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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유영미 옮김 / 한길사 / 2024년 11월
평점 :
1986년 7월 11일, 비가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
19살의 카타리나, 무려 34살 위인 유부남 한스와의 미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2024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카이로스'-
한눈에 서로의 마음을 빼앗긴 그들이 겪는 사랑의 진행을 풀어내는 작품 속 배경은 동독이다.
역사적으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몇 해전을 시작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 라디오 방송국 프리랜서 작가인 한스가 카타리나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들려주는 예술에 관한 이야기, 사회체제 속에서 일반인들이 어떤 삶의 모습들을 하며 살아가는지, 여기에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결혼생활과는 별개로 그녀를 향한 사랑은 광적인 모습이자 열정이 가득 찬,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그녀가 원한다면 물러날 수 있다는 한시적이고도 유보적인 행동과 말을 한다.
그러나 어린 카타리나에겐 그가 곧 그녀이고 그녀가 곧 그란 사실을 깊이 인정하고 있기에 타인의 눈에 비친 염려와 상처를 받은 것이란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나가는 진행이 마치 활화산처럼 그려진다.
읽으면서 사랑의 유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스는 이미 카타리나가 살아온 배가 넘은 세월을 겪은 사람으로서 히틀러와 소련의 체제, 여기에 동독으로 넘어오면서 그가 가진 이상향 내지는 정권의 체제 속에 저명한 예술인들과의 관계를 이어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카타리나에게 때론 인생의 선배로서 들려주는 내용들이나 문화와 예술, 사회 전반에 대해 다룬 부분들은 폭넓게 그려진다.
솔직히 저자의 문장흐름들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주제 사마라구의 문장처럼 대사나 고백 부분이 담긴 문장들조차도 따옴표가 없이 이어지며 정신을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메타포가 사방에 묻어 있는 형태로 이어지기에 조금은 다른 문학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처럼 같은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인들이 겪은 혼란스러움, 통일의 기반으로 전혀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절차처럼 보인 직장해고와 국영이란 지원하에 연구하던 단체의 소멸들, 통화의 충격들은 카타리나와 한스의 사랑처럼 서서히 발전하던 것들이 점차 불같은 진행으로 소멸의 단계로 이어지듯이 두 모습의 교차점들을 읽으면서 비교해 보는 것도 이색적인 장치란 생각이 들었다.
카이로스는 기회와 행운의 신이다.
카타리나가 그를 만나는 순간 자체가 행운이었을까를 생각한 부분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그들의 격정적인 만남과 가학적인 사랑 행위들, 이어 두 상자는 그 속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통해 기억하며 들려주는 소재로 작용하면서 두 번째 상자에 이르면 한스가 카타리나를 집요하게 몰고 가는 과정이 너무도 힘든 부분으로 읽혔다.
마치 사상검증을 통한 시험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한스란 남자의 질투와 분노,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모습들은 카타리나가 이를 수긍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둘은 점차 이별을 향해간다는 점은 그녀 안에 점차 한스를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적 성장을 겪는 성장소설로서도 볼 수 있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막 사이 중간에 끼여있음으로 해서 둘은 진실 로 사랑을 했지만 믿지 못했고, 사랑의 실존에 대해 이해를 했으며 더군다나 동독의 해체와 더불어 이들의 사랑도 막을 내렸음을 많은 실존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의 결합으로 소설이란 장르를 통해 그려냈다.
현대사를 통해 독일 통일 과정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역사 속에서 실제 겪은 경험담을 풀어낸 이야기는 확실히 체감적으로 와닿는 부분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저자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역사 속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 사랑과 학업, 망명, 반혁명, 통일이란 여정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희망을 담고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희망으로 남은 자들을 모두 그려냄으로써 현대사 독일의 또 다른 면들을 엿볼 수 있게 한 작품이라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