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반의 연애편지 - 훈민정음 언해본의 진실
김다은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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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세조(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후 11년이 지난 1465년   그의 사저에 있었던 종 출신인 소명 박씨가 세조의 동생인 임영대군의 아들인 귀성군에게 보낸 서찰 한 통으로 인해서 이를 전달해 준 환관 2명이 박살형을 당하고 두 명의 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소명 박씨도 목을 매는 죄를 받게 된다.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한 마디 백팔자 란 것으로 인해 이를 파헤치면서 또한 그것을 감추고자 하는 궐내의 사람들과 환관, 잠녀, 승려, 화가 안견,  신숙주, 한명회, 정인지 등, 내노라 하는 당대의 모든 인물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전말의 이야기가 모두 편지의 형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시대 여건상 불교가 퇴출당한 시점에서 어린 단종이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것 보단 안평대군쪽이 예술면이나 정치면에서 뛰어나단 것을 안 승려들이 안평이 꿈을 꾸고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를 통해서 그가 다라를 다스려야함을 넌지시 알리기 위해 노력 했으나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수양이 도첩을 소지 하지 못한 죄로 끌려가던 덕중이란 중을 살려줌으로써 수양을 왕에 오르게 하기위해 서로 밀약을 다짐한다. 백팔장이란 모임을 만들었고 이 명칭을 수양이 하사함으로써 서로 짝패가 되어서 그들만이 아는 임무를 행하기 시작하는데,  왕에 오르기 위해선 백성을 위해 만든 소리( 훈민정음)를 부처에게 바치면 된다는 밀약의 내용이었다. 이를 서로 간에 확인조로 월인석보 1권안에 108자 세종어지와 훈민정음언해본을 넣고 1권말에 "총일 백일장"을 넣는 작업을 함으로써 총일은 수양 자신을, 백일장은 이 승려들의 수장인 백팔장 자신을 의미한 것이었다. 

한편 사저에서 무술을 다듬기 위해서 드나들던 귀성군은 수양의 부탁으로 잠저에서 온갖 식물과 동물을 키우던 같은 이름의 덕중에게 전달하란 서찰을 가지고 그녀에게 전해주게 되고 이후 친하던 덕중 스님에게 백팔장이란 얘기를 하게 됨으로써 그 둘의 연정을 알게 된 덕중의 시샘에서 비롯된 맘으로 하녀 덕중의 맘을 돌려볼려는 생각에 자신이 백팔장에게 받은 찢어진 종이의 일부를 그녀에게 주게 된다. 오랜 세월동안 귀성군을 맘에 간직하게 된 그녀는 자신을 사모하는 맘에 전해 받은 서찰인 줄 알고 간직해 오다 이 두 개의 종이를 맞춰 봄으로써 연서가 아닌 어떤 모종의 밀약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잠시 만나줄 것을 의미하는 뽕나무에 새겨진 숫자를 잠녀 아라에게  전해주게 되지만 이후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귀성군과 세조는 이후 연서를 가지고 온 이들 부자를 추궁한 결과 자신과 백팔장의 밀약 내용을 이들이 모른단 사실에 안심을 하게 되고 화가 안견을 통해서 몽유도원도를 찾아보게 한다. 몽유도원도를 그리고 난 후의 당시 상황은 그림에 탄복한 중 만우를 비롯해서  세도가의 유력한 여러 대신들이 찬시와 찬문을 별도로 적어 내려갔던 종이가 있었던 바 , 이 그림의 출처 소장이 밝혀진다면 때 아닌 왕위 찬탈 도모 목적이 있었단 오해를 받게 될 까봐 신숙주와 안견은 그림을 발견하고도 없다고 하기로 하고 그림은 오래 전 신숙주가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된 사람에게 일본으로 보관하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잠녀 아라 또한 소명 박씨가 전달하라한 뽕의 숫자가 새겨진 뽕잎이 장차 자신은 물론이고 귀성군과 죽은 박씨 사이에 일어난 모종의 일임을 알고 뽕잎을 꺽어서 귀성군을 보호함과 동시에 자신도 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와중에 방비리란 환관과 함께 이 비밀을 추리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백팔장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어떤 감을 잡기 시작한다.  

이후엔 밀약은 있으나 실제 손에 쥐어진 것은 없고 도처에 널려있단 의미에서 필사본이 여러 권 발행됨에 따라서 사실상 그들이 왕위 찬탈과정에서 벌어진 훈민정음 언해본의 실제 사건은 수양이 계룡산에 올라가 사찰에 모인 백팔장 모임인사들의 만나러 가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되고 박씨는 죽음을 알고 미리 써 보낸 서찰을 그들만의 비밀 항아리에 넣어 둠으로써 독자들에게 사건의 오해와 죽은 자신의 아들 아지에 대한 원통함을 풀어달란 부탁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가 사실상 알고 있는 훈민정음 창간 당시의 일과 상황이 세종부터 문종의 독살제기 배경, 그리고 안평대군의 꿈과 안견이 그린 그림, 신숙주와 그 당시의 한명회가 처한 상황, 정인지가 행한 행동, 성균관 학자들이 생각하는 조선의 나아갈 방향과 달리 행해지고 있는 세태에 대한 비판적인 사찰과 함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서 궐안 과 밖에서 행해졌던 사건들을 모자이크 조각조각을 떼어 놨다가 다시 붙여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낸 이야기다.  

유학을 나라의 기초 근간으로 내세웠던 조선 왕조 초기의 정책이 월인석보란 책에서 훈민정음 언해본이 첨부된 사실에 착안해 작가의 상상으로 만든 사건의 구도는 각기 처한 지위와 목적에 따라서 하나의 종이에 적힌 글이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의 기구한  역사적 사실과 함께 허구의 인물들이 그 속에 녹아들어서 사건의 현장으로 뛰어 들고 있다. 환관의 남성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목적에 숫나방이를 몰래 가져간 일이나, 잠녀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틋함과 곁들여져  당시의 궐내 생활상과  중전이 처한 교묘한 암투의 전략, 딸의 고언으로 인해서 궐 내 밖으로 쫓아 족보에도 오르지 못했던 딸에 대한 어미의 그리움등이 적적히 배치되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작가가 그려본 왕위 찬탈의 목적하에 아마도 훈민정음 언해본이 이런 사정으로 월인석보에 붙여져서 쓰여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발상 자체도 재미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의 108자가 의미하는 것을 풀기 위해서 다방면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한 위치에서 해석해 낸 굴귀도 다양하게 써져 있어 읽는 재미를 더 하게 해 준다.  

다만 편지로만 오가고 있는 글 구성상 인물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책을 끝마칠 때 다시 프롤로그를 읽어야 제대로 된 모자이크 퍼즐 맞추기가 좀 더 머리에 각인이 된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작가가 큰 조각을 염두에 두고 그 안에 작은조각을 넣다 보니 많은 인물들이 필요은 했겠지만서도.... 

하나의 편지를 매개로 역사적 산물인 훈민정음에 대해 소재를 쓴 새로운 감각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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