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 역사를 관통하고 지식의 근원을 통찰하는 궁극의 수수께끼
짐 홀트 지음, 우진하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책 제목을 보고 갸우뚱했었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라고? '세상은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How가 아니라 Why라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왜 존재하냐니. '어떻게' 존재하는가는 궁금할 거 같은데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은 해본 적도 없고 해볼 생각도 한 적이 없는데, 나는. 대체 누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어떻게 이런 게 궁금할 수가 있지?
작가 짐 홀트는 [뉴요커]에 오랫동안 글을 기고해온 프리랜서 작가라고 한다. 끈이론(string theory, 만물의 최소 단위가 점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이라는 물리이론), 시간, 무한, 숫자, 진실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왔고 [뉴욕타임스]와 [런던 북리뷰]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며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다. 존재에 대한 수수께끼를 처음 의식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인데 사르트르와 하이데거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이 책은 그때 시작된 셈이다.
가톨릭 환경에서 성장한 작가는 고등학생이던 1970년대 초, 미국 버지니아 주 변두리에서 살고 있었다. 반항심 가득한 작가는 사춘기의 불안함을 해결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그게 안 되면 최소한 좀 더 확실한 방향으로 이끌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에 실존주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특이하다. 나도 질풍노도의 시기란 사춘기를 지냈지만 실존주의에서 답을 얻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해본 적이 없다). 어느 날 동네에 있는 대학 도서관에 갔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을 보게 됐는데 하이데거의 책 첫 장에서 "왜 세상은 무(無)가 아니라 유(有)인가?(Why is there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at all?)"라는 질문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역시 나랑은 다른 사람인가 보다. 난 하나도 충격적이지 않은데, 이런).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철학자도 만나고, 종교철학자도 만나고, 과학사상가도 만나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와 유명한 수리물리학자, 우주학자, 사상가, 소설가를 만나며 계속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대답 역시 하나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신의 존재로 작가의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긍정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찾을 수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510쪽에 달하는 책은 모두 이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다.
그 논리를 다 정리할 자신은 없다. 능력 밖의 일이다. 대신 나처럼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사람을 위해 작가가 친절하게 책 첫머리에 정리해놓은글을 옮기려고 한다. 510쪽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이 책을 쓴 작가 자신이 정리한 문장이니 헛소리는 아니다.
숨 가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무 대신 유가 존재해야 한다는 신속한 증명.
세상에 무가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아무런 법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법칙도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가 존재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는 그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증명 끝.
쉽지 않은 내용이라 번역가가 고생을 많이 했을 거 같다. 분량도 적은 편이 아니고. 문장도 크게 어색하지 않아 어색한 우리말 때문에 제동이 걸리는 일도 없었다. 다만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작가가 가톨릭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라고 번역한 건데, 우리나라에선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하느님' 이라고 하는 걸 몰랐나 보다. 검색을 하지 않아 실수를 한 거라면 번역가로서 근무태만인 거고, 검색을 하고도 개인적 종교 성향으로 '하나님'으로 번역한 거라면 오만일 수도 있겠다. 남의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게 이래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