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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 앤 스파이스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내가 기다리고도 기다리던 가수 휘성의 신곡이 나왔을 때가 기억난다. "사랑은 맛있다."라는 타이틀곡의 제목을 읽으며 과연 사랑에도 맛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떤 맛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사랑은 달콤한 맛이라고들 한다. 어릴 적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떼를 써서 얻어낸 솜사탕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의 그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랑은 그렇게 입에서 단내를 풍기며 사르르 녹아내린다. 하지만 나이 듦에 따라 사랑은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내 심장의 한 쪽을 도려내는 것 같은 쓰라림과 몸에 좋다는 소리에 날름 먹었다가 뱉어버린 곰의 웅담 엑기스 같은 씁쓸함 그리고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밍숭맹숭한 여러 가지 맛들이 섞인 사랑을 하나 둘 알아가고 있다. [슈거 앤 스파이스]라는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여러 가지 사랑의 맛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인 야마다 에이미의 책들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작가의 큰 특징 몇 가지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조금은 야한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들이 나오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는 두 가지 대답중 하나를 고르지 못할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에서도 남녀관의 성관계를 여러 차례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파격적이거나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사랑의 한 과정을 위한 묘사일 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그러한 육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느냐이다. 너무나 다른 6가지의 사랑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이런 사랑도 있구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사랑은 내가 아는 사랑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고 사랑엔 정말이지 많은 여러 가지 맛들이 있어 사랑의 맛을 정의 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6가지 이야기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풍미절가"라는 세 번째 작품을 꼽겠다. "달게 녹는 것은 여자애만이 아니라며 손자에게 캐러멜을 쥐어주는 할머니."라는 소개 글이 뒤표지에 새겨진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단 맛과 쓴 맛 그리고 인생의 무게를 알아가는 손자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았다. 마치 어린 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우습기도 하고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어이, 친구 세상이 다 그런 거지. 그만 떨고 일어나시게."라고 하며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책장을 덮었다.
"사랑이라는 건 과연 어떤 맛일까요?"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몇 가지 맛들을 만날 수 있었나요?" 이 대답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한 마디 더 덧붙일 것이다. "사랑이란 아마 당신이 이제껏 만났던 수많은 맛들보다 훨씬 많은 맛들일 것입니다."라고……. 깊어가는 가을 날 만나게 된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저런 사랑의 맛들을 선보이고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남기고 떠나갔다. 마치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좀 더 사색의 시간을 가지라는 듯 말이다.