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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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해서 실수를 하더라도 어느 한 명의 미모가 특출나게 뛰어나다면, 같이 일을 했던 평범한 소유의 일한 동료보다는 용서의 폭이 더 넓어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것을 인지상정이라고까지 표현해야 할 필요은 없지만, 이 소설은 아주 평범함에서 많이 벗어난 어느 여자와 그를 둘러싼 두 남자의 얘기가 그려지고 있다. 처음에 만나는 장면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끝날 때 극 중의 화자처럼 다시 처음의 상황을 들춰보게 된다. 영화배우인 아버지로부터 엄마와 함께 버림을 받은 나와, 재벌가의 뒷 자식으로서 살아가야했던 요한, 정말이지 너무나 못생겨서 주위의 친구하나 없이 오로지 자신의 성실함만을  무기로 삼아서 살아가는 여자를 중심으로 십대 후반을 넘어서 20대 첫 초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추적 끝에 다시 그 여인을 만나기까지의 얘기가 회상신으로 적어내려간다. 작가는 우리들의 그릇된 외모 지상주의를 비난하는 일관된 정서로 이끌고 있다. 세상의 반은 여자,  그 반은 남자라는 지구에서 , 그 지구의 나라 중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정한 실력있는 사람이 그 능력을 인정받고 진실된 사회가 되려면 아직도 여러가지 고쳐야 할 점이 많은 것을 은유비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유달리 그 여인에게 끌리게 된 주인공인 나는 어쩌면, 자신이 말했듯이 나중의 만난 예쁜  사원을 먼저 만났더라면 자신도 그에게 먼저 끌려서 사귀었을지도 모른단 고백엔,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주어진 환경에서 진흙에 묻힌 보석을 찾아내어 가꾸기가 어렵단걸 말해준다. 내내 자라오면서 엄마로부터 자라면 괜찮아질거란 희망하에 열심히 공부는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단걸 깨달아가는 여 주인공의 마음 표현이 그렇게 쓰리고 아플 수가 없었다. 너무 못생겼잖아요...란 말 구절엔 아픔보단 어떤 블랙 코메디를 보는 둣 하여 웃음이 나온다. 나완 다른 환경에 있었지만 어쩌면 자신의 컴플렉스인 아버지로부터의 버림받음과 그녀의 자신감 축소에서 오는 위축이 동병상련의 느낌을 갖게하지 않았나 싶다. 순수했던  20대의 사랑 앞에서 진실로 좋아한단 말 한 마디 표현 못하고 사고로 병상에 눕고 다시 재기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이 내내 조마함을 느끼게 해준다. 마지막의 재회 장면에선 자신의 삶을 내 나라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타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그나마 행복의 순간이라면, 자신을 찾아 만나러온 그 사람에 대한 사랑확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 반전 처럼 작가의 다른 서비스인 그 후의 이야기 를 읽으면서 내내 각기 다른 각도에서 본 세 사람을 읽을 수있어서 더욱 좋았다. 하나의 개별적인 독립형태로 끝내고 싶은 독자라면 그나름대로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이야기엔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어 좋고, 연결편으로 생각이 되는 독자라면, 요한이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맘, 그녀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맘이 구구절절 와 닿아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쉽다. 내 생각으론 개별적으로 남겨두고 싶다. 너무나 가슴깊이 상처받고 살아온 그 여인에게 자신을 찾아 온 진실된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세상 외모 제일주의로 얼룩지고 진실된 사랑조차도 외면 당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받을 수 있는 따뜻한 위로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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