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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하나의 완성된 글은 무기가 되고는 했다. 작품에서 떨어져나온 작가의 마음은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논리와 미의 정당성이 당신의 자리 위에서 웃음을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또한 수많은 논리와 미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당신은 그래서 돌아서서 당신의 명예를 지고 세상에 대한 힘을 찾아 떠날 테지만, 그래서 또다시 작품은 스스로 당신에게 분열을 요구하고 있을 테지만,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은 힘인가요? 진실인가요?
당신의 글이 만들어지는 시점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글이 당신에 의해 문장으로 나오기 전 당신의 펜 위에서 수없이 부서지는 의식 속의 불안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진실이 아니었노라, 우연한 조합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안다. 당신은 그렇지 않기 위해서 춤을 추고 있지만 당신은 논리와 미를 찾아가지만, 찾아오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단어는 저절로 당신을 찾아왔노라. 당신이 말에게 건넨 명령어는 오로지 연역인 것이다. 연역 속에서 당신의 모든 글은 우리의 모든 글은 그것을 위해서 조립되어지는 것이리라. 무엇을 써야 할지를 알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의 캔버스는 불안인 동시에 오락인 것이다. 무엇을 써야할지를 모르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의 캔버스는 또한 유희일 것이다.
힘이 깨지는 것은 그렇게 미완의 순간이다. 사르트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오히려 권위의 책이 아니라 이 것이다. 모든 권위를 지닌 문장과 개념의 창조될 시기의 그 불안하고도, 희열에 들떠있고도, 미숙한 작가의 의식을 말이다. 그것은 결국 아래의 문장을 향해 질문을 요구하고 있다.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뜨끔하다. 자신의 살이 없는 문장은 글이 아니듯 화려한 수식어구를 제쳐버리고 나에게 와서 묻고 있는 문장은 이 말이다. 사르트르가 나에게, 당신 글쟁이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왜 작가들이 세기를 거치면서도(17, 18, 19세기) 결국 부르조아에 머물고 싶었고, 노동자들의 편에서서 그들의 요구를 향해 함성을 지르지 못했나. 왜 작가들은 핍박받고 억압받고 소외되고 있는 노동자를 위한 글을 쓸 수 없이 귀족과 부르조아 계급을 위한 바람막이 역할을 수행하는 꼭두각시로 밖에 될 수 없었는가. 글이 개인의 유용한 출세의 수단일 때, 그것이 개인적인 명예를 위한 도구가 될 때. 이 문장은 결국 누가 들어야만 하는가. 정치성이란 바로 작가의 양심이라고 그는 요약하여 내게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