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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4 년전 소아성애자인 룬드는 자신이 물색해 오던 금발의 소녀와 그 친구인 9살 소녀들을 유인해서 참혹하게 죽이고 60시간 방치한 상태로 두었다 잡힌다.
4 년이 흐른 후 30대 후반의 이혼남인 프레드리크 스테판손은 5살의 금발의 딸 마리와 살면서 그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친아버지의 이유없는 매질에 자살을 한 형을 생각하며 마음 안의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어느 날 오후 딸 마리가 유치원에 갈 것을 요구하게되고 프리드리크는 유치원 앞에서 낯은 익지만 누구인지는 생각이 나지않는 어느 학부형에게 인사를 하고 딸을 유치원에 들여보낸다.
집필을 위해서 자신의 집필실이 있는 섬에서 우연히 TV를 통해 나온 탈옥수 룬드의 얼굴을 본 그는 유치원에서 인사를 한 사람이 바로 그 범인임을 알게된다.
하지만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딸은 실종된 상태-
나중에 딸 아이의 참혹한 모습으로 변한 모습이 발견되고 부검된 시체를 보면서 오열을 금치못한다.
담당 부검의의 소견을 들은 두 형사 노장 에베트그렌스와 스벤은 전에 일어났던 소아성애의 현장과 같은 동일인이 확실하단 말과 함께 프리드리크에게 범인 룬드의 정황으로 봐서 다시 재범을 일으킬 소지가 있단 소릴 듣게된다.
한편 성범죄자와 일반재소자들을 분리해서 감시하고 있는 감옥인 아스프소스에는 부인을 사랑하면서도 동료인 남자 닐스를 사랑하는 렌나트 오스카숀이란 책임자가 근무하고 있었고 그는 성범죄자만 관리하는 특별관리구역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룬드의 탈옥은 심한 사회적인 충격과 개인적인 일로 인해서 더욱 혼란을 가져오고 일반 재소자구역에서 잠시 머물다 특별구역으로 옮기는 과정에 있는 성범죄자들이 죽어나가는 현상에 대해서 범인을 알고는 있지만 심증은 잡을 수 없는 릴마센이란 사람에 대해 골머리를 않는다.
딸을 묻고 오면서 프리드리크는 방송국에 일하는 친구를 통해서 범인 룬드가 예전에 택시를 몰았으며 택시의 반경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임을 확인, 그 근방을 배회하면서 한 때 장인이 소지하고 있던 엽총을 가지고 그를 찾아나선다.
마침내 그를 찾아낸 프리드리크는 엽총으로 그를 죽이게되고 라슈검사는 그를 살인모의 및 고의 살인죄로 체포를 당한다 (검사는 종신형 내지 10년형을 구형한다.).
이는 곧 자녀를 가진 전국의 부모로부터, 특히 딸을 가진 부모들로부터 열렬한 성원을 받으면서 일약 국민영웅으로 떠오르게 되고 변호사와 이를 호응하는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판사를 제외한 배심원단의 전원일치로 무죄로 석방된다.
하지만 법 앞에서 어떠한 인간도 다른 인간을 단죄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운 검사는 다시 항소를 하게되고 자신의 무력감과 딸을 잃은 프리드리크는 모든 것을 포기한단 것을 변호사에게 알림으로서 10년형을 선고받고 이 사건은 많은 국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지어진다.
일시 수용소로 내정된 룬드가 머물렀던 그 감옥에 간 프리드리크는 일반 재소자 구역에 송치되고 교도관들이하는 말 사이사이에 성범죄니, 일시 수용이란 말을 들은 릴마센은 목욕탕에 들어간 프리드리크를 죽인다.
소설이란 것이 하나의 창작물이란 것을 염두에 보자면 이는 분명 창작에 불과한 얘기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분노라든가, 인간이 정해놓은 룰 안에 존재하는 법의 테두리, 정의, 법정구형, 같은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자신의 분신과같은 딸이 하루아침에 처참한 모습(책에서 비교한 모습은 참혹한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분노가 절로 일어난다.)을 본 아버지의 심정은 법이 보장해준다던 범인색출이나 탈옥을 방조한 교도관들의 행동, 자신의 딸 이외에도 범인의 행각은 자살로 이어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란 형사의 말 한마디에 그 자신이 스스로 단죄에 나서게만든 허술함을 꼬집고 있다.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정의는 꼭 실현되어야하니까.- p287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는 영웅으로 거듭니려는 의도도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온 국민의 성원을 입는 영웅으로 변해있었고 이런 과정 자체도 힘에 겨웠던 한 아버지의 진실된 모습 포착은 우리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의 결과는 어이없게도 1차 법의 결과대로 무죄에 대한 확신으로 법이 해결할 수없다면 우리라도 나선다는 자체가 죄가 아니란 또 다른 현상을 나타내보여준다.
나체로 국기 앞에서 노랠 불렀던 예단이란 인물이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단 것에 분노를 느껴 그를 죽인 벵트쉐델룬드나, 그 밖의 폭력성 행동을 보이는 타 국민들이 자신의 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작가는 통렬히 꼬집어보여주고있다.
마약범으로 일생의 절반을 교도소에 수감중인 릴마센의 캐릭터는 작가 중 한 사람인 헬스트럼, 자신의 살아온 모습을 비쳐주고 있기에 그가 다른 일반 재소자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면서 성범죄자에 대한 살인동기의 행동은 프리드리크와 같이 또 다른 인간이 다른 인간을 단죄할 행동의 근간엔 이러한 것이 용납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도 던진다.
어이없게도 성범죄자로 알고 있던 프리드리크가 실은 룬드가 다시 재범을 노리고 대상으로 잡은 두 여아중 한 사람이 자신의 딸이었음을 알게되는 과정은 정말이지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없는 끊을래야 끊어지지 않는 실타래를 연상시킨다.
요즘 도가니란 영화가 온 나라에 관심을 모으고있다.
비록 이것이 이 소설과는 다른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힘없는 여아를 상대로 한 범죄라는데에는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있다.
사형제도도 없고, 최고형인 종신형만 있는 이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런 인간이하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과현 종신형만이 최고인가? 그렇게 숱하게 정신병원에서 치료감호를 받았는데도 항상 경미한 결과로 나온 룬드를 보는 심정은 법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절차에서 정말로 확신을 가지고 이런 범인을 수용하고 죄에대한 확실한 단죄를 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물어도물어도 해결의 끝이 안보이는 문제점을 준 소설이었다.
두 사람의 작가는 각기 전혀 다른 인생을 산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언론계통에서, 한 사람은 어릴 적 3차례의 성폭행을 당하고 마약에 찌들어 감옥소를 드나들다 자신과 같은 재소자의 재활을 위해서 새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취재차 만나서 이 책을 구상했다는데, 교도소안에서의 주도를 쥔 자와 그 안에서 보호를 받고 굽신거리는 생활을 하는 재소간의 계급질서 관계, 오로지 출세지향적인 것을 위해 이 사건의 중요성을 알고서 종신형을 내린 검사의 행동, 교도관들이라도, 때론 결코 법이 내린 결정엔 어느정도의 무리수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말들엔 인생사에 꼬이고 꼬인 여러가지의 해답을 내릴 순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생생한 교도소내의 생활이라든가, 심문하는 스타일, 변호인의 법을 이용한 변호을 위한 말들, 법 테두리안에서 오로지 법적인 구형만을 생각하는 검사로서의 한계, 심신이 지쳐가는 프리드리크란 아버지의 입장의 표현이 살아있는 느낌을 주기에 지루함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