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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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이 겪는 트라우마 같은 극한의 고통은 이론만으로 치유할 수 없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초기에 팽목항에 내려간 수많은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대부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자식과 형제, 친구를 한순간에 잃은 그들에게 심리 상담을 권유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에 가까웠다. 자격증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의 실패였다.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차려주는 것 같은 따뜻한 밥 한 끼와, ‘당신이 느끼는 그 미칠 것 같은 감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공감과 인정이었다. ˝진짜˝ 사람 공부는 그런 것이라고 정혜신은 말한다.
에피소드 하나. 어느 날 세월호 희생학생의 엄마가 힘들게 무거운 짐을 들고 가다 한 무리의 학생들을 만났다. 그 중 여학생 하나가 걸진 욕을 섞어 가며 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더란다.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겠지만, 그때 그 엄마의 눈에 들어온 건 그 아이의 가방에 대롱 매달린 노란 리본이었다. 그 순간 엄마의 마음은 여학생 편에 선다. ‘그래. 어떤 녀석이 너를 화나게 했을까. 나도 우리 아들 보고 싶어 가슴이 숯덩이란다.‘ 예의 없이 욕설을 내뱉는 아이라도 그 아이가 달고 있던 노란 리본 하나가 그 순간 만큼은 희생자 엄마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며, 고통을 나누어 갖겠다는 표식이 되는 것이다. 노란 리본을 더 열심히 매고 다녀야겠다.

트라우마 피해자는 정신과 환자가 아닙니다. 트라우마 피해자는 ‘외부적 요인‘(사건)으로 인해 내가 유지해오던 심적, 물적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 처한 사람이에요. ‘심리내적 요인‘(자기 상처 등)으로 인해 생긴 정신과적 질병을 가진 정신질환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수렁에서 걸어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나는 당신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다는 상징, 표시, 그것 없이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노란 리본은 그런 상징물입니다. 꼭 달아주세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치유자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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