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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와 만다라 - 나를 찾아 떠나는 한 청년의 자전거여행
앤드류 팸 지음, 김미량 옮김 / 미다스북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 '메기와 만다라'라는 책을 받았을 때 그 두께에 한 번 놀랬다.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두꺼운 책들에게서 느껴지는 약간의 거부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 나의 고질병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를 주르륵 넘겨보던 나는 '도대체 이 베트남 청년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라는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마치 원래 정해져있던 일인 듯 조용히 책의 첫 장에 한 발을 내딛었다.
★주인공이자 저자인 앤드류 팸은 어떤 사람?★
그는 미국 국적의 베트남 청년이다. 어린 시절 베트남이라는 작은 땅에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했던 그 시절, 오늘은 아버지가 총살당하시진 않을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생 끝에 미국으로 건너와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도 얻었지만 마음속이 뻥 뚫린 듯 한 공허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베트남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 이이다. (이제 나는 그를 앤이라 부르려한다.)
영어가 베트남어보다 편해질수록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먹는 날이 잦아질수록 앤은 미국이란 나라의 일부가 되어간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진정한 자신의 가족이라 인정하지 않고 어느 곳 하나 마음을 붙일 곳이 없다. 서류상의 국적은 미국. 하지만 그의 조국은 베트남. 앤의 영혼이 맘 놓고 쉴 수 있는 고향은 어느 곳일까? 앤은 그의 뿌리를 찾아 베트남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그 앞에 어떠한 행복과 핑크빛 추억들이 기다릴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앤의 앞에 펼쳐질 고단한 역경과 부당한 사건들을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었다. 그를 따라 여행한 베트남은 때로는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더러웠으며 같은 인간으로서 도대체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정직한 곳이었다. 원래부터 베트남에 대한 호감은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정말 이 정도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느낀 당혹감은 예상보다 더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 억울함과 설움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예쁜 이름 석 자를 목에 걸고 아장걸음으로 노란 병아리처럼 유치원으로 가는...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거쳐 이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야하는 성인이 될 때까지도 우리는 매 순간 학교와 여러 단체에 소속되어 대한민국의 일원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지극히 무난한 삶을 살아온 나에게 앤이 느꼈을 그 감정은 어쩌면 상상이상으로 더 고통스럽고 한스러운 것이었으리라. 교포라 불리며 가는 곳마다 돈을 요구받고 속임수에 속고 뼈 속까지 쓰라렸던 앤의 마음을 이제는 좀 토닥여주고 싶다.
사실 생각해보면 앤은 그리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베트남이라는 자신의 고향을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누런 이를 보이며 돈을 요구하는 경찰들, 교포라면 다 매국노라 생각하여 싸움을 걸어오는 사람들, 무조건 자신의 가족들을 후원해주길 바라는 철없는 이웃들까지 어느 하나 정을 붙일 수 없는 곳이었지만 그 난리 통 속에서도 그는 반짝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슴 떨렸던 짧은 만남을,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의 자신의 조국 베트남을 찾아내 가슴 속에 담아냈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베트남의 모습을 보며 이건 고발이나 해코지의 맥락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리도 당했지만 결코 미워할 수가 없었던 조국 베트남의 참 모습을 그 자체로 사랑했을 테니까 말이다.
길고 긴 자전거 여행을 동행하는 동안 내가 주목했던 것은 앤의 무소속으로 인한 그의 공허함과 교포인 앤의 눈을 통해 바라본 베트남의 참담한 상황이었다. 내가 하루면 벌 수 있는 돈을 한 달에 걸쳐 벌고 그 적은 액수로 온 가족이 살아가는 그 곳. 자신의 뿌리가 이 곳인데 이제 친구와 이웃들은 그를 다른 사람처럼 취급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수십 일이 족히 넘는 여행 동안 앤이 얻은 것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는 자신이 더이상 이곳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으며 그 와중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온정과 우정의 손길을 감사히 가슴에 품었다는 것이다. 쓰라린 모습 그대로를 가슴에 담은 채 좀 더 나은 미국인이 되겠다며 집으로 돌아간 그를 이제는 좀 쉬도록 놓아주고 싶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나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앤!! 오랜 여행의 여독은 이제 다 씻어냈나요? 그래, 당신의 생각대로 보다 나은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까? 짜디 짠 메기 국이 생각나진 않아요? 다시 한 번 그 냄새나는 곳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은 생각은 없는 겁니까? " --- 그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이겠지? 참 이상하다. 가방 속에 넣고 생각날 때마다 책을 꺼내 읽는 통에 벌써 까맣게 변한 책의 모서리들처럼 내 마음도 전부 타 들어갔다고 생각했었는데 여행을 다 끝낸 지금 이상하리만큼 뿌듯하고 행복한 느낌이 든다. 이제 나는 웃으며 소리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삼촌 앤! 나의 친구 앤! 당신이 있는 곳이 바로 당신의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