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빵파랑 - My Favorite Things
이우일 글.그림 / 마음산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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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엔 어느 날 밤 천둥 소리에 놀라 하나 둘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줄리 앤드루스가 노래를 불러주는 대목이 있다. 노래의 제목은 <My Fovorite Things>. 슬프거나 무서운 일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생각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내용의 노래.
저자 이우일이 DVD로 이 장면을 보다가 떠올린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 책은 책 제목인 옥수수빵파랑(Dodgerblue라는 파란색이란다)부터 <사운드 오브 뮤직>까지 저자가 좋아하는 것들 55가지를 소개한다.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듯, 그가 좋아하는 물건의 목록은 그의 내면이 장난기와 자유로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글만 놓고 보면 그의 만화(도날드닭!) 만큼이나 썰렁하지만, 글에서 드러나는 삶의 여유로움은 샘날 정도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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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이언 매큐언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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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미국과 영국은 동베를린에 위치한 소련군 사령부 지하로 터널을 파고 들어가 통신선을 따서 도청한다는 담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작전명 골드. 이 작전에 참여하게 된 스물 다섯 살의 영국 체신국 직원 레너드 마넘이 주인공인 소설 <이노센트>는 존 르 카레를 연상케 하는 냉전 시대 첩보물이면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약한 영국 청년 레너드는 동료들과 같이 간 무도장에서 독일 여자 마리아를 만나고, 그 순간부터 그들의 삶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첫 사랑의 열정과 번뇌, 다툼, 비밀, 갈등. 이를 묘사하는 지극히 아름다운 글귀들, 그리고 그보다 더 빛나는 스토리텔링. 주인공들의 앞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책의 제목 <이노센트>는 어떤 의미일까? 이 걸작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이언 매큐언의 작품을 더,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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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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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여행기는 <김영하의 여행자> 시리즈 이후 참 오랜만이다. 콘탁스 G1, 그리고 롤라이35라는 필름 카메라의 강한 개성과 하이델베르크, 도쿄라는 대도시의 특징을 절묘하게 엮어낸 김영하의 재능에 적잖이 감탄했었다. 내가 필름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던 때라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김영하가 두 달간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쓴 글이다. 내가 무뎌진 걸까, 아니면 이 여행기에선 김영하의 문재가 발휘되지 않은 걸까. 성공한, 하지만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대한 중년의 환멸이 모티브가 된 여행은 좀 많이 식상하다. 김영하의 소설이나 산문 중엔 의아할 정도로 레벨이 떨어지는 게 가끔 보이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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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원전 - 다 빈치에서 파인만까지
존 캐리 엮고지음, 이광렬.박정수.정병기.이순일.방금성.김문영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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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부터 시작되는 근대 과학기술의 연구 기록과 저술들을 한 꼭지씩 따서 모은 책. 저자 존 캐리가 과학자가 아닌 옥스포드 영문학 교수라는 점도 놀랍지만, 이 수많은 과학 저술들을 뒤져 대중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발췌하고 편집한 그의 노력이 경이롭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챕터는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어느 탄소원자 이야기>로, 수억 년의 세월을 석회암 속에 갖혀 있던 탄소원자가 우연한 기회에 이산화탄소가 되어 겪는 모험을 상상한 이야기이다. 탄소가 대기를 떠돌다 이태리 어느 농장의 포도나무 잎으로 들어가 포도송이로 자라고, 와인이 되어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 간을 거쳐 근육에서 젖산으로 분해되고, 호흡을 통해 다시 대기로 돌아가 레바논의 삼목나무 줄기 속 셀룰로오스가 되고, 나무벌레의 일부가 되고, 미생물에게 먹혔다 어쩌다 우유가 되어 프리모 레비의 몸 속에서 뇌를 구성하는 세포의 일부가 되어 이 글을 쓰게 되는 긴 여정. 우리가,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곧 우주의 일부이자 우주 그 자체라는 걸 윤회라는 종교적 언어를 빌리지 않아도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증명한 아름답기 그지 없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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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원전 - 역사의 목격자들이 직접 쓴 2,500년 현장의 기록들
존 캐리 엮음, 김기협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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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운 역사는 비유하자면 잘 무두질된 가죽 같은 것이다. 수많은 가공을 거쳐 부드럽고 보기 좋지만, 그 동물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인류가 겪은 일상과 사건들이 엄청난 두께로 퇴적되어 있으니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는 건 당연할 터. 그래서 역사는 큰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깎아 만든 이쑤시개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된 역사는 절대로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할 수 없다. 권력자의 의지 때문이든, 사상과 이념의 문제이든 상관없이 그게 역사 기술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르포르타주가 중요해진다.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가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 것. 그게 일기가 되었건, 신문 기사가 되었건, 자서전이 되었건. 거친 호흡과 주관적인 문체로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의 느낌을 주는 것 말이다.
저자 존 캐리의 말대로 우리는 참혹한 사실주의 소설을 읽다가도 이것이 결국 그냥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다. 하지만 나치대학살에 관한 생존자의 기록을 읽다가 그렇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제기된 사실들이 우리의 인식을 강제하고 우리의 반응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르포르타주는 현실을 가림없이 보여주어 독자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깨우침을 선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실린 180개 꼭지의 기록들이 갖는 울림은 때로 가슴을 저밀 정도로 대단하다.
다만 역자의 주관이 지나치게 강하게 들어가 있다는 점이 아쉽다. 역자 후기에서 자랑스럽게 밝히듯,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원저에 있지도 않은 해설을 매 꼭지마다 멋대로 달아놓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자의 주석을 맘대로 삭제하고 원저의 30% 정도를 한국 일반 독자에게 적합지 않다(...)는 이유로 아예 번역에서 빼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나머지는 원서를 찾아보라고 친절히 안내까지 해준다. 아마 역자는 번역이 아니라 편역을 하고 싶었나보다.

프레인의 풍자는 기자가 겪는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표준화된 표현과 진부한 문체가 서서히 쌓여 기다리고 있다가 손끝에 닿기만 하면 종이 위로 튀어나온다. 사실 글 쓰는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자의 경우 특히 심각한 문제다. 현실에 충실해야 하면서 또한 언제나 친숙하지 않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기자의 눈은 언제나 처음 보는 것처럼 보아야 하고, 기자의 입은 언제나 처음 말하는 것처럼 말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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