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여행. - 마음 여행자의 트래블 노트
최반 지음 / 컬처그라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눈이 자꾸만 감겨왔다. 책을 읽으며 마셨던 따뜻한 홍차가 약이 되었는지 나른함을 느꼈다. 조용히 눈꺼풀을 꾹 눌러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잠이라는 이길 수 없는 친구를 잠시라도 물리쳐보려 했던 건 잔잔한 영혼의 울림이 끊어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시간 후 나는 거짓말처럼 잠들었던 스스로를 탓하며 바쁘게 나갈 채비를 했고 반나절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들었다.  책과 떨어져있던 시간, 하지만 단 한 순간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빛나고 있는 그 표지를 잠시 새치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다시 손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장의 마침표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이것이 <서툰. 여행>이라는 책과 함께한 나의 만 하루이다.

 
 인도. 어떤 이는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치는 사기꾼들이 사는 더러운 나라라 표현했고 어떤 이는 그곳이 자신의 전생의 고향, 혹은 정신적 고향이라 말하며 색안경을 끼지 않은 눈으로 아름답게 인도를 바라보기도 했다. 굳이 전자와 후자 중 누가 더 많았냐고 묻는다면 당연 후자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인도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동경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도는 언제나 신비롭게 다가온다. 소를 숭배하고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사람에게 사기를 쳐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순한 이들, 까맣고 고운 눈동자를 반짝이는 아이들. 인도는 분명 살기 좋은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기 싫은 곳도 아닌 것 같다. 영화를 전공한 작가 역시 인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첫 발걸음 이후에 어떤 영혼의 떨림과 사랑에 대한 아픔으로 인도에 머물기 시작했다. 쭉 이어진 인도와의 네 번의 만남은 그에게 명확한 해답을 던진 것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불타는 의지를 선사한 것도 아니었지만 지구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특별한 마음의 평안과 번뇌, 그리고 우정을 선물했다. 어느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매력적인 까만 나라 인도가 그의 눈을 통해서는 유난히 더 예쁘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인도 여행을 위한 여행서가 아니다. 어떠한 유적이나 상점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지 않으며 다만 작가가 좋은 눈으로 찍어간 멋진 사진들과 그곳에 머물며 겪은 일과 그 일을 통해 얻게 된 조금은 심각한 생각들이 가득한 여행 에세이다. 혹여 인도 사람들의 난민엔 가까운 가난한 삶이나 그들의 어찌 보면 어이없는 생활방식과 정신세계를 엿보고 싶다면 이 책은 당신의 마음을 채워주기엔 좀 부족하지 싶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성적이며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인도 책 중 이 책을 베스트 3에 넣고 싶은 소망은 그 따스한 마음이 좋아서, 그리고 반짝 반짝 빛나는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내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동안 읽어왔던 인도에 관한 책 중에 가장 기분 좋게 읽어간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 인도 이야기가 반, 작가의 넋두리가 반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감히 진실한 인도를 느껴보았노라 말하고 싶다. 5년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그, 인도에 가면 꼭 요가수업을 듣고 릭샤꾼을 친구로 둔 그. 고집강하기로 소문난 최 씨이자 사랑에 허기진 그. 이젠 서툰 여행이란 책의 작가이자 앞으로도 인도로 향할 그의 모습 속에서  나는 아름다운 인도의 향과 맛을 느꼈다.

 언제쯤 인도에 나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내 부족한 영혼의 샘물을 찾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늘어가는 나이와 반비례로 줄어가는 나의 용기가 다하기 전에 꼭 그 곳을 찾아가고 싶다. 인도란 참 알 수 없는 나라이다. 홍차로 시작해서 맥주로 마무리 지은 나의 독서가 그러하듯 그리고 서평을 쓰며 인도 냄새 가득한 짜이 향에 취해 자판을 두드리는 내 모습이 이러하듯 인도 역시 어느 곳으로 튈지 혹은 나에게 호의적일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의 등대처럼 그 곳이 반짝거리는 이유는 내 영혼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인도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 떨리는 희망의 숨결을 직접 내 손으로 만져보는 그 순간을 그리며 오늘도 아쉬움에 가만히 스스로를 토닥여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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