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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 조각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평점 :

한 폭의 그림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생각할 때면, 특히 인물들이 들어있는 작품들이라면 실제의 모델은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림이나 조각상들,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문외한이더라도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공감의 형성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여기 한 폭의 그림이 있다.

넓고도 황량한 벌판에 한 여인이 멀리 있는 집을 향해 바라보는 그림, 그런데 그 여인의 신체적인 모습 속에는 앙상한 팔, 한쪽 팔은 벌판의 마른풀을 움켜쥐는 듯하고 두 다리의 포즈는 쓰러질 듯하면서도 간신히 팔로 지탱되고 있는 한 장의 그림-
실제 이 그림은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가 남긴 걸작 <크리스티나의 세계>다.
이 그림 속에 실제 하는 인물 또한 화가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와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었던 크리스티나 올슨이란 여인으로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한 편의 아름다운 작품을 썼다.
어릴 때 열병으로 인해 알 수도 없는 병에 걸린 크리스티나,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다니면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학교 선생님으로 일할 수 있는 권유를 받지만 집안의 도움이 필요한 여건으로 자신의 꿈을 접는다.
집안의 일을 거들면서 사람들과의 왕래가 잦은 편이 아닌 그녀에겐 남동생들, 외할머니, 부모, 그 외에 친구 몇 명, 고양이와 개가 유일한 말 상대인 한적한 메인 주의 쿠싱은 그녀에게 있어 오로지 그 세상이 전부다.
어린 벳시가 우연히 방문객으로 만나면서 연을 이어오다 그녀의 남편인 화가 앤드루와 만나게 되고 그가 그녀의 집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어지는 시간들은 1896년에 시작하는 과거와 1939년부터 이어지는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그려진다.
병을 앓은 후 평생을 고통이란 것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티나, 그녀에게도 젊은 시절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헤어짐의 아픔이 있었으며 그러한 모든 것을 삭이며 집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들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나이가 들었어도 독립적인 삶을 추구했다.
특히 작가의 글로 나타난 웰턴 홀과의 사랑과 아픈 이별은 그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되어버린 과정이 참으로 쓸쓸하게 다가왔다.
여기엔 타인의 동정심처럼 느껴지는 시선들에 대한 강박관념이 들어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금욕주의와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는 것으로 대체되는 생활을 이어간다.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 또한 불편한 자신의 다리로 인해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점, 아버지로부터 배움을 받았던 영향이 크리스티나를 만나면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면서 더욱 우정을 이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내면에 깃든 고독과 외로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지 않았던 그녀를 이해하는 화가와의 만남, 이런 배경으로 크리스티나를 모델로 삼아 한 폭의 그림을 그린 이 작품은 한 여인의 인생이 이 작품 속에 온전히 녹아들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타인들이 보기엔 넓다 못해 황량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벌판과 낡은 집, 하늘에는 화창한 구름이 아닌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보이는 날씨가 표현된 작품은 그녀 자신에겐 오로지 이 모든 것들이 그녀만의 하나의 세상 전부임을 느끼게 해주는 여운이 남게 한다.
“이 집과 이 들판과 이 하늘은 세상의 작은 조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이곳이 세상의 전부다.”
그림을 통해 그녀와 화가의 우정을 상상과 자료 수집을 통해 한 편의 영상처럼 다가오게 만든 저자의 작품,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게 한 작품이다.
***** 출판사 도서 제공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