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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평점 :
처음 만났던 것이 14년 전이다.
그때의 표지와는 다르지만 여전히 그 함축 내용을 의미하고 있는 표지, 당시 온다 리쿠란 작가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던 시절이라 그의 작품 중에서 손에 꼽는 작품이다.
읽었을 당시에는 책 속의 배경처럼 여름이었지만 이번엔 정반대의 계절인 겨울이라, 마치 전과 후의 느낌을 다시 비교해볼 수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 마을에 3대가 같은 생일을 갖고 있다는 집안에 생일잔치가 벌어지고 그날 17 명이 희생자가 독살사건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주요 용의자는 음료를 배달했던 사람이고 그는 자백을 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사건은 이렇게 용의자가 죽음으로써 종결되지만 당시 마을 사람들의 사건 진상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년이 흐른 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주인공이 당시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다시 예전의 사건을 더듬어보게 한다.
유일한 생존자였던 지금은 중년이 된 눈먼 소녀, 당시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 작가와 편집자, 담당 형사, 그리고 독을 마셨지만 목숨을 건진 가정부, 범인을 따랐던 동네 아이....
모두들 저마다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그들의 기억하고 있는 파편의 조각들을 독자들은 그들의 시점으로 따라가며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기억이란 것은 당시 그들이 보고 싶었고 보고자 했던 것만을 통해 머릿속에 잠재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모두 저마다 다른 인터뷰들의 내용, 특히 저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특정 범위 내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간파할 수 있게 만든 내용들이 아닌 모호하고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미스터리로써의 긴장감을 드높인 글들은 색다르게 받아들이게 한다.
한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의 현장에 관한 기억들이 모두 달랐고 같은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말하는 내용들 중 미묘한 차이를 갖고 있다는 의혹과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미스터리 특성상 전개 상황 속에서 밝혀지는 시원함이 없는,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의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말을 듣는 전개를 읽다 보면 누가 범인일 수도 있겠다는 정황만 있을 뿐 이마저도 시간이 흐른 뒤라 퍼즐 조각처럼 붙여서 완성된 그림조차도 불분명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색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그들이 겪은 그 사건이란 그들에겐 하나의 인생의 한 부분이었음을, 그래서 이 작품은 기존의 추리 미스터리의 결을 같이 하면서도 전혀 달리 받아들여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 읽었을 당시 푹푹 찌는 습도가 높았던 여름에 읽은 기억 속에 저자가 표현한 문학적인 계절의 표현이 너무도 잘 어울린단 생각을 하며 읽은 작품, 추운 계절에 만나 다시 읽은 지금, 그 표현 문장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새하얀 꽃이 잔뜩 피어 있었어요. 백일홍 꽃. 압도당할 것처럼 하얗더군요. 이렇게 꽃을 많이 피우는구나 싶을 정도로, 나무가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탐스럽게 피어 있었죠. 어쩐지 오싹했어요.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했어요. 실제로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때 느낀 그 한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군요. - p.267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