리의 자취를 보는 것이다.
어느 날 학교 수영장에서 버스회사 숙소에서 사는 한 남자의 시체를 발견하게되고 그의 존재가 궁금해 버스운송회사로 가게된다.
그 곳에서 전직 버스운전자 출신으로 비대해진 몸 탓으로 버스회사의 다른 임무를 맡고 있는 "그" 를 만나면서 그로부터 체스를 배우게된다.
"서두르지마라, 꼬마야" 란 느릿한 말 속에 그가 키우던 고양이 폰과도 친숙하게 된 어느 날 그와 체스를 두던 중 체스 탁자 밑에 폰을 만지려다 탁자 밑으로 가게되고 그 속에서 체스를 마주하고있지않아도 머릿 속에 체스판이 떠오르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그는 체스 탁자 위에서, 소년은 체스 탁자 밑에서 오로지 자신의 머릿 속 그림으로 그와 대결을 펼치게된다.
실력이 늘어나면서 그를 이기게되고 동네 어른들과 시합도 하면서 내기에 이기던 어느 날, 몸이 점점 비대해진 그는 심장이상으로 죽게되고 거대한 몸집을 꺼내는 과정에서 포크레인을 동원하게 된 모습을 본 소년은 충격을 받는다.
그 날 이후 커지는 것은 비극이다란 생각으로 더 이상 자라길 거부한 소년은 11살의 몸으로, 정신은 성숙한 어른으로, 오로지 그 표시는 정강이의 살을 붙인 입술위에 자라나는 털이 유일한 증거였다.
그가 소년의 재주를 안타깝게 여겨서 소개한 곳인 퍼시픽 체스클럽의 대회에 간 이후 그의 이상행동으로 실격을 당하게되고 그, 마스터라 불린 아저씨가 죽은 후 소년은 같은 호텔이 경영하는 퍼시픽 해저 체스클럽에서 15살 때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 곳은 소년의 존재 자체를 필요로 하지않는 인형속에 들어가서 사람과 대국을 치르는 경기로 기보 자체도 없는 곳, 마스터의 고양이인 폰과 같은 모양의 인형을 안고서 레버 조작으로 오로지 탁자 밑에서 경기를 치른 그는 이후 러시아의 전설적인 체스의 달인 알렉산드르 알레힌의 이름을 따서 리틀 알레힌으로 불린다.
그의 기보기록과 함께 시계조작은 마술사의 딸인 미라가 그와 함께 일심동체처럼 움직였고 둘은 그들만의 고충과 체스의 기보를 통해서 세상에선 볼 수없는 아름다운 행진을 하게된다 .
그러던 어느 날 인형이 고장나고 수리를 하는 사이 리틀 알레힌은 사람이 체스의 말로 변해서 하는 시합의 또 다른 경기를 맡게되고 미라가 폰으로 분장해서 경기를 치르던 중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이를 막지못한 죄책감에 괴로와하던 알레힌은 인형과 함께 그를 지원했던 노파 영양의 소개로 체스연맹 회원들로 구성된 노인 전용 아파트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체스를 두는 인형이자 낮엔 소일잡일을 하는 직원으로 근무를 하게된다.
밤에 찾아오는 노인들의 체스 상대를 하던 일과는 어느 날 마스터 최강자인 S씨의 방문으로 뜻하지 않게 그와 대결을 겨루게되고 이는 곧 유일하면서도 그의 마지막 비숍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기보를 남기게된다.
이별의 말조차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 미라로부터 체스의 용어를 대신한 편지의 내용을 주고 받던 중 알레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밤 늦게 찾아오는 노인을 기다리면서 장작을 떼고 기다리던 중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 미라의 노력으로 그의 아름다운 기보는 박물관에 놓이게된다.
킹, 퀸, 비숍, 나이트, 룩, 폰으로 이루어지는 체스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한 소년의 아름다운 인생이야기다.
마스터가 설명해주는 체스의 기본 룰 속에 서 있는 각 위치들의 역할속에서 특히 비숍에 대해서 애착을 갖고 있던 소년은 백화점에서 살이 쪄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인디라란 이름의 코끼리가 사실은 비숍에서 유래했단 말에 더욱 비숍의 역할에 대해서 위로해주고 싶은 맘을 갖는다.
- 비숍을 위로해 주고 싶다. 사선으로 위세 좋게 이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외로워보여서... -
마스타 또한 그와 같은 외로운 처지, 고양이 폰을 유일한 친구삼아 살아가다 소년을 만나고, 그 소년의 재주를 알아 본 유일한 스승이자 지원군이었지만 이 또한 비대해진 몸 때문에 죽게되는, 연이어 소년이 사랑하는 주위의 것들이 모두 죽는 원인을 제공한다.
더 이상 자라길 바라지 않는 맘으로 성장을 멈춰버린 알레힌의 인생은 체스를 둘 때마다 깊은 바다 속에 인디라와 고양이 폰, 그리고 미라와 함께 동행함으로서 아름다운 기보를 남기지만 이마저도 그의 숨겨진 존재의 신비성 때문에 기보란 기록조차 남길 수가 없는 역설을 낳는다.
다만 그와 함께 경기를 하면서 스스로 그를 통해 체스를 배우면서 익힌 기보를 바탕으로 그와 진실된 맘을 주고 받는 미라의 편지를 통해서 이 소설속의 아름다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될 뿐이다.
그의 죽은 시체를 실은 곤돌라와 미라가 마지막 그의 답장에 대한 답으로 항복표시인 [~]만이 쓰인 종이를 쥔 채 그가 있는 곳으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교차지점은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아픈 쓰라린 감정을 갖게한다.
세상의 모든일들이 체스란 공간 8*8의 사각지대에서 행해지는 모든 전략이 그대로 적용됨을, 그래서 그것을 두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그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넓혀간 체스를 사랑한 한 아름다운 소년의 인생이야기를 작가는 동화처럼 아주 순수하게 그려내고 있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이름을 부여받지 않은 채, 나오는 이 소설은 그래서 소리없이 진정으로 체스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만 자신의 온전한 세상을 살다 간 리틀 알레힌이라고 불렸던 성장이 멈춘 아름다운 한 소년이자 성인의 인생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때론 동화속의 환상적인 세상으로 빠져 들어서 헤험쳐 나오듯, 때로는 세상에서 이룰 수없는 일도 바다 속에서 유유자적 코끼의 꼬리를 잡고 고양이를 안은 채 천천히 유영하듯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정말로 이 책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뜻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체스란 경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야기인 만큼 체스에 대한 룰을 알고 읽는다면 다소 이야기 진행 정도가 빨리 진행될 수도 있고, 모르더라도 그냥 넘어가듯 읽어도 무리없이 읽힐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이 독자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읽게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