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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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순수문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이 책의 저자 김연수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좋게 말하면 수더분하고 나쁘게 말하면 촌티 날리는 외모와 달리, 김연수는 지극히 세련되고 아름다운, 감수성 넘치는 문장으로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문장 뿐 아니라 소설의 플롯 또한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낼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엄청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요즘 보기 드문 소설가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이런 작가의 역량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개인의 삶이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도록 짓뭉개지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1991년, 학생운동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시작해서 광주민주화항쟁, 유신정권을 거쳐 태평양전쟁과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인과 가족의 질곡어린 역사를 작가는 교묘하게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어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마냥 엮어냅니다. 이걸 따라가다 보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죠.

결국 남는 건 시대에 짓눌린 자에게 느끼게 되는 묘한 슬픔입니다.

김연수의 작품이 새로 나오면 꼬박꼬박 읽는 편이지만, 저에게 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만큼 울림이 큰 건 아직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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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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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산문집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 한국사회의 갖은 문제에 초연하던 그가 2012년 귀국한 이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고백과 함께 내놓은 책이다. 하지만 이 <보다>는 그가 선언한 바와 달리 우리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지 않는다. 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핏 요네하라 마리의 글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신랄함은 많이 떨어진다.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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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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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삼부작의 전작 <보다>에 비해 훨씬 낫다. `말보다는 글의 세계를 더 신뢰하며, 그 안에서 내 생각이 더 적확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김영하는 말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느끼기엔 김영하는 글보다 말을 훨씬 조리있고 재미있게 하는 작가다. 그 간의 강연과 대담, 인터뷰를 모은 책인데, 김영하가 글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고백하는 대목이 퍽이나 인상깊다. 오죽하면 완성한 소설을 오롯이 자기만의 것으로 하기 위해 J.D. 샐린저처럼 출판하지 않고 자기 서재 금고 속에 넣어 간직하고 싶다고 할까. 지금까지 김영하의 소설을 몇 권 읽어봤지만 큰 감흥은 없었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서재는 일을 하지 않는 공간이예요. 서재에 들어가면 책으로 둘러싸이게 되는데, 책이라는 것은 지금 것이 아니잖아요? 책은 제아무리 빠른 것이라도 적어도 몇 달 전에 쓰인 것이거든요. 더 오래된 것은 몇백 년, 몇천 년 전에 쓰인 것이고요. 그래서 서재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목소리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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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책을 읽는다는 것, 그 중에서도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깊은 고찰을 여섯 꼭지의 강연으로 풀었다. 소설을 읽는 강렬한 경험을 통해 내 자아의 일부가 해체되고 다시 재구축된다. 그러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의 내면엔 나만의 고유한 작은 우주가 건설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맞설 수 있는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다.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책의 우주에 접속할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라고.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hubris)과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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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기도 하지. 제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닐 때엔 제주에 사는 게 그렇게 싫었다. 꽉 막힌 좁은 섬에 갇혀 사는 삶이 너무 답답했으니까. 그래서 대학에 와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도 별로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도로 제주에 가서 살고 싶어진다. 그렇게나 도망치고 싶던 곳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국민학교 때 학교 뒷산에서 메뚜기 잡고 열매 따먹던 시절의 기억이 참 그립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아주 시골에서 큰 것 같은데, 우리 집은 나름 제주시내 한복판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니 아파트 좁은 놀이터에서 놀 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주에 가서 사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고...
이 책에서는 제주에서의 삶과 제주인들의 교육 철학을 아름답게 그려내지만, 내가 경험했던 학창시절은 이 책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어서(물론 내가 제주를 떠난 사이 많이 변했겠지만), 읽다보면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많다. 당장 먹고 사는 터전이 여기 있으니 제주에서 사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꿈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이들을 이 삭막한 아파트 숲에서 경쟁의 한복판에 밀어 넣으며 사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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