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레벤느망 L‘E‘ve‘nemebt˝ 사건이다. 아니 에르노의 개인적인 체험을 다루며 2021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영화는 보지 못 했다.
여기서 다루는 사건이란 임신중절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으로 꿈에 부풀어있는 평온한 일상을 뒤흔든 어떤 일. 1963년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안은 임신의 징후를 느끼고 불안에 떨면서 도움을 청할 곳을 찾아 헤맨다. 그 당시의 프랑스는 임신중절이 불법이었다.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가 되고 임신중지를 하면 범죄자가 될 위기. 의사는 법이 두려워 도와주려 하지 않고 같이 책임져야 할 남자는 너 알아서 하라며 나 몰라라 한다. 대바늘로 찔러보기도 하는 등 혼자 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때, 같은 경험이 있는 지인을 통해 임신중절 시술사를 소개받는다. 두 번의 시도 끝에 고통스럽게 태아를 분출하는 데까지 이르지만 결국 기숙사 내에 알려지고 빈민 병원으로 옮겨진다. 프랑스는 1975년 생후 12주 이내 임신 중지를 허용하는 이른 바 시몬 베유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아니 에르노는 사건이 있고 삼십년을 훌쩍 넘긴 1999년에 이 책을 썼다. 2006년에 씌어진 <세월>에도 얼핏 이 사건이 비친다. 안 나오는 생리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그 일을 겪은 후 바싹 말라가는 소녀.
(48)몽도르에서 보낸 일주일을 생각 할 때 마다, 암흑으로 뒤바뀐, 눈부시게 내리쬐던 1월의 태양과 눈(雪)을 떠올렸다. 원초적 기억은 우리에게 과거의 삶은 모두 어둠과 빛, 낮과 밤이라는 기본적 형태로 보게 하기 때문이리라
(69)그날 밤, 청소년기부터 간직해 온 내 육체를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생기 있고, 비밀스러운 성기가 달려있던 육체. 나는 전시되고, 사방으로 벌려진 성기와 바깥으로 열어서 긁어 낸 배를 갖고 있었다. 엄마의 몸과 다를 바 없는 몸이 되었다
그 일로 자기는 죽었다고 할 만큼 고통스럽고 쉽지 않은 경험이었던거다. 프랑스에서 피임약이 보편화 된 것도 이른 바, 68혁명 이후의 일이었다.
우리 나라는 2020년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난 이후 현재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형법상 낙태죄는 폐지되었다고 하더라도 대체 입법이 없어 아직 우왕좌왕 하는 중인거 같다. 미국은 1973년에 연방 법원에서 임신 중절을 합법화했는데 2015년 하원에서 2020년에는 상원에서 꾸준히 임신중절을 금지하고 처벌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다른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찾아봐도 여전히 임신 중지는 뜨거운 감자다.
어떤 입장에 서든 그게 쉬운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나는 임신 중지를 쉽게 하는 것이 반드시 여성의 권리 신장에 도움이 되는지 실은 잘 모르겠다. 가끔 뉴스에서 보는 것 처럼 나이 어린 처녀들이 가족도 모르게 꽁꽁 싸매고 있다가 혼자 출산하고 갓 낳은 아기를 버리는 경우들을 보면 저럴 바에야 임신을 중단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을 열어주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완경에 이르렀을 때 어떤 속박에서 벗어난 듯 홀기분했다.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피임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곧 이런저런 몸의 이상을 느끼면서 때로는 의료적인 도움도 받고 때로는 섭생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책도 읽었다. 해부학적으로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는 책들을 읽으면서 도판과 비교하기 위해 내 몸을 사진찍어 살펴보기도 했다.
50년을 넘게 짊어지고 살아 온 내 몸인데 내가 잘 몰랐더라.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든 여성들이 자기 몸을 구체적으로 잘 알아야 할 거 같다. 몸을 잘 써야한다는 것을 배우고 문제가 생겼을 때 음지로 숨어들지 않고 도덕적 잣대로 지탄받지 않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