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떨림, 그리고 두근거림.

떨림 - 뜨거운 가슴을 잃어버린 당신을 위한 스물네 편의 사랑 이야기
김용택.정호승.도종환.안도현 외 지음, 하정민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떨림. 정말이지 기분 좋은 말이다. 물론 울렁증이나 공포로 인한 떨림이라면 그리 유쾌하지 않겠지만 이것은 사랑이나 아련한 기억 혹은 애잔한 마음에서 오는 떨림을 말하는 것이므로 자꾸만 가슴 한편이 시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흥분되게 만든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그리고 많은 사랑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그 중 가장 아름다웠던 사랑은 언제였는지 이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 역시 첫 키스를 하는 그 순간의 심장이 터질듯 한 설렘을 기억하고 있고 그런 기억들이 무색하게 지저분한 상처를 서로에게 남기고 헤어졌던 아픈 기억들도 있다. 하지만 [떨림]이라는 24명의 시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는 좋은 기억만 그리고 아름다웠던 기억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시인들의 글이라서 인지 24편의 글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이야기의 첫 시작은 사촌누나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첫 키스를 나누었다는 정호승님의 글이었다. 짧은 글을 읽으며 나는 마치 그들 두 사람의 모습을 모두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 미세한 떨림과 두근거림 속에서 어느새 나는 제3자가 아닌 그 사촌누나 자신으로 분해 생생한 그 상황 속에서 가슴을 설레고 있었다. 그 이후 줄줄이 이어지는 제자와의 사랑,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가족 간의 눈물 나는 사랑, 주변인이 아닌 작품 속 인물을 향한 사랑 등의 많은 이야기들은 특별하다기 보다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도 낯익은 것이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는 동안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옛사랑의 화내는 얼굴, 지우고 싶었던 안 좋은 기억들,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를 질러대던 극한 상화들이 이제는 아픔이 아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 버릴 수도 지울 수도 없었던 그 덩어리들을 이제는 편안하게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스물네 편의 이야기는 나에게 떨림만이 아닌 자기 스스로를 토닥이는 법을 선물해준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편안하다. 기분 좋은 떨림만이 남은 지금 이 순간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향기를 잃지 않고 계속 기억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