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영혼의 편지 -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대인 여의사 릴리가 남긴 삶의 기록
마르틴 되리 지음, 조경수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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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의 자녀들은 아들 게르하르트, 딸 일제, 요한나, 에파만, 도테아가 있다. 그녀는1944년 3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기전 카셀 근교에 있는브라이테나우 노동 교정 수용소 밖으로 편지를 빼내었고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와 그녀들의 자녀들간의 오고 간 편지가 아들 게르하르트가 다른 형제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보관하고 있던 편지 250통, 나머지 자매들이 그 사실을 알고 서로가 알고 있었거나 모르는 사이 보낸 편지를 추려서 찾은 편지 300통이 합쳐져서 이 세상에 우리에게로 왔다.

 

1900년 아버지 요제프 슐리히터러와 어머니 파울라 사이에서 태어난 릴리는 재학에서 의대를 전공했고, 그 와중에 개신교 신자이지만 카톨릭에 심취한 독일 청년 에른스트얀과  만남을 갖게 된다. 이 시기에 두 사람간의 오고 간 편지로 봐서는 릴리는 아주 적극적이었고 활달한 성격을 가진 아가씨라는 인상을 받는다. 첫 사랑과의 실패로 우울해 하던 얀의 감정을 때론 엄마처럼, 때론 누이같고 사랑스런 여인의 심성으로 보듬어 안아준다. 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둘은 결혼을 하게 되고 연이어 자녀가 태어나면서 두 부부가 공동으로 임멘하우젠에서 병원을 차리게 되고 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아돌프 히틀러가 제국총리로 임명되는 시기를 거쳐서 점차 국민전선과 좌파로 나라의 정당이 갈리는 시기가 있던 때였다. 나치의 집권으로 인해서 반유대주의가  확산이 되고 남편은 유대인과 결혼했다는 사실 하나로 병원 보이콧을 당하게 된다. 이 와중에 릴리의 동생 엘자는 영국으로 이주, 약리학을 공부하게 된다. 아이들의 진학과 해외송금도 막히는 사태가 오고 엘자의 노력으로 영국 이주가 가능해 졌지만 생업의 보장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를 하게 된다. 이후 유대인들은 연극 . 음악회 관람을 금지 당하게 되고 남편 얀은 이 와중에 대리의사 자격으로 병원을 돌봐주던 리타와 불륜관계를 맺게 되고 리타가 임신을 하게 되자 나라의 암묵적인 강압에 의해서 릴리와 이혼을 결정하고 리타와 재혼한다.

 

한편 릴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카셀로 이주하게 되고  아들 게르하르트는 방공대로 징집이 되어 나가게 되고 릴리는 게쉬타포에 체포되어 브라이테나우 노동교정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이후 아이들은 아빠와 살길 원하지만 거절 당하고 아이들끼리만 살게 된다.

여기서 부터  삶을 놓치게 될 때까지 기나긴 편지의 서신들이 오고 간다. 초기의 편지엔 금방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던 내용들이 들어있어서 음식 수급이 부족함에 따른 책, 푸딩가루, 핀셋. 거울 등의 실제 생활에 필요한 품목 요청을 하는 편지 구절이 나온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엄마 노릇을 하게 된 첫 딸 일제의 고통스런 마음과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보는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는 편지의 내용도 나온다.  아들 또한 엄마의 바람대로 독서 하기를 노력하게 됬으며, 끝 마무리엔 시 구절을 적어 놓아서 한결 엄마의 마음을 놓이게 만들어 준다.

연합군의 카셀 대 공습 이후로 임멘하우젠으로 들어가서 생활하게 된 아이들이 리타와 겪는 심적 고통과 나치즘이 정한 인종계급 서열에 따른 피해를 받게 됨으로써 진학에 애로를 겪게 된다.

릴리와 주고 받은 편지의 내용중엔  집으로 곧 돌아가려면 교통 여비가 없으니 돈을 보내 달라는 것과 구두굽 갈 돈과 기차역에 마중 나올 수 있는 희망의 말을 주고 받는다. 이에 일제는 돈을 보내게 되고 얼마 후 계획된 대로 엄마를 석달 넘어서 만나게 된다.

''' 나의 단정했던 엄마가 얼마나 달라 보였던지, 엄마는 거친 옷감으로 도니 자루 같은 옷을 입고 맨발에 나막신을 신고 계셨고, 어금니가 하나 없었다. "시간은 십 분입니다." 라고 간수가 명령하고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 일제가 엄마를 만나고 처음 본 모습을 적은 구절

 

엄마가 아빠에게 석방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부탁한단 말에 일제가 부탁을 했지만 얀은 내켜하지 않았고 이후의 편지에서도 다시 한 번 부탁을 했지만 성사되지를 못했다. 1994년 3. 17 일 카셀의 게슈타포가 그녀를 아우슈비츠에 넘기고  가는 당시에도 릴리는 편지에 머리핀, 바디 파우더, 치약 같은 생필품을 부탁한다. 편지에는 얀에게 다시 부탁함을, 아이들 고모인 로레에겐 아이들 돌봄에 있어서의 서운함을 표시한다. 이후 어떠한 일로 사망하게 되었는지 조차 모른 채 사망 통보만 받고 릴리는 그렇게 아이들 곁을 떠난다.

 

 

몇 년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봤다. 말로만 듣던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현장을 둘러본 그 때의 기억이 이 글을 읽어 나가면서 새삼 또 다시 떠오르는 것은 인간의 잠재적인 기억속에 내재된 나쁜 기억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단 사실을 또 한 번 이 기회에 일깨워준다. 당시  둘러본 수용소의 건물은 유대인들의 수용 공간이 부족해 지자 건물 위로 더 지어서 층을 추가한 흔적이 여지없이 보여주었고, 유대인들의 피골 상접한 모습이며, 그들의 머리카락을 섬유처럼 짜서 옷감을  만든 사진은 보는 내내 인간 학살에 대한 극한 광기를 보는 것 같아서 몸서리 쳐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기 릴리 또한 평범한 의사이자 의사의 아내로 예술을 즐기며 자녀들과 사랑하는 남편과 가정을 일구고 사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데 유독 유대인이란 사실 하나로 가정이 파괴되고 심지어 아이들 마저도 엄마와 떨어져 살아가야 하는 생이별은 히틀러의 광적인 아리안 인종에 집착한 광기에 의해서 시작되었단 사실에 말로 표현 못할  역사의 한 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끌려간 순간까지도 여자로서 추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릴리의 생필품 요구 품목을 보고 있노라면 활달했던 그녀의 인생에 어느 누가 무슨 권리로 한 인간의 삶을 이렇게 망쳐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진다. 비록 편지일 망정 엄마 곁에서 자신의 생활상, 학교 선생님 얘기, 학과목 얘기,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감에서 오는  일제의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성장엔 측은함이 여지없이 우러나온다. 의붓엄마인 리타와의 화합될 수 없는 얘기는 엄마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 아빠에 대한 원망이 섞여 있는 것도 같아서 한 켠의 가슴에 울컥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하지만 릴리는 그 와중에도 얀에 대한 원망을 적은 편지 내용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이혼 후에도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빠에 대한 원망만은  갖지 않도록 애쓴 마음도 보이고 자신 또한 법률적으로, 그리고 제 2의 여인이 안방을 차지하고  당분간 같이 살았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원망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랑의 감정이 남아있는 듯 해보였다. 얀이 노력을 했었든 하지 않았었든 초기의 그가 보인 행동은 한 때나마 부부로서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행동을 보였단 점에서 읽는 내내 릴리가 당한 처지가 더욱 안타까웠다.

 

그간 홀로코스트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가 실존 인물들에 의해서 책으로, 영화로 많이 나왔지만 이 책은 그녀의 자녀들이 엄마가 죽은 후 수 십년이 흐른 후에 편지의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유대인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그 후에 겪은 그네들이 살아온 인생의 후기를 보는 것이 또 다른 의미를 주고 있다.  릴리의 죽음 후 엘자 이모가 있는 영국으로 이주하게 되고 다시 독일로 돌아온 형제도 있고 정계에 진출한 아들도 있고, 그의 자손들 또한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종교를 갖고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편지로 역은 이  책은 우리에게 전쟁이 남겨준 상처와 그 치유과정에서 벌어진 그 후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는 현재 진행형 모습을 보여줬단 점에서 우리의 가슴을 잠시 나마 위로를 받게 해 준다. 유대인 스스로의 역사 인식 차원에서 엄마의 이름을 기억하고 노력하는 일환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전쟁은 끝났지만 그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은 잊혀졌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우리들 가슴에 소수의 사란들에 시행된   전쟁이 주는 의미와 그 피해 의식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겪지는 못했지만 이런 글을 통해서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겠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잔잔하면서도 슬픔과 희망이 교차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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