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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이 세 글자를 읽으면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강동원 이나영 주연의 눈물겹도록 슬펐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봉순이 언니. 고등어 등의 몇몇 작품들만 떠오를 뿐이었다. 워낙에 남의 뒤를 캐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소설의 끝에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작품이 공지영 자신의 자전적인 실화가 약간은 섞여있는 픽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단지 허구성 짙은 소설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몇몇 부분들은 그녀가 직접 겪었던 일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겪는 어려움과 아이들이 겪는 사춘기 등의 부분들에서.
[즐거운 나의 집]에는 성이 다른 세 아이가 있다. 위녕과 둥빈 그리고 제제. 이들은 아빠는 다르지만 엄마는 같다는 사실 아래 알 수 없는 끈끈한 동지애와 피의 끌림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 아, 물론 가장 나이가 많은 위녕의 입장에서 볼 때 말이다. 새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차별이라 느껴지는 냉대와 아빠는 너를 위해 재혼한 것이라는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말 속에서 위녕은 자신에게 가족 따위는 그러니까 즐거운 우리 집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십대의 중반에 들어선 나이지만 십대 후반의 위녕이 너무도 이해가 간 것은 나 역시 그녀와 같은 나이일 때가 있었고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덕분일 것이다.
갈팡질팡하던 위녕이 엄마의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아직 엄마의 집 역시 자신의 집 그러니까 우리 집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곳에서 그녀는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느껴가며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위로받으며 그렇게 철이 들어간다. 어느 정도 그 생활도 익숙해질 때쯤 자신의 품으로 오게 된 버림받은 두 고양이와 그로부터 이 주후 겪게 된 코코의 죽음은 위녕에서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어쩌면 위녕은 그 버림받은 고양이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코코는 죽기 전에 사랑을 듬뿍 받고 가라고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것이라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위녕은 위안을 얻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 역시 위녕과 그녀의 엄마처럼 펑펑 울었지만 어이없게도 입으로는 "그래. 그러면서 어른이 되는 거지. 위녕 괜찮아. 울지 마."라고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위녕의 엄마인 듯 혹은 위녕 그녀 자신인 듯.
세 번의 이혼 끝에 다시는 사랑이라곤 찾을 수 없을 거라 믿던 엄마에게 너무도 좋은 사람이 생긴다. 위녕이 마음에 들어 하던 서점 아저씨. 그래. 엄마도 여자인 것이다. 나는 때론 가끔 우리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비록 젊은 시절의 물찬 제비 같은 몸매도 곱디곱던 손도 이제는 남아있지 않지만 마음만은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라는 것을 나는 줄곧 잊고 산다. 새롭게 다가 온 연애감정에 설레는 위녕의 엄마를 보며 나는 불효막심한 딸인 내 자신에 대한 자책이 들었다. 위녕과 그녀의 엄마처럼 나도 같이 길거리를 걸으며 귀걸이를 사고 엄마의 새로운 출발(굳이 연애사업이 아니더라도)을 응원해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스러움을 배우고 싶었다. 친구 같은 때로는 동생 같은 엄마를 위해서 말이다.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소설의 제목이 즐거운 우리 집이 아니라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닌 내 집. 소설을 읽으며 알 수 없는 쓸쓸함에 시달렸던 이유를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위녕은 외로웠다. 자신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정체성까지도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멋지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간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내가 있어야만 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언제나 기다려주는 이가 있다면 그 곳이 바로 가정이고 우리 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어쩌면 몇 년 전에는 인정받을 수 없었던 가족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일 것 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가진 흑백논리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곤 한다. 정작 당사자는 괜찮은데 불필요한 설레발로 조심조심 그들을 대하던 우리의 모습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럽다. [즐거운 나의 집]은 가족이라는 소중하지만 우리가 잊기 힘든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고 그리고 통상적인 가족의 의미를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에 대해 알려준 소설이다. 작가의 조금은 자전적인 이야기와 그리고 위녕의 성장 이야기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책, 정말이지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만든다. 글을 마치려하는 지금 이 순간 눈치 챈 거지만 나 서평을 이렇게 길게 써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그 정도로 여운이 많이 남는다는 의미겠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