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눈물 1 - 정조와 연암결사 - 고립무원
이재운 지음 / 현문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연암 박지원을 필두로 연암결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서얼 출신들이 대부분인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외에 박지원의 든든한 후원자요, 뜻을 같이한 홍대용, 이서구(양반출신)가 바로 그들이다.  

때는 정조시대를 기반으로 정조가 실지 왕으로 군림하기 이전부터 북학에 대한 관심과 청의 문물을 체험함으로써 백성들의 안위에 대한 실제경제활동에 그 역점을 둔 사람들이었다.  

자신을 아끼는 장인과 장인의 형제로 부터 학문을 배웠던 박지원은 신분을 벗어난 세대를 앞선 사람들과의 교류로 자신의 성장에 밑거름을 마련하며, 잇따른 소설을 펴내게 되고, 박제가와 같은 이들과 교류를 통해서 스승과 제자의 긴밀한 유대를 이어나간다.  

영조는 왕권을 당시 당권을 지고 있던 신하들로부터 지키기위해서 당쟁에 희생이 되어야만 했던 자신의 아들 세도세자를 죽여야만 했던 암울한 시대상황, 뒤주에 갇힌 아비의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했고 끝없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해오는 세력들로부터 벗어나기위해 도장파는 일따위에 몰두하는 척 해야만 했던 정조의 자신지키기는 하루하루가 숨막히는 날이었다.  

자신의 학문을 맡게된 홍대용으로부터 비로소 그의 진면목과 자신의 뜻이 일치함을 느끼게 된 정조는  그가 추천한 연암결사대의 사람들과 그들이 뜻을 알게되고 먼 훗날을 위해서 후일을 기약하게 된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고서도 벽파와 시파간의 견제, 규장각의 권위를 한층 넓힘으로써 이들을 견젠키 위해서 남인들과 서얼출신들의 과감한 기용은 점차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듯 보이지만 이들을 시기하는 사람들로부터 북학파를 보호하기 위해서 먼 타지로 여러차례 관직으로 내보내는 고충이 따른다.  

아버지의 묘지르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수원 화성의 축성얘기가  흘러나오고 정약용으로 부터 도성 설계를 의뢰하면서 수도 천도의 뜻을 옮길 기회를 엿보게 되지만 이마저도 갑작스런 승하로 그들의 꿈인 천도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세손은 울먹거렸다.
“내게는 미쳐서 죽음을 당했다는 아비와, 남편이나 아들보다는 친정 집안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어미와, 혈손마저 죽여 권세를 잡아 흔들려는 외할아비와, 출신 성분 때문에 평생 자학으로 살아온 할바마마와, 공부를 잘하면 오히려 눈을 부릅뜨는 스승들만 있으니….”
세손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미친병에 걸렸다는 모함을 받고 죽은 사도세자와, 외척 세력을 형성한 어머니 혜빈 홍씨의 가문, 그리고 강설을 한다는 미명 아래 세손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는 김낙임 같은 벽파계의 강사들을 일컫으며 한탄했다.
“그래도 괜찮소. 계방 같은 이가 곁에 있으니, 그러니 아직은 살아갈만하다오
.” 
 

정조는 정말 외로운 군주란 생각이 든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수도 천도라는 대 역사를 앞두고 그 뜻을 이루기 전에 부스럼이란 병이 악화가 되면서 실질적 실록 편찬에 참여한 벽파에 의해서 완전한 진실이 묻힌 불운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끊임없는 위협에 자신도 살고 왕조의 권위를 되살리면서 백성의 실 생활을 염두에 둔 정치적인 활동의 영역은 위의 대사처럼 사각지대의 위험에 둘러쌓인채 홀로 결실을 거두어야만 했던 왕이었다. 

이용후생, 실사구시란 구체적인 실 경제생활 철학을 염두에 둔 북학파의 출현은 마치 가뭄에 단비를 내리는 역할을 했기에 정조의 뜻을 이루기 위한 오랜 기간의 밀사성격의 모임과 그 뒤의 계획 실천은 아마도 상상컨대 조마조마한 줄타기였을거란 짐작을 하고도 남게한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그 뒷세력인 외척의 비등해진 세력, 규장각과 영조의 대를 이은 탕평책까지 그 모든것을 아울러서 견제를 하고자  남인의 세력을 키웠지만 남인들이 서학이란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뿌리를 내릴려는 과정이 서로 부딫쳐 진퇴양난에 빠진 정조의 개혁은 그래서 안타까움을 준다.  

정조의 승하뒤 피비린내 나는 천주교도의 박해 사건과 모든 정치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는 벽파의 세력 대두, 다시 정순왕후를 견제하기 위해 견제를 하고자 이용했던 김조순과 박씨 가문의 세력대두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봤을 때 정말 불행한 시기란 생각이 들게한다.  

뒤늦게 다시 북학파의 빛을 보는 가 싶은 이들의 행보는 정순왕후의 죽음, 뒤이은 순조, 효명세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더니 개혁파의 김옥균까지 그 세를 이어가지만 현실의 시류는 이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 비극을 선사한다.  

멸망한 명에대한 그릇된 과거에 집착한 향수에서 오는 앞일을 보지 못한 사람들, 청과의 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다시금 굴욕적인 일을 겪지않겠다는 각오를 다진 북학파의 현실성 있는 경제이해는 이들이 서로 반목하고 이어서 서학을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겹쳐진 혼란의 시기였음을 작가는 그 시대의 반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귀향간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추사 김정희가 스승을 찾아가면서 과거의 회상식으로 북학파와 정조간의 일을 구술하는 식으로 엮어진 총 3권의 이 책에서  정조의 이해되지 않는 죽음, 박제가, 유득공의 행방에 대해서 당시의 실록자체에 솔직한 얘기가 들어있지 않기에 더욱 이 시대의 안타까움과 사실을 알고 싶단 생각이 들게만들었다.  

칼을 쥔 자가 쓴 역사를 정사라고 부른다는 저자의 말이 이처럼 가슴에 와 닿은 적은 없는것 같다.  

비록 나라의 안위를 위한다는 구실로 정조의 정치에 반대한 노론의 벽파와 시파, 남인들의 세력다툼을 제쳐놓고서라도 만약 정조가 영조처럼 오랜 수명을 다한 채 자신의 뜻대로 천도를 이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또 다른 모습의 국가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기존의 세력을 견제하면서도 일찍이 앞날에 대한 생각의 뜻을 같이했던 북학파의 못다 핀 난 한송이의 그림은 그래서 지금도 우리에게 여전히 그려나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책 제목은 왕의 눈물이지만 실지 본 내용 중 절반 이상이 연암 박지원의 행로를 보여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박지원 일대기로 읽힌단 점이 단점으로도 보이지만 정조가 하고자 했던 이상의 정치실현에 대한 고뇌는 다시 한 번 역사앞에서 먼 훗날 심판을 받게 된다면 과연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위정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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