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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세상과는 좀 멀리 떨어져 산골짜기 깊은 숲속에 자리한 고풍스런 서양식 저택같은 수차관,
그 모습은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동시에 먼가 괴이한 암흑의 기운이 이를 덮어내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휘감겨드는 듯 했다. 그리고 폭풍우가 무섭게 몰아치던 1년 전 이 저택에 벌어진
하나의 '사건'이 고개를 들고 현재와 과거의 시간과 기억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풀리지 않았던
참극의 미스터리를 천천히 파헤쳐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의의 사고로 얼굴과 다리를 크게 다치면서 저주스런 얼굴을 감추며 차가운 데스마스크 가면을
쓰고 휠체어를 타는 이 저택의 주인 후지누마 기이치, 가녀리고 아리따운 소녀지만 먼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새장속에 갇혀있는 듯한 기이치의 어린 아내 유리에, 이 저택의 주인보다 저택
자체를 지키고 관리하는 집사라는 위치에 자부심을 강하게 느끼는 남자 구라모토, 불세출의 화가
후지누마 잇세이의 제자이자 기이치의 친구인 마사키 신고, 그리고 1년에 한 번 수차관을 방문하는
4명의 방문객, 이 저택의 가정부까지 이 모두에게 찾아든 과거의 참극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사고인지 사건인지 쉽사리 알 수 없었던 탑에서 떨어진 가정부의 죽음, 잇세이 화백의 그림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감쪽같이 증발되면서 실종된 한 남자, 그리고 소각로에서 불타버린 한 구의
시체가 이들이 겪어야했던 비틀린 운명이었으니..그리고 거슬러 올라갔던 1년의 시간이 현재로
돌아오면서 이 사건에 감춰든 의혹과 진상을 밝히려는 한 남자가 저택으로 찾아오게 되고 불투명
했던 사건의 기억들이 하나씩 진실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수차관의 살인>은 앞 뒤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플롯을 선택한 거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탄한 흐름속에서 이중 삼중의 덫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현재와 과거의 곳곳에 복선과 실마리의
흔적, 자연스럽게 믿고 착각할 수 있는 미스터리 요소를 균형있게 배치하여 이야기에 서서히 빠져
드는 즐거움을 잘 이끌어내준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다양한 추리 작품을 접한 이라면 범인 지목
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작품 전체에 깔려진 환상과 기괴함이 섞여진 분위기를
마음껏 맛보면서 교묘한 트릭의 진상과 복선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면서 마지막 결말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이 더 매력적인 추리의 유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수차관에 초대된
이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후지누마 잇세이의 환상의 유작 '환영군상'이 이 무대가 끝나기 전까지 깊은
어둠과 침묵속에서 절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결코 세상 밖으로 공개되지
말아야 했던 이유, 이 그림이 품고있던 풍경은 분명 오싹하고 으시시한 불행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고 너무나도 절묘하게 이 수차관 저택에 얽힌 인간들의 운명을 응시하고 있는 듯 해 더 서늘하고
알싸한 결말의 여운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다. 이제 신본격 추리에 자신만의 하모니
를 입힐 줄 아는 아야츠지 유키토가 지어놓은 새로운 관 시리즈의 무대가 더욱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