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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마지막 한숨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2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평점 :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새롭게 집을 바꾸면서 개정판으로 만나게 된 작품, 절판 당시 소장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터라 이번 출간이 반가웠다.
이 작품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선 재미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가 풀어내는 이 장대한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대하는 동안 그 늪에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은 나 자신의 감상으로 표현하기에도 벅참을 느낀다.
주인공 무어가 들려주는 자신의 가문 이야기를 통해 인도라는 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를 들여다봄과 동시에 인도라는 나라에서 갖는 다양한 종교와 인종, 그 안에서 독립과 새로운 건설의 기치를 둘러싼 분열과 투쟁, 폭력과 복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예술이란 작품을 통해 그려낸 내용들을 들려준다.
바스코 다가마 후예라고 생각하는 다가마 조고이비의 가계도는 코친 지역의 명가문으로 향신료 장사를 통해 부를 이룩한다.
두 아들 중 동생인 카몽시의 딸인 아우로라 다가마가 21살의 나이 차를 넘어 창고지기 유대인인 아브라함 조고이비에 반해 부부의 연을 맺고 세 딸과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모라이시 조고이비, 일명 무어다.
4개월 만에 태어난 조막손을 지닌 아이, 두 배의 속도 성장(10살이면 신체는 20살)은 마음은 어리나 겉 성장은 청년의 모습을 보이니 그가 자라온 환경은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홈스쿨로 학업을 이어가면서 화가인 엄마의 모델 노릇을 하며 자란다.
당사자 앞에서 하고픈 말은 거침없이 쏟아내는 아우로라의 존재는 뒤에서 묵묵히 가업을 이어 일약 기업으로 발전시킨 아버지의 도움으로 국민화가로서 성장하지만 그녀나 아버지나 뒤에서 보인 행동들은 그다지 옳은 부부의 행보는 아닌 듯하게 보인다.
엄마가 그린 무어 3부작의 그림을 통해 이 작품에서 보인 인도의 기구한 현대사를 저자는 각 시대별 조고이비 가문의 사람들의 행보를 통해 그리며 무어란 존재를 통해 인도의 급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비유한다.
특히 저자가 주된 관점으로 그리는 내용 중에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결혼으로 탄생한 무어를 대표적으로 내세우면서 (엄마는 유대인과 결혼한 기독교인, 무어, 나는 천주교인 나부랭이, 뒤죽박죽, 똥개. 요컨대 나는 - 요즘은 뭐라고 하더라?-파편화됐다.) 힌두교, 이슬람교, 파르시, 가톡릭,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의 포용을 거부하는 모습들을 재조명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의 시대는 인도의 정치와 맞물리면서 파업과 정치투쟁,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뒤에 가려진 불법행위를 통한 사업확장, 여기에 한 여인에 대한 사랑에 빠져 무어 자신의 인생도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지는 일들까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의 전개가 무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빨려 들어간다.
-문명이란 우리가 스스로에게 본성을 감추려는 속임수일 뿐이다.
특히 카몽시가 아내 벨에게 희망적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순탄지 않은 인도의 역사를 희망적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노련한 술수에 걸려 살인과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하단 것을 알게 되는 무어의 인생은 가족의 유전이 지닌 폭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무어의 연작이 간직한 비밀인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통일성 때문에 파멸해 가는 파국의 여정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입에 터보 엔진을 장착한 듯이 쉼 없이 풀어내는 무어가 들려주는 이야기, 스페인 마지막 무슬림의 왕이었던 보압딜이 알람브라 궁전을 나서 내뱉었다는 한숨, 무어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내뱉는 한숨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 일말의 회한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어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그의 글을 통해 희망을 갖고자 하는 진행이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세헤라자드란 여성이 천일야화를 들려줬다면 무어는 남자가 들려주는 천일야화다.
사실과 환상이 공존하고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 가문사에 드리워진 인도의 현대사, 이질적인 종교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희망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긴 작품의 탄생은 저자 자신의 인생과 맞물려 생각나는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은 그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때로는 연민이 있으며 유머를 통해 잠시나마 쉼을 주는 여과장치의 노련함, 여기에 심오한 생각들을 적절히 엿볼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