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
소래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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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이란? 

저자의 말에 의하면 사전적 의미로 찾아보니 흐린데 없이 밝고 활발 / 유쾌하고 활발함이란 뜻이란다.  

이 말은 중국에서 유래되어서 우리나라, 일본에 전파되었는데, 중국에선 위의 두 가지가, 한국에선 첫 번째로 일본에선 두 번째의 뜻으로 사용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것이 일제지배를 받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이 사용하던  뜻으로 쓰여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 단어의 유래를 저자는 1930년대에는 어떻게 사용이 되어졌고 이에 맞는 의미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지를 말한다.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명랑이란 단어의 쓰임새는  1980년 말대에 이르기까지 명랑화에 대한 이해방식은 달라도 '명랑화'에 대한 보편적으로 쓰였음을 말하고 이에 반한 사람으로는 시인 김광섭이 말한 대목을 대비시켜준다.  

"명랑이나 하는 것은 개나 물고 다닐것이요, 미소를 짓밟는 자의 의욕에 불과하다"란 말로써 일침을 놓는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그것은 주도면밀한 일제시대의 정치적으로 사용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당시의 명랑이란 단어는 불결, 불량, 오염, 범죄, 퇴락, 퇴보, 불온지대 명랑화에 대한 반대에 해당하는 말로써 사회적으로 정치를 실행해나가는 과정에 심어진 의도적인 말로 조선사람들에게 각인을 시켜주었기때문이었다.  

그들의 계획안엔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명랑화의 계획으로서 학적부를 이용한 정책, 오락금지(영화관, 다방단속, 당구장) , 대중문화에선 눈물단속,키스단속으로 이어지는 강압적인 사상통제성을 보여준다.  

출세를 하기위해선 유학을 권장하기는  지금의 스펙쌓기와도 같은 것으로 보여지며, 영어를 무시하는 행태는 자신들과 대적인 영국과미국에 대한 영향으로 그 범위를 확장한다.  

하지만 가장 활발하게 명랑화를 강요당한 것은 바로 일본에서 상륙한 '걸'들의 출현이었다.  

지금의 직업여성이 의미하는 뜻과는 다르게 당시의 상황으로선 활발히 사회활동이 드물었던 조선의 여인들이 비로소 각종 '걸'로 붙여지는 직업을 가진것이다.  

일명하여 스틱걸(애인대행 서비스 여성), 매니큐어 걸(네일아트 종사자), 엘리베이터 걸, 데파트 걸, 가솔린 걸 ....  

이들의 공통점은 서비스업인 만큼 고객을 상대로 끊임없는 활발한 명랑함을 보여줘야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과는 다른 직업에서 오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밖으로 의심을 받게 된 이 불완전한 명랑화는 당시의 직업부인의 재산이기도 했다. 이는 보편적 근대 혹은 자본주의 차원의 감정관리 양상을 목격 할 수 있다는것을 보여준 실례라고 한다.  

즉 자본주의 진행과 식민지억압이라는 것이 맞물리면서 명랑의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저자는 여러 사례를 들어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사람들의 가슴에 일말의 명랑을 보여준 사례로 제시되는 자전거 하이킹이나 스케이팅이라 불린 빙상운동은 당시 이 종목으로  활동했던  유명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울분을 달랬던 일례도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런 명랑이란 단어는 시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정치적으로 쓰여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설속 내용이나 신문에서 우려하는 글의 기사 흐름은 그것을 말해주며, 이런 명랑화는오히려 눈물과 어울림을 대변한다.  

조선사람들에겐 주입된 이런 명랑화는 당연히 당황스러움을 주었고 시인 김기림에 의해서 명랑화는 빛을 보게된다.  

즉 그의 주장대로라면 새로운 가치를 건설하는 '부정의 정신'이 약동하는 명랑을 익히자는  것이다.  

이는 곧 21세기의 행복화와 쿨이란 단어에서도 같은 동시대적인 동질감을 느끼게해 준다.  

88세대에게는 쿨이란 면에서 가혹한 현실을 견디는 자기포장술을 의미하며, 일제시대의 유학이나 학부위주의 성적증명은 이 시대의 제도가 여전히 답습하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같은 명랑화를 1930년대를 기준으로 그 당시에 일어났던 정치적인 면과 그 유지를 위해서 행한 사례를 접하다보면, 그 때의 젊은이나 지금의 청년실업으로 고생하는 젊은이들이나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단 생각이 많이 든다.  

노숙자라고는 하나 고학력 출신들이 있었던 룸펜이란 불린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쫓치는 행위나 청계천에서의 빨래금지,채소씻기 금지 같은 행정적인 금지 사항은 일말의 효과는 있었다 할지라도 2002년도의 월드컵에 대비한 노점상들의 시위와 비교해도 같은 동질감을 느낄 수가 있다.  

이 책은 결국 억지춘향식의 명랑화란 작업을 실시함으로써 역사속에서 암울하게 살아온 우리일제 시대의 암흑이나 지금의 시대나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은 그다지 없으며, 다만 명랑화라는 감정의노예가 아니라 감정의 주인이 되려는 자에게만 진정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명랑화가 온다는 말에 공감이 되는 책이다.  

보통의 단어를 시대별에 맞춰서 지금의 시대와 비교해 분석해 놓은 점이 눈에뛴다.  

일제의 36년이란 정치의 잔재가 읽는 내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에선 뿌리내림의 세뇌적인 것이 얼마나 집요하고 당연시되고 있었음을 알게 해 준 계기가 되었으며, 진정으로 우리가 말하는 명랑이란 단어가 수동적인 것이 아닌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스스로 만들어가야 되는 것임을 일깨워준 내용이었다.  

다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김기림이 주장하는 부분을 다룬 부분에선  전공분야답게 국문쪽으로 많이 흘러들어간 느낌이 강하며 이는 처음의 흐름보단 다소 느슨해졌단 느낌이 왔다는점을 빼면 경성이라 불린 시대의 명랑을 접할 수 있었던 시간을 줬단 점에서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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