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
김명인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책에 실린 부분 중에,

   "비평이란 단순히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설과 평가가 아니라 비평가의 사회적 발언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 이런 비평가의 선택은 대게 자신과 세계관상의 친화력이 있는 작가와 작품으로 향해지는 게 보통이다.(p180)"

  라는 문장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본다. 내가 느낀 것은 양식장에 관한 의문이었다. 아래의 질문에  답을 해야하는 것은 양식장의 이름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으로 회귀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양식장 속에는 도다리도 살고, 광어, 우럭, 혹은 감성돔도 있다. 제각각 주인이 던져주는 사료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고기를 떠올리는 순간, 나는 분명히 이 문제가 다가오는 수능의 사회문제로 출제될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소 엉뚱하기 까지한 나의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한 문제는 아래와 같다.

    (2010 수능 사회)

    오늘 날의 작가가 양식되는 양어장의 이름은 무엇인가?

      1. 횟집

      2. 출판사의 상업 전략

      3. 비평가 입김

      4. 책(처세술)

      5. 경제사정

      6. 유력신문사

      7. 기자(나 데스크)의 바이오리듬 

      8.학연.지연. 인맥

      9. 우연한 투고   

      10. 점집(작가의 성취는 우연 혹은 운명에 부쳐)

    

       정답:  마음에 드는 숫자를 고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 다시 진정한 문학을 찾아서
성민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순수한 독자가 왜?  왜 하필 나는 '문지'의 벌판에 와서 다른 비평서적(실천문학)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시골출신의 책을 좋아하는 한량에게는, 2부에 나오는 그의 '상업용 멘트'를 그저 넋없이 바라보며 '음 그가(비평가가) 말하는 책이니 무조건 좋은 책인가 보네. 보라구. 온통 작가에 대한 칭찬과, 해설들 뿐이잖아. 고작 비판이라고는 그 책을 다시 읽게 만드는 논증의 힘(변증법-자신의 논지를 더 다지기 위해선 반대이견이나 약점, 론을 포섭(다룸으로써)해서 합으로 나아가는 설득적 전술)에 대한 재발견이잖아. 비판도 칭찬을 위해 수렴되는 그의 전술이 의도적이라면 나는 감동을 받고 있다구. 분명히 좋은 책일 테니까. 사 봐야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

    라는 '공감의' 포화속에 나는 쏙 빨려 들어가 볼 뿐이다.

     적어도 (도서관에서 같이 빌렸던) '반대자의 윤리'라는 책을 쓴 비평가 고봉준씨의 책을 읽을 때는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의 책은, 혹은 그 출판사에서 기고를 하고 있는 고명철씨나, 이명행씨의 글을 읽을 때면 나는 무언가, 작가들이 공정한 대접을 받고 있으며, 적어도 인문의 꽃인 출판시장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침식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적어도 누군가는 노력한다면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으며, 제대로 된 평가를 내려줄 비평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일꺠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간단하게 이 문지의 벌판에서, 고봉준씨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어떤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여기에서 그의 글을 홍보함으로써-그렇다 이것은 분명히 정치적이다-의미를 지니리라고 본다. 

 

     "김정란은 시 비평의 윤리성을 질타하는 한 글에서 비평의 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위기는 세속적 성공과 권력을 위하여 스스로 문학정신을 저버림으로써 집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김정란, 영혼의 역사, 새움 2001)' 그렇다. 위기란 문학장의 제도적 문제이기 이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방기함으로써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그 자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비평이 작품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비판이라는 소임을 저버리고, 몇몇 에콜과 문예지의 편집진, 그리고 문단권력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함으로써 자본과 권력에 포획된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김정란의 지적대로라면, 비평의 의의를 회복하는 첩경은 비평이 자본과 권력으로 표상되는 '세속적 성공'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의 문학정신을 지키는 데 있다. (P.30)"

  

        그리고  마지막으로, ( PS: )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선, 그의 책 110 페이지에 나오는 포스토모더니즘에 대한 료타로의 인용을, 재 인용함으로써, 이 저자(성민엽)에 대한 나의 자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배려를 잊지 않을 수 없다.

