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빨리 자판을 눌러 자신을 바쁘게 해달라며 재촉하는 모니터 속의 커서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이렇게 어떤 말도 쉽사리 쓸 수가 없는, 그래서 도무지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경우가 있다. 며칠에 걸려 다 읽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책은 나를 참으로 곤란하게 만들었다. 손에 잡는 순간부터 내 마음을 온통 자신에게 향하게 하더니 주인공의 기구한 삶에 온 몸이 떨릴 정도로 서럽게 울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이해 그리고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진공상태에 나를 가두었다. 조금 진정이 된 지금 오래 전 보았던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스칼렛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행복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렸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이들이었다. 특히나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마리암의 기구한 인생이야기는 눈물 없이 도저히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 심약한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아버지의 집에 찾아갔다가 밤새도록 차디찬 바닥에 있어야 했고 울며 돌아온 집에 이제 더 이상 따뜻한 온기를 가진 엄마는 없었다. 나뭇가지에 길게 늘어져있는 엄마의 움직이는 몸을 본 것이 마지막 안녕을 말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자신보다 서른 살 가까이 나이가 더 많은 라시드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가게 되고 수차례의 유산을 겪으며 받은 마음의 상처와 함께 견딜 수 없이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은 마리암을 메말라가게 했다. 그러던 중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된 라일라와 그녀의 아이는 어쩌면 마리암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존재의 이유였을 것이다.

 남편의 폭력을 함께 견뎌내며 비록 자신이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 아이가 자신의 손가락을 지그시 잡던 그 순간 어머니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게 된 마리암을 보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때 이미 나는 마리암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온갖 전쟁의 힘겨운 고통 속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또 다른 고통까지 감내해야했던 그녀들을 보며 같은 인간이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자꾸만 미안하고 속상해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마다 안심 할 수 없는 아프간의 사정을 보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인정해야만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어느 누구는 위협을 받아 울고 있으며 소리조차 낼 수 없어 부들부들 떨고만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과연 그런 그들에게 그래도 태양은 뜬다며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분명 마리암과 라일라에게서 미세한 희망의 빛을 발견하였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그날을 믿고 기다리고 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정말이지 대단한 책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실감하게 해주었으니 나는 과감히 이 책을 올해 읽은 책들 중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피랍사건 때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곳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인간이 아니지만 살아가야 할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것. 그러나 그곳에서도 희망은 있다는 메서지를, 그리고 한 사람의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배웠다. 너무나 많은 것을 한 번에 받아들여서인지 글이 두서가 없는 것 같아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글 속에 숨어있는 나의 진심들은 전해질 거라 믿고 싶다. 사실 글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지금까지도 진정이 안 되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은 낯설고 어색하다. 여전히 일고 있는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가슴에 고이 품은 채 오늘은 기분 좋은 꿈을 꾸며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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