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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합본 특별판) ㅣ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콜레라로 엄마를 잃고 수집가용 희귀본과 헌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다니엘, 거의 11살이 되던 어느 날 아버지의 손을 잡고 향한 곳은 어떤 도서관이다.
이름하야 '잊힌 책들의 묘지'라 불린 곳으로 세상의 모든 책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보면 무방한 곳, 그곳에서 딱 한 권만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선택한 책이 '바람의 그림자'다.
저자는 훌리안 카라스로 단숨에 읽은 후 저자의 글에 빠진 다니엘은 그의 향방과 타 책들을 찾아보지만 그는 이미 죽은 자로 타 저자권들도 모두 구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저자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알아보기 시작한 다니엘은 아버지 소개로 중고 서적상 바르셀로를 통해 책을 팔 것을 권유받지만 거절, 그의 조카인 클라라가 저자의 책을 읽은 사람이란 사실과 함께 자신의 첫사랑을 경험한다.
1945년 스페인 내전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 속 내용은 한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추적하는 과정과 성장기를 중남미 문학의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 환상과 공포,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한순간에 빠져들게 한다.

거리에서 만난 페르민을 직원으로 채용하면서 둘의 콤비로 훌리안의 생애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다니엘이 첫사랑에 대한 실망을 딛고 친구 누나인 베아와의 사랑을 하게 되는 같은 공통을 평행의 세계처럼 그린 점을 통해 엇갈린 듯 같은 형태의 사랑구현으로 그려낸 것도 그렇고 공포의 정치 시대에 시류 편승을 통해 신분상승을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인간말종 푸메로와의 대립은 작품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책에 갇혀 있다는 미로 같은 '잊힌 책들의 묘지' 묘사에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사랑의 도피행위를 도운 친구의 눈물 나는 우정, 사랑했기에 서로가 행복한 길을 원했지만 그 사랑의 비극은 또 다른 이의 사랑을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 한 이의 공허함, 그런 것을 알면서도 곁을 떠날 수 없었던 이의 아픈 짝사랑, 그 짝사랑을 알면서도 함께 지내길 원했던 이의 서로 연결된 점들은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빛이 아픔과 연민으로 다가왔다.
창작의 힘을 통해 이야기를 구현해 낸 저자의 단 한 권 밖에 남지 않은 작품의 비밀, 그 작품마저 거두려 한 이의 존재는 누구이며 왜 그 같은 일을 벌이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점들이 모두 풀리는 진행들은 모두가 시대의 아픔을 지닌 이들이자 한 소년의 성장이야기로 뭉클함을 전해준다.
- 언젠가 훌리안은 내게 이야기란 작가가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라고 말했던 적이 있지.
-누군가 우리를 기억하는 한 우리는 계속 살아있는 거라는.
작품 속 내용이 마치 교향곡처럼 다가왔는데 그 교향곡 속에서 펼쳐지는 모든 방향의 흐름들이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추리형식을 취해가며 따라가는 독자들의 마음을 홀려놓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본 특별판으로도 거의 800페이지에 다가서는 두께인 작품이지만 갈수록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 손을 놓을 수없었다.
저자는 훌리건과 다니엘이란 두 사람의 인생을 같은 듯 다르게 보이게 함으로써 이루지 못한 사랑과 그 사랑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보인 이의 교차적인 그림을 악인을 등장시켜 두 사람이 같은 길을 향해 그렸다 것, 문장을 읽으면서 한순간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매끈한 글들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눈길이 가게 만든 작품으로 추후 더 이상 저자의 신작을 읽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