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공부의 시대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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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의 대법관이자 ‘김영란법‘의 주인공, 김영란이 말하는 인생의 책 읽기. 제목은 ‘책 읽기의 쓸모‘이지만 정작 김영란은 자신이 평생 해온 책 읽기가 그닥 쓸모있는 공부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그저 마음 끌리는 대로 읽는 것이었으므로. 그녀는 문학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얼핏 법률가와 문학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럼 그녀의 책 읽기는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일까?
법률은 보편적 정의와 기준에 의한 체계적인 질서의 세계이다. 다양성과 구체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문학은 개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정량적인 개량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며, 삶의 다층적 의미를 탐구한다. 그러므로 ‘문학적 상상력은 재판관이 자신 앞에 놓인 사건의 사회적 현실로부터 고상하게 거리를 두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겸비한 구체성과 정서적 응대를 바탕으로 현실을 철저하게 검토할 수 있게‘ 도와준다. 김영란은 이렇게 사회 약자들에게 공감하며 그들과 동일시하는 문학적 경험이 법률의 공적 합리성을 정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법률가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문학은 필요하다. 인간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그녀는 책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명상이요, 수행이었다고 회상한다. 독서는 ‘무한한 세상 속을 여행하는 일이면서 나 자신을 찾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할 뿐 아니라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세계의 구조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한 기초를 놓아주는 것이죠.

누스바움은 소설의 특징으로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과 질적인 것으로부터 양적인 것으로의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 세계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마치 개미나 기계 부품의 움직임이나 동작같이 객관적인 외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자신의 삶에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하듯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묘사"를 꼽습니다.

저는 상상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이 없으면 ‘이미 있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익히는 일밖에 남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그것만 하기도 바쁜 세상이지만, 그러기만 해서는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언가 더 나은 것에 대한 상상, 다음에 나아갈 행보에 대한 상상, 그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자가 듣는 이야기는 다를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한한 세상 속을 여행하는 일이면서 또한 보르헤스의 말처럼 나 자신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에 대해 기록한 단 하나의 책을 찾는 것 말이지요. 달리 말하자면 세상을 통해서 나 자신을 찾는 공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의 ‘몫 없는 자들‘과 억압받는 집단에 공감하며 그들과 동일시하는 문학적 경험을 통해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그 의미를 재성찰함으로써 공적 합리성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것을 ‘인간의 삶에 대해 소설가적 방식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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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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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이 겪는 트라우마 같은 극한의 고통은 이론만으로 치유할 수 없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초기에 팽목항에 내려간 수많은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대부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자식과 형제, 친구를 한순간에 잃은 그들에게 심리 상담을 권유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에 가까웠다. 자격증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의 실패였다.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차려주는 것 같은 따뜻한 밥 한 끼와, ‘당신이 느끼는 그 미칠 것 같은 감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공감과 인정이었다. ˝진짜˝ 사람 공부는 그런 것이라고 정혜신은 말한다.
에피소드 하나. 어느 날 세월호 희생학생의 엄마가 힘들게 무거운 짐을 들고 가다 한 무리의 학생들을 만났다. 그 중 여학생 하나가 걸진 욕을 섞어 가며 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더란다.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겠지만, 그때 그 엄마의 눈에 들어온 건 그 아이의 가방에 대롱 매달린 노란 리본이었다. 그 순간 엄마의 마음은 여학생 편에 선다. ‘그래. 어떤 녀석이 너를 화나게 했을까. 나도 우리 아들 보고 싶어 가슴이 숯덩이란다.‘ 예의 없이 욕설을 내뱉는 아이라도 그 아이가 달고 있던 노란 리본 하나가 그 순간 만큼은 희생자 엄마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며, 고통을 나누어 갖겠다는 표식이 되는 것이다. 노란 리본을 더 열심히 매고 다녀야겠다.

트라우마 피해자는 정신과 환자가 아닙니다. 트라우마 피해자는 ‘외부적 요인‘(사건)으로 인해 내가 유지해오던 심적, 물적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 처한 사람이에요. ‘심리내적 요인‘(자기 상처 등)으로 인해 생긴 정신과적 질병을 가진 정신질환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수렁에서 걸어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나는 당신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다는 상징, 표시, 그것 없이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노란 리본은 그런 상징물입니다. 꼭 달아주세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치유자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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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공감필법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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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말하는 공부의 정의는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독서와 글쓰기이다. 그는 독서를 할 때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보다 저자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독서를 통해 정체성을 찾고,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와 공감하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 이 모든 것이 인간으로서 최대한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한 공부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 정보를 문자로 표현하여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글쓰기가 더해져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공부가 완성된다는 말이다.
짧은 강연을 정리한 책이지만 유시민, 그만의 매력이 가득하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이렇게 멋진 것이다.

천하의 넓은 집을 거처로 삼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를 실천하여, 뜻을 얻었을 때는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가고, 그렇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간다. 부귀도 나를 흔들 수 없고, 빈천도 나를 바꿀 수 없으며, 위세와 무력도 나를 꺾을 수 없어야, 비로소 대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 <맹자>, 등문공 하편

보수주의는 상층계급의 특징이기 때문에 품위가 있는 반면, 혁신은 하층계급의 현상이기 때문에 저속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사회적 혁신을 외면하게 만드는 그 본능적 반발과 비난의 가장 단순한 요소는 사물의 본질적 비속성(vulgarity)에 대한 이 관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자가 대변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 그 혁신자는 교제하기에는 불쾌한 인물이며 무릇 그와 접촉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너무 자주 위로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남을 위로하려 하지도 마시고요. 삶은 원래 고독한 것이고, 외로움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견딜 만큼 견뎌보고, 도저히 혼자서 못 견뎌낼 때 위로를 구하는 게 좋은데, 요즘은 다들 위로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요.(...) 남에게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책과 더불어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을 기르는 쪽이 낫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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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 공부의 시대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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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부의 시대> 시리즈처럼 강만길 선생의 강연을 한 권으로 정리한 책. 팔십 평생을 역사학자로 살아 온 선생의 분단 극복과 평화 통일에 대한 절절한 호소가 문장 한 구절 한 구절 짙게 배어 있다. 내용 자체는 새롭지 않으나, 이 시대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견해는 한번쯤 되새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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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공부의 시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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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인 시대, 인문학이 위기에 몰려 벼랑 끝에 서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진중권은 말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새로운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문자가 아닌 미디어로의 전회가 일어난 지금 우리가 논해야 할 것은 디지털의 존재론, 디지털의 인간학, 디지털의 사회학이라고. 문화비평가, 사회비평가가 아닌 진지한 철학자로서의 진중권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책이지만, 제목 그대로 ‘구상‘ 단계인 주제라 큰 틀만 있을 뿐 각론이 갖추어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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