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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마르크 함싱크 지음, 이수영 옮김 / 문이당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충.신 이라?
그 광범위 하면서도 좁은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춘 말이 또 이 단어말고 달리 다른 말이 있을까?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간신의 반대말로, 배신의 반대의 뚯으로도 두루 역으로 갖출 수 있는 이 단어를 가지고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외국인의 손으로 쓰여졌다곤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아주 재밌는 소설 한 편을 봤다. 우선 한국인으로서 외국, 그것도 북유럽쪽에 가까운 벨기에 입양인이 한국의 조선 왕조 500년 역사중에서도 최장수 재위 기록을 지니고 태평성대를 누린 영조시대을 다루고 있다. 여기까진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간 TV, 다른 것을 이용해서라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우리의 허를 찔렀다. 그것도 정통으로... 특히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인 조선시대 관리들은 자신의 사견이 들어가지 않고 보고, 듣고, 모양새나 몸짓, 손짓, 복장,어는 하나 허투루 다룰 수 없는 중한 직책이기에 오늘날 우리가 500년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유독 이 시대의 삼정승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점이 이상해서 조사하고 그런던 차에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계기를 밝히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자신의 직업상 의뢰인이 의뢰를 부탁해온 자료가 얼마만의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시작됬다고 했지만, 역사를 그간 많이 접해 왔음에도 삼정승의 죽음조차도 몰랐던 나에겐 충격이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역사의 진실과 허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소설을 쓰면서, 아니면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들로서는 어느 정도 책임감이 들거란 생각이 든다. 이 작가는 자신의 문외한 격인 정작 한국이면서 한국의 역사를 모르던 상황에서 아주 절묘하게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허구의 세계를 맘껏 풀어서 역사속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삼정승 중 영의정을 지낸 영충중부사 이천보와 그의 양아들 이문원 , 그의 동료인 서영우, 조일천을 중심으로 좌의정 이후, 우의정 민백상 , 형조판서 윤급, 내시 박필수, 거상 황종국, 화환옹주, 기생 매향이... 가상의 인물과 실존 인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글을 이끌어 가고 있는 가운데 가장 핵심의 태풍인 세도 왕자의 병세를 둘러싸고 노론, 소론, 남인들의 각 세력들이 등장한다. 여기엔 자신의 당 이익을 위해서 ,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온갖 술수가 난무하고 그 가운데, 영조의 아킬레스건인 무수리 출신의 어미로 부터 태어나서 노론의 등을 업고 왕위에오른 정치적 상황이 더욱 어지럽게 조정을 흔든다. 항상 정통성 왕위에 대해 떳떳하지 못함을 느꼈던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했다 하더라도 여기 저기의 요소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 가운데 사도세자의 기행과 왕도 행실에 어긋난 행동으로 말미암아 점차 아버지로 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점을 이용해서 화환의 음모는 더욱 세자의 앞날을 어둡게 만든 원인이 된다. 서양에서 들어왔다는 양매창이 결국은 사도세자를 괴롭히는 병으로 그려지고, 여기엔 화환옹주의 절묘한 계략이 맞아떨어진다. 양반이면서도 침술에 능했던 서영우의 달변과 의술은 읽는 내내 흥미를 이끈다. 사도 세자를 고치기 위한 계획이 무의미로 돌아가고 자신의 자식과 가문을 지키고 왕명을 지키자니 사도 세자의 생명이 위험할 것이란 자명한 일에 삼 정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로 역사의 한 장은 덮여지고 먼 훗날 뒤늦게 영조가 이천보에게 불천위를 내리면서 이 사건은 막을 내린다. 다만 뒷날의 정조가 등극함으로서 이문원과 그의 친구인 조일천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생존자로서 남아있고 정치를 하는데에 있어서 비상의 날개를 단다는 것으로 마침의 점을 찍는다.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역사를 다룬 책 치고는 상상의 무대가 넓고 특히 작가가 표현한 서소문의 서민들의 집을 묘사한 장면이 눈에 뛴다. 성벽을 둘러싼 집의 구조라든가, 사람들의 시체가 죽어나간 곳이라든가, 서민들의 삶의 서술이 역사를 이곳에서 배운 사람이란 착각이 들게 한다. 삼정승의 죽음을 모티브로 상상으로 아마 이런 상황 설정하에 목숨을 버릴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글의 구성엔 나름대로의 논리가 정연하다. 특히 자신이 전공했던 아시아의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군데 군데 중국의 고사라든가 한문의 글 풀이라든가 한약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기생들의 급을 다룬 구절엔 이런 소소한 조사까지 한 치밀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누구나 자신이 상상으로 꿈 꿀 수는 있지만, 이것을 실제 타인에게 나타내보이기 까지 그 시간과 호응을 얻기란 책을 읽으면서도 심히 존경하게 되는데 이 작가의 주도면밀한 그 시대의 정치상황이라든가 이 상황속에서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우리에게 온 것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하나의 복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영조시대로 돌아가서 과연 역사가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서 사도세자의 억울함이 당쟁에 얽혀서 이용됬음이 밝혀지고 왕위에 오르게 됬다면, 그 다음 조선왕조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정조조차도 가슴에 묻은 아버지의 상처를 좀 더 보듬어 줄 수있을 것이고 젊은 나이에 그렇게 일찍 죽진 않았을 가능성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 앞 부분에 작가 자신이 한국인이 될 뻔 했다는 이야기와 한국이란 나라가 자신에겐 아시아의 한 국가에 하나였다는 글엔 아까운 인재 한 명이 국외로 빠져나간 느낌과 더불어서 이제는 좀 더 자신을 낳아 준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음 하는 바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