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공주
한소진 지음 / 해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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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란 인물은 신하는 물론이고, 당신들의 어린 자식들을 모아놓고 학문을 즐겨 강연과 토론하길 즐긴 임금이었다.  

중국에서 차용된 한자를 빌어와 이두와 향찰이란 것을 토대로 글을 쓰고 읽었음에도 우리가 느낀 감성을 토대로 나타내기엔 한계가 있던 바 왕은 자식들에게 우리말의 필요성을 알리고 연구해주길 바란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뛴 존재가 딸로선 둘째인 정의공주가  단연 돋보인 영특함을 보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것이 없던 왕이 첫째 딸인 정소공주가 죽자 실의에 빠지게 되고 그런 아버지 곁에 지켜본 공주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연구에 정진하게 된다.   

단군세기에 남아있는 가람토문자 38자를 토대로 백성들이 실제 생활에 쓰고 있는 생생한 말을 알고자 했던 왕은 가람토문자가 있는 돌을 찾아서 나서길 원했고 그 와중에 정의 공주는 자신의 제 2인생을 하게 된다.  

바로 안맹지의 둘째 아들이었던 맹담에게 시집을 가던  첫날 밤,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쏟아내뱉은 말인 삼례란 이름에 놀라게 되고 이후 부마는 공주를 피하게 되면서 공주는 쓸쓸함과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런 중에도 꾸준히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서 자신의 시종이 부르던 노래가락에 힌트를 얻어서 말의 생성과정에 도움을 얻게되고, 삼례란 아이의 출현은 그 아이의 아픈 과거를 같이 짊어지고 갈 것을 결심하고 곁에 두면서 부마의 맘이 돌아오길 바라는 여인네의 마음이 된다.  

세종의 명으로 그의 아들인 수양대군과 안평이 가림토문자가 새겨질 만한 곳으로 전국을 돌아다니게 되고 이 노고는 드디어 그 장소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더욱 글자 완성에 박차를 가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  

집현전 학자들 중 성삼문과 신숙주를 동참하게 함으로써 젊은 혈기로 뭉친 그들의 혈기와 뚜렸한 의식은 맹담, 스스로도 공주의 뜻과 같이 함으로써 비로소 부부로서의 안정과 백성을 위해 하는 일이란 목적을 수반하는 과정을 묵묵히 도와주게 된다.  

세계의 여러나라들은 각기의 문자와 말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게 된다.  

그것이 침략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자와 말이 사라지거나 그래서 침략한 나라의 말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제 2공용어로 밀려난 처지로 당하는 신세가 될 지라도 그들 고유성은 아주 중요한 가치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글자인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세종과 그 뜻을 같이한  자녀간의 노력은 , 특히 여자란 신분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받고서 그 의지를 굳건히 앞세워 뜻을 펼친 정의공주란 인물은 그래서 더욱 신선하다.  

한글이 창제될 당시 집현전의 모든 학자들이 찬성하지 않았던 당시의 중국 사대주의에 젖은 사상에 반기를 들고 우리의 고유한 글을 만들었단 점은 지금에서도 유례가 없는 과학적인 글자로 거듭나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창제로서 반포가 되고도 호응을 별로 받지 않았고 "암클"이라 불리며 멸시를 받았던 한글의 존재를 그들은 그것이 지닌 천재성을 등한시 했고 다분히 여자들이 쓰는 글이라 했기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나 쉽다. 

한글이란 것이 창제되는 과정엔 이런 온갖 어려움이 있었지만 뭣보다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함에도 그것이 제대로 해결이 되었는지조차 모르고 윗선인 관청의 하수인들에게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쓸데없는 가지는 쳐내는 방식으로 꼭 필요한 것만 추려서 만들었단 점에서는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여기엔 공주의 신분으로서 며느리로서 , 한 여자로서 느껴야했던 , 남편의 방황을 스스로 추스리며 질투가 아닌 인간적인 포근함으로 감싸안은 삼례란 하녀를 등장시킴으로서 다른 분위기의 반전을 그려내게 한 점도 눈길을 끈다. 

부마로서 자신의 뛰어난 재능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법에 따라서 수양과 같이 술로써 세월을 축내고 살아야만 한 맹담의 고뇌 또한 놓치지 않는 기류를 형성했단 점이 글을 읽음에 있어서 지루함을 모르게 만든다.  

각 지방의 특유의 짦은 말 속에 담긴 리듬과 궁상각치우, 그리고 농민들이 불렀다던 노래에서 착안한 점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집요함도 보여준 대목이다.  

한글을 창제한 멤버로서 여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대한 세종대왕의 열린 생각이 더해져서 자신의 기질을 그대로 이어나간 정의공주- 

끝내 훈민정음해례본이란 책이 나왔음에도 여자가 들어가면 안된다는 반대에 자신 또한 그것이 만인을 위해 편한 일임을 주장해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던 정의공주란 인물에 대해 새삼 존경심이 인다.  

암클로 변해서 무시당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우리의 글자를 차용해 자신들의 언어로 쓰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국민들의 이야기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고유함과 창의성을 간직한 한글의 존재를 세계적으로 내세우게 된 결과로 이어졌고 이는  앞으로도 더욱 빛날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TV에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말과 글이 배우기에 어렵다고 한다.  

물론 각각 초.중.성이 따로 있고 자신들의 말의 어순과 많이 다른점, 읽는 글자와 쓰는 글자가 다른 것이 많다는 점이 힘든것이 되겠지만, 오히려 이런 원리를 알고 배우기만 한다면 쉽게 발음하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하단 논리엔 아마 이런 글자를 아무리 뒤져봐도 세계 어느구석에도 없을 것이란 자긍심을 갖게 한 책이다.  

사랑스런 대왕의 딸로서,  오빠와 동기간엔 든든한 의지자로, 단종에겐 젖을 물리기까지한 든든한 고모로서, 며느리로서, 방황하는 남편을 끝내 내치지 않고 포근함으로 감싼 따뜻한 아내로서, 자식들을 잘 건사한 어미로서 정의공주는 요즘말로 하면 그야말로 울트라 슈퍼 알파맘이 아닐까? 

다만 노년기의 수양대군의 왕조 뒤업는 과정과 남편이 협조를 했단 이유로 쓸쓸히 맞이한 삶, 조카의 불운한 삶을 막지 못한 자신의 한을 안고서 삶을 마감한 공주란 신분이 어쩌면 일반 평민들은 알지 못했을 인간적인 고뇌를 갖고 살다 간 여인이란 점에서는 다소 안타까움을 지울 수없다.  

역사속에서 묻혀서 알려지지 않았던 정의공주란 이름의 이 당찬 여성으로 말미암아 오늘 날 우리가 쉽게 쓰고, 읽고, 말하는 과정을 가지게 된 점은 그래서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인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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