 

     "(...)절충주의적 작품을 선호하는 대중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예술은 키취가 됨으로써 후원자들의 '취향'을 지배하는 혼란에 영합한다 예술가, 화랑 소유주, 비평가, 대중은 모두 '뭐든 괜찮다' 속에 함께 뒹군다. 지금은 이완의 시대이다. 그러나, '뭐든 괜찮다'류의 이런 리얼리즘은 사실상 돈의 리얼리즘이다. 미적 판단 기준이 부재한 가운데 그 이윤에 따라 예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며 유용하기도 하다. 만일 시대적 유행과 욕구가 구매력을 갖는다고 한다면 자본이 모든 '욕구'를 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리얼리즘도 모든 경향들을 조정한다."

    

 

                                                                                    그럼 안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방민호 지음 / 창비 / 200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전경린론과, 은희경 소설집에 대한 해설비평은 그의 비평가적 '양심'에 흠을 내고 있는 부끄러운 짓이다.  

   그럼에도,

   그의 서적을 처음 접하는 내가 조금 기대가 되는 것은, 그가 문학에서 철학적 영역으로 다가감으로써 문학의 '관'을 확장해 간다는 것에 있다. <리얼리즘의 비판적 재인식>이라는 그의 비평을 통해 그는 리얼리즘의 '인식과 재현'이라는 인식론적 측면(철학)에 문학적 경계(재현)를 진중하게 접근시킴으로  그것을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라는 제목은 바로 위에서 말한 <리얼리즘의 비판적 재인식>이라는 글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의 글에서 백낙청의 비평을 비판하며 '주객의 문제'와 '해석의 총체성'에 관한 비판(p.99)을 통해 그는 백낭청을 넘어서 자신의 관을, 더 나아가 그가 스스로 작가들에게 요청하고 옹호하고 있는 '깊이와 사유' 를, 요컨대, '철학과 문학의 의미심장한 접점'을 향해 그 스스로 몸을 던질 용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한편의 비평문으로해서, 자신이 쓴 이 비평집의 전체의 지면에  어느 정도 값어치를 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의 귀환
최원식 지음 / 창비 / 200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평의 '비'자도 모르지만, 썩 내키지 않는 책이다.  고작 뻔한(?) 몇 마디를 하기 위하여 사설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든다. 일류급 비평가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고 들은 그의 평론은 나에게 실망  그 자체로 다가온다.

    저자는 지식의 나열을 자제하고, 독자에게 친근하면서도, 이 시대의 문학과 비평의 위기에 관한 대안을 제시할 좀 더 주체적이며, 독창적인 방안을 개진하기를 바란다. 문헌을 빗대어서(가져와서) 얻는 것이라고는 고작 저자의 현학적 구색이거나, 동어반복 혹은 발전 없는 지면의 낭비인 것이다. 저자의 책은 정작 자신의 주관을 이야기할 부분에 이르러서는 글이 끝나버리기 일쑤인 것이다.        

    1.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책 거의 대부분의 장에서 독창적인 소견을 발견할 수 없는 것 같다.   

    2. 최영미의 시에 대한 해석은, 최영미시인이 스스로  형이상학적인 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도 그곳에다 아프로디테(그나마 조금은 공감이 가는)니,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틀로 포장하는 과잉해석의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다(흔히 해설비평이 그렇듯이).

   3. 고은의 만인보의 출판 기념에서 자신의 거처인 '창비'를 굳이 끌어들여 축사를 읽는 그의 글은 독자들로 하여금 민망함이 무언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1. 오늘날 문학의 위기 즈음하여, 작가에게 비평적 관심과 경주를 요구하는 부분.

   2. 그리고 이상의 '실화'라는 단편의 분석과,

   3. 윤영수에 대한 비평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부디 독자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마시길 바란다. 어차피 이 글 묶음이 독자를 염두해두고 있지 않은 글의 정리차원의 출판이겠지만,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사거나, 읽은 독자에게는 아까운 시간의 낭비이며, 상징권력으로 흔히 불리는 창비정체성에 타격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나는 저자의 책에서 비평가 고명철이나, 이명행, 김명인 같은 분들의 '열정'과 '정열'을 전혀 엿볼 수 없음을 후회하게 만들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