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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복과 기관총
아카자와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이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여고생 두목의 좌충우돌 조폭 입문기! 200만 일본 독자들을 사로잡은 청춘 유머 미스터리! 띠지에 있는 단 몇 줄의 글만 읽어봐도 이 소설이 뭔가 범상치 않은 소설일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이런 독자의 호기심에 부흥이라도 해주듯 책 표지엔 세일러복 차람에 기관총을 들고 있는 늠름한(?) 여고생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 즈음에 빛나고 있는 무지갯빛 섬광.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바라보며 '이거 왠지 골 때리는 소설일 것 같은데?'라는 의구심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묘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 마음의 준비도 되었으니 호시 이즈미라는 얼짱 조폭 우두머리를 만나보자!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게 된 열일곱 살, 호시 이즈미는 얼짱이라 불릴 만큼 예쁜 외모와 특유의 리더십으로 팬클럽을 몰고 다니는 고등학생이다. 그 팬클럽 중 대표 임원급이라 할 수 있는 세 사람, 공부는 못하지만 이즈미의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데쓰오, 유도선수인 슈헤이 그리고 3년간 한 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은 브레인 도모는 이즈미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뭉치게 된 삼총사이다. 갑작스럽게 이즈미를 찾아온 야쿠자들, 그들은 겨우 네 명의 동료들만이 남아있는 송사라파의 일원으로 고등학생인 이즈미를 두목으로 모시고자 하는데, 자신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거절하는 이즈미 덕분에 송사리파는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된다. 조직의 해산을 명한 부두목 사쿠마는 조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살을 기도하고 그 모습을 보게 된 이즈미는 결국 송사리파의 두목이 되기로 결심하는데, 야쿠자도 이런 야쿠자가 없다. 송사리파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나약한 조직일 뿐이었는데... 이즈미와 송사리파 그리고 그녀의 팬클럽 삼총사 앞에 펼쳐진 모험들은 뻔히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사건들이었는데 어쩐지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일본 소설들의 장점은 읽기 쉽다는 것이다. 번역을 읽기 쉽게 한 것인지 아니면 원작 자체가 읽기 쉽고 재미나게 써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일본 소설들은 항상 별다른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것 같다. <세일러복과 기관총> 역시 너무나 읽기 쉬운 소설이었는데 그 문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글을 잘 쓰는 중학생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조금 유아틱했다. 이것이 아카가와 지로라는 작가의 최대 장점인 것일까? 450여 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한 작가의 필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 아마도 이렇게 독자들이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는 방식이 이 작가 고유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 여러 문체들 중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무언가 묘사를 하고 나면 그 표현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가 꼭 따라 붙는다는 것이다. 가령 '장딴지를 만져보자 마치 시체처럼 차가웠다. 시체를 만진 적은 없지만 손이 시릴 만큼 차갑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는 식의 문장들이 자주 보인다. 꼭 초등학생이 은유법이나 직유법을 사용하여 문장을 만들고 자기가 왜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는지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유아틱한 문체는 책의 마지막 장까지 변함이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술술 풀어간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에 끝낼 수 있었기에 그 재미를 휴식 없이 쭉 이어갈 수 있었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유머와 감동 그리고 '깡'과 우정이 녹아있는 소설이다. 송사리파의 두목이 된 이즈미가 펼치는 '돌+아이'라고 불릴만한 무모한 행동들, 조직원의 죽음 앞에서 흘린 눈물로 알 수 있었던 속 깊은 정과 의리, 이즈미의 일이라면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부모님의 잔소리도 마다않던 삼총사의 우정.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처럼 독자들을 속수무책으로 웃고 울게 만든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은 어쩌면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너무 쉽게 쓴 거 아니야? 별로야, 별로!"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헌데 나는 왜 이렇게 이 소설이 마음에 드는 것 일까? 조금은 덜 다듬어지고 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인기 있었던 소설이라고 하는데 다음엔 영화로 또 다른 느낌의 <세일러복과 기관총>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