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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우리 사람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국내 초역으로 출간된 20세기 영국의 대표적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의 [아바나의 우리 사람]-
쿠바의 아바나를 배경으로 세계패권국들의 정보접수와 그 안에서 스파이 활동을 유머를 통해 정보기관의 허점을 냉소적으로 찌른 저자의 소설이다.
아바나에서 진공청소기 판매를 하면서 딸 밀리를 키우고 있는 이혼남 제임스 워몰드, 그와 오랜 친구사이인 독일인 하셀바허와 즐기는 술 한잔의 여유가 그들의 일상 모습이다.
어느 날 호손이란 영국남자가 워몰드에게 접근하고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바나의 우리 사람' 스파이로서 활동할 것을 요구받게 되는데 문제는 그가 스파이 할 역량이 안된다고 해도 요지부동, 결국 활동비를 받는 조건에 부합한 활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진공청소기만 팔고 있던 그가 무슨 근거로 정보를 본국에 넘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거짓 정보를 생각해 내며 본국에 그럴듯하게 넘기기 시작한다.
그저 딸 밀리의 차후 학비를 벌어볼 요량으로 시작한 그의 활동은 거짓으로 자신 밑에 수하 정보원의 거짓 신원을 비롯해 활동비를 요리조리 받아가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리면서 그는 곤란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이 과정을 어떻게 모면하게 될까?
배경이 쿠바 혁명이 일어나기 전으로 아바나의 거리 모습과 함께 엉뚱하게 시작한 일이 크게 번지면서 점차 커지는 실제 사건처럼 보이는 과정이 그야말로 희극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정보기근에 시달리는 영국 본부의 요구를 충족시킨다고 생각한 것이 청소기 분해를 하고 도면을 그린 것을 넘기며 오리엔테 산맥의 군사기지의 무기처럼 보이는 설정부터 웃음을 연발하지만 뭣보다 이를 실제 무기제보의 기술도면으로 여기는 첩보부 고위자들의 시선이다.
"정교함, 간결함, 악마 같은 상상력이 결합된 물건"(진공청소기의 모습이 이렇게도 보일수가 있군.^^)이란 판정 하에 정작 과학자들은 이런 형태는 무기가 아닐 수 있다고 하는데도 심각하게 우기는 그들의 생각들, 독자들은 이런 허당이 넘치는 정보부가 있다면 과연 믿고 나라를 맡길 수 있을까란 생각까지 들게 한다.

무엇보다 워몰드가 자신의 생명위협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과정과 허구의 인물로 만든 정보원의 실체가 진짜 실명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고 그가 사고를 당하는 과정, 이외에도 허구의 정보원들이 하나둘씩 피해를 입거나 고발처럼 당하는 과정이 점차 요주의 인물로 워몰드가 지목되는 과정은 연결고리의 연관성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게 하는 진행이 흥미로웠다.
쿠바의 붉은 독수리라 불린 고문이 특기인 캡틴 세구라와의 체크게임도 인상 깊었지만 마지막까지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에 더욱 신중함을 기울여 차후를 대비한 정보부란 기관의 가관도 이런 가관이 아닌 처세술은 저자의 날 선 비꼬기와 비판이 담겨있어 스릴러를 표방한 심도 깊은 생각할 부분을 던진다.
비정한 세계의 경쟁에서 치열한 패권쟁취를 이루기 위해 첩보전이 소리 없이 이뤄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눈에 보이진 않지만 물밑에서 그들이 다루는 정보의 세계를 보통의 우리들이 가늠할 수 있을까?
워몰드 같은 인물이 다행스럽게도 그런 위험을 벗어나는 과정이 웃픈 현실의 고발을 생각하며 읽는 부분에서 정보부란 이름으로 나라의 기밀사항을 다루는 기관에 몸담고 있는 자들의 줏대 없는 생각관철과 이를 무마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비어트리스가 던지는 말들이 와닿는다.
- 세상엔 누군가의 조국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어요. 안 그래요? 당신들은 당신들의 국제연맹이며 당신들의 대서양 조약이며,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국제연합기구...(중략)
하지만 대부분에겐 그런 것들이 U.S.A, 나 U.S.S.R. 같은 다른 약자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요. 그리고 당신들이 평화와 정의와 자유를 우선한다는 말을 우리는 더는 믿지 않아요. 어떤 자유요? 당신은 그냥 출세를 원하는 거잖아요.
저는 1940년에 가족을 보살피던 프랑스 장교들이 이해된다고 말했죠. 어쨌든 그 사람들은 출세를 최우선으로 두지 않았다고 했어요. 조국이라는 건 의회 시스템보다 가족을 의미한다고 했죠. - P 357~358
기막힌 운 좋은 인생을 가진 워몰드의 인생역전(?)과 구사일생처럼 살아남은 과정을 통해 저자가 실제 몸담았던 정보부 세계의 한 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