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시간들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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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의 주체할 수 없는 허전함이나 감정 통제를 어디다 하소연하고 싶을 때 옷장에서 빨것이 없는지, 살펴보고 일단 끄집어낸다.  

그런다음 옷을 대상으로 삼아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나 감정의 폭발선을 옷들에다가 쏟다보면 어느 새 나의 맘도 정화가 되고 깨끗해진 옷을 보고 있노라면 순수한 정화마저 느낀다.  

'세탁기가 고장났다'란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사립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28살의 불면증을 겪고 있는 오주다. 

도서관에서 불어전공을 하던 남친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원룸에 남친이 사용하던 세탁기가 들어오게 되고 관계를 이어가다가 어느 날 남친의 이별 통보를 받는다.  

빨래감속엔 그가 남기고 간 티셔츠 두 벌이 있고 가구를 여기저기 옮겨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가던 중 이웃에 살고 있던 31살의 조미정이란 여인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녀의 일은 뭐든지 수집하는 여자- 

단순한 10원짜리 동전도 모으고 세상에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있는 사소한 것도 수집하는 여자다.  

세탁기 사용을 하게 해 주겠다는 말만 믿고있던 오주는 그녀의 오랜 부재를 견디다 못해서 가까운 빨래방을 두드리게 된다.  

머리에 머리띠를 하고 우울한 표정의 묘령의 남자는 9번의 세탁기만 사용하다보니 은연 중 빨래방을 사용하던 사람들중엔 당연히 그가 임자라는 암묵적인 동의의 질서가 정립이되고 초면인 오주에게 빨래방 사용법을 알려주던 전직 카피라이터였던 34살의 조미치란 여인을 만나면서 그 곳의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미치와의 내기로 9번 세탁기를 사용하는 남자의 입을 열게하잔 내기에 자신도 모르게 행동을 옮기게 된 오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대한 알고싶단 생각을 하게되고, 미정의 힌트로 그를 웃게 만드는데 성공하면서 자연스런 대화를 하게 된다.  

일주일에 한 두번 빨래방에 가게 되면서 미치외에 전직 교수를 했다고 하는 콧수염 아저씨, 박구도라 불리는 구질한 중년 아저씨를 알게되면서 그들과 자연스런 삶의 체취에 녹아들게된다.  

결혼한 친구로부터 세탁기를 받게되지만 자신도 모르게 빨래방을 찾게되는 오주는 어느 날 우울한 청년 - 9번 세탁기를 사용하는 그에게서 사연을 듣게되고 그를 자신의 원룸에 같이 오게되지만 세탁기를 발견한 그에게 오히려 빨래를 하러 와도 되냐는 물음을 받게되면서 새로운 만남에 설렘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끝내 빨래방에도, 자신의 원룸에도 나타나지 않고 알고 있던 아저씨들도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으로 간다.  

빨래방엔 세 여자- 

모드 세탁기를 갖고 있는 , 오주, 미정, 미치만 오롯이 남아서 새로운 만남을 가진다.  

담백한 소설이다.  

제목 자체로도 딱 어울리는 옷들의 시간- 

옷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남,이별,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본 현대인들의 고독과 사랑에 대한 얘기를 빨래방이란 공간을 소재로 다루었다.  

빨래방은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아서 잘 몰랐던 사용법이라든가, 그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터줏대감식의 사용권, 각기 다양한 사람들의 직업을 통해서 본 세상의 이야기를 나열한 것이 인상적이다.  

고장난 중고 세탁기를 들여옴으로써 남친과의 사랑이 지속되었지만 자신의 불면증에 지친 남친은 결국 떠나가면서 옷 두 벌을 남기고 간다.  

하지만 이 옷 두 벌은 또다른 새로운 인연에게 갔으니 바로 박구도 아저씨- 

그것을 입고서 좋아하는 아저씨의 모습포착은 그것이 비록 낡은 옷이라 할 지라도 그에겐 새로이 맞는 만남을 연상시킨다.  

자신에게도 이젠 세탁기가 생겨서 굳이 빨래방에 가지 않아도 되건만 우울남 최주원이란 사람에게 끌린 오주 자신은 자기도 모르게 그를 만나기 위해 빨래방을 이용하는 모습에선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설렘을 가지게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가버린 그의 존재에 대한 쓸쓸함이 비쳐진 점에서 그의 첫 만남의 매개역할을 했던 수면양말 또한 이별을 고하는 뉘앙스를 준다.  

"사람과 사람이 맺어 가는 관계라는 건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과 같다네. 옷은 결국 우리 곁을 떠나게 돼 있지. 작아지고 커져서, 혹은 낡아지고 닳아져서 떠나게 돼. 취향과 유행에 맞지 않아서도 떠나게 되고 말이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입을 수 있는 옷이란 없다네. 관계라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야.”  - p.123 

위의 아저씨 말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사랑이란 것도 어쩌면 옷의 기능과 같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게 한다.  

만남이 있다면 이별도 있고, 상처의 쓰라림도 시간이 흐르면 흐릿한 옛 기억속으로 기억되듯이 말이다.  

다시 모인 3인방의 세 아가씨의 만남은 그래서 또 다른 작은 흥분을 일으킨다.  

어떤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빨래방에 또 다시 방문해서 이들과의 만남을 이어갈지 기대를 하게 한다.  

책을 읽어가면서도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작은 울림이 있는 , 젊은 작가의 필치가 새롭게 각인이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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