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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작품 중에 가장 먼저 만나 본 소설이다.
꽤 오래전에 읽은 작품이라 이번에 책장 정리하면서 보니 책 속이 많이 낡았다.
세월 앞에선 장사 없다더니 종이도 마찬가지인듯...
영화로도 이미 유명세를 탄 만큼 왠만한 독자들이라면 알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작품중(소설만 볼 때) 최고라고 생각한다.
워낙 그의 방대한 지식의 보물창고를 엿보는 듯한 내용은 서양 중세, 특히 14세기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다룬 지적 모험을 담은 내용이라 처음 시도했을 때 놀랐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온다.
14세기 이탈리아의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채식장인 수도사 아델모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곳 수도원장이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국 출신 수도사 윌리엄을 초청하면서 진행된다.
윌리엄이 수사를 진행하면서도 딱 한군데만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장서관이다.
많은 책들을 보유하고 보존하고 있는 곳. 윌리엄이 이곳을 둘러싼 모종의 비밀을 감지하고 관찰하던 중 연이어 두번째로 베니티오 수도사가 죽는다.
요한 묵시록의 예언대로 연이은 수도사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던 윌리엄, 그 수도원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워낙 세세한 부가 설명부분이 많은 책이고 중세 시대 종교와 수도원에 대해 미리 알고 있던 독자라면 쉽게 적응 할 수도 있는 책이지만 이 작품에서 다루는 당시 시대의 복음서와 성경의 해석차이를 둘러싼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의 대립을 필두로 청렴하고 결백한 종교란 이미지를 간직한 카톨릭과 수도원이 가진 이미지에 감춰진 추악한 면들을 드러내 보인다.
수도원 내에서의 동성연애, 매춘, 살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지닌 감춰진 진실들은 물론이고 여기에 바람직한 종교의 한 모습인 청빈에 관한 논쟁, 당시 철학, 풍습과 문화, 건축에 이르는 내용 중간에 들어간 해박한 지식을 배경으로 한 내용들...
어느것 하나 허투로 넘겨가며 읽을 수없는 완벽성을 보인 진행방식은 윌리엄과 그의 수사를 돕는 아드소가 장서관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알아내는 추리스릴을 겸비하고 있으니, 진범에 대한 의문은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의 가장 대미를 장식하는 비밀이 드러나는 부분인 '웃음'에 대한 두 사람의 상반된 의견은 당시 시대를 관통하는 글을 알고 있는 자들의 권력욕과 이를 놓지 않으려는 부분에서 장서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느끼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만 현존하고 있는 것에 더해 희극론도 있다는 가정(?)하에 벌인 살인은 호르헤가 기독교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이를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발상이 어처구니 없지만 글을 읽고 쓰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음으로 해서 지식의 독점을 가진 자의 헛된 생각들로 이어진 점은 결국 인간의 과한 욕심이 불러운 화는 재앙으로 맺을 수 밖에 없다는 진실을 알게 해 준다.
인간만이 갖고있다는 웃고 우는 표정, 그 표정은 감정이란 것에 충실함으로써 드러나는 것인데 억지로 이에 연관된 책을 감춘다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신성한 종교란 이름으로 웃음 자체를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방법을 생각한다는 발상 자체가 한편의 코미디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게 한다.
결국은 수도원을 이루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 그 현장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다룬 지적 모험을 느껴보고싶다면 도전해봐도 좋을 책, 이 책을 완독한 후라면 이후의 에코 작품은 쉽게 